국제 규범 무시한 벨라루스 독재 정권, 실질적으로 규제할 수 있을까?
2021년 5월 27일  |  By:   |  세계  |  No Comment

(워싱턴포스트 멍키 케이지, Alexander Coo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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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벨라루스군은 전투기를 동원해 자국 영공을 지나던 라이언에어(Ryanair) 민간 여객기를 강제로 수도 민스크 공항에 착륙시켰습니다. 승객 중에 자국 안보에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는 테러리스트가 탔다는 첩보를 입수했다는 이유를 댔습니다. 벨라루스 당국은 승객 가운데 26살 언론인 로만 프로타세비치를 체포했습니다. 폴란드에서 활동하는 언론인 프로타세비치는 텔레그램에서 운영하는 넥스타(Nexta)라는 TV 채널의 편집장입니다. 넥스타는 30년 가까이 장기 집권 중인 벨라루스의 독재자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에 비판적인 반정부 성향의 채널입니다. 벨라루스 경찰은 프로타세비치가 지난해 대선 이후 벨라루스 곳곳에서 열린 반정부 시위를 계획, 조직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같은 비행기에 타고 있던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프로타세비치는 루카셴코 정권이 자신을 사형에 처할지 모른다며 매우 두려워했습니다. 벨라루스 당국은 또 프로타세비치의 여자친구이자 유럽인권대학교 로스쿨 학생인 소피아 사페가도 함께 체포했습니다. 유럽연합 지도자들은 이번 사건을 두고 “국가가 하이재킹을 자행했다”며 벨라루스 정권을 비난하며, 자국 비행기의 항로를 바꿔 벨라루스 영공을 우회하도록 했습니다. 토니 블링켄 미국 국무장관도 다른 나라 민간 여객기를 강제로 착륙시킨 행위는 “아주 충격적인 일”이라고 말했고,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국제 평화를 위협하는 뻔뻔한 도발”이라고 규탄했습니다.

벨라루스 정권의 도발은 또 하나의 “초국가적인 탄압” 사례로 기록될 겁니다. 초국가적인 탄압이란 말 그대로 권위주의 정권이나 독재 정권의 정보기관이 정치적인 이유로 다른 나라에 망명해 있는 야당 인사나 반정부 인사를 직접 공격하는 일을 뜻합니다. 프로타세비치가 탄 비행기는 그리스 아테네에서 출발해 리투아니아 빌니우스로 가고 있었는데, 비행기에는 벨라루스 정보기관 소속 정보원이 타고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 이 정보원은 대사관도 없고 정상적인 외교 관계도 맺지 않은 그리스에서 프로타세비치를 감시해온 것으로 보입니다.

존 헤더쇼와 함께 쓴 에서 우리는 중앙아시아 독재자들과 이들의 정보기관이 다른 나라에서도 어떻게 버젓이 탄압을 자행하는지 살폈습니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서방 세계로 망명한 야당 인사를 향해서도 감시, 추적, 협박, 납치는 물론 살인을 벌이기도 합니다.

독재자들은 그렇다면 왜 초국가적인 탄압을 자행하는 걸까요? 연구 결과 독재자들에게는 그럴 만한 유인이 충분했습니다. 또 기술이 발달하면서 전에는 할 수 없던 공격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중요한 요인이었습니다.

먼저 국내에서 야당을 숙청하고 언론을 장악해 권력을 공고히 한 독재자들은 나라 밖으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다른 나라로 망명한 야권 인사, 반정부 단체들은 거리낌 없이 본국의 독재 정권의 만행을 고발하고 치부를 드러내며 자신이 애써 잡은 권력을 빼앗아가려는 역도들이죠. 독재자들은 이들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합니다. 루카셴코 정권도 지난해 11월 프로타세비치를 국가의 안보에 위협이 된다며 테러리스트 목록에 올렸습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이제 한 나라의 정보기관은 정권에 반대하는 자들이 어디에 있든 이들을 자세히 감시하고 필요하면 이들 앞에 나타나 이들을 협박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정부의 탄압에 못 이겨 해외로 망명 간 이들이 조직하는 반정부 시위를 저지하고 훼방 놓기도 더 쉬워졌습니다. 과거에는 정치적인 이유로 영국이나 미국으로 망명한 야권 인사들의 신변은 그래도 안전하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몰락하기 직전이던 리비아 독재 정권이나 몇 년째 내전을 치르던 시리아 독재 정권이 영국이나 미국에 망명 중인 야권 인사들을 감시하고 있던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초국가적인 탄압을 효과적으로 저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해온 국제 규범이 갈수록 약해져 이제는 거의 유명무실한 수준이 된 것도 문제입니다. 여기엔 미국이 주도한 ‘테러와의 전쟁’ 탓이 큽니다. 미국은 전 세계 곳곳에 비밀리에 포로수용소를 만들어 운용하고 각국의 국내법은 물론 국제법 위에 군림하며 포로들을 옮겨 가두기 위해 전 세계 여러 나라와 공조해 왔습니다.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은 중국 같은 권위주의 정권이 위구르족 같은 자국 내 소수민족을 탄압하거나 다른 나라로 피신해 있는 반정부 인사를 감시하고 탄압할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각국 정부의 이런 감시, 사찰, 탄압은 어느덧 전 세계적으로 일상이 돼 버렸습니다. 문제가 드러날 때마다 비난이 이는 것도 잠깐일 뿐 이내 잠잠해지면 정보기관은 해오던 사찰을 계속하죠. 2021년 프리덤 하우스의 보고서를 보면 중국, 이란, 러시아, 르완다,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같은 나라들은 나라 밖에서 더욱 과감하게 ‘작전’을 펼쳤습니다. 2017년에 아제르바이잔 정보기관 요원들이 이웃 나라 조지아에 있는 기자를 납치했을 때 국제 사회는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러시아는 곧바로 벨라루스 정부 편을 들고 나섰습니다. 러시아 외교부의 마리아 자카로바 대변인은 예상대로 서구 국가들의 이중잣대를 지적하고 나섰죠.

“서구 국가들이 벨라루스 영공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충격적이라는 표현을 동원해가며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충격적입니다.”

그러면서 자카로바 대변인은 2013년에 미국이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이 탄 비행기를 오스트리아 영공에서 강제로 착륙시킨 사건을 언급했습니다. “당신네가 과거에 한 짓은 잊고 지금 누가 누구를 욕하는 거냐”는 ‘whataboutism’을 들고나온 거죠. 당시 미국은 모랄레스 대통령 전용기에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기밀문서를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이 타고 있다는 첩보를 듣고 작전을 수행했습니다.

벨라루스의 이번 행동이 얼마나 많은 규탄을 받는지와 무관하게 루카셴코 대통령을 비롯해 이번 결정에 관여한 정권 관계자에게 책임을 묻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많은 나라는 초국가적인 탄압을 적극적으로 처벌하고자 독재 정권을 압박하다 애꿎은 그 나라 시민들에게 도리어 화가 미칠까 걱정합니다. 자국 시민들의 권리가 침해되거나 국제 안보 질서가 흐트러지는 데서 오는 피해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고 판단하죠. 그러다 보니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워버리지 않는 쪽으로 번번이 결정이 나고, 초국가적인 탄압은 제재받지 않고 이어집니다. 벨라루스나 러시아 같은 독재 국가에 제재를 부과했다가 당할 수 있는 보복 조치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국과 유럽연합은 우선 벨라루스 국적기의 영국, 유럽 영공 운항을 금지했고, 모든 유럽연합 국적기에 벨라루스 영공을 우회해 가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유럽연합 안에서도 헝가리는 벨라루스에 너무 강력한 제재를 부과하는 것을 반대할 것으로 보입니다. 헝가리는 전에도 유럽연합이 중국 등 권위주의 국가의 인권 침해 문제나 반민주적인 행위를 비판할 때마다 여러 차례 다른 의견을 낸 바 있습니다.

민간 기업이 직접 항의하거나 보복 조치에 나서기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이번 사건의 핵심 당사자라 할 수 있는 라이언에어의 마이클 오리어리 CEO는 이번 일을 “국가가 개입한 하이재킹이자 국가가 해적질한 것”이라고 맹렬히 비난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라이언에어는 벨라루스 영공을 지나는 항로를 계속 이용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규범을 지키지 않는 반민주적인 행위자를 비난하는 것과 실제 제재를 가하는 일은 별개라는 분석이 이번에도 들어맞게 됐습니다. 특히 제재를 가하기 위해 내가 일정 부분 경제적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경우엔 더 그렇습니다.

이번 사건은 초국가적인 탄압과 민주주의의 후퇴, 국제 규범의 와해가 얼마나 깊이 얽히고설켰는지 잘 보여줍니다. 정책결정자 중에는 자국의 외교 정책이 악영향을 받지 않을까 두려워 국제 규범을 대놓고 어기는 독재 정권을 규탄하기 주저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처럼 독재 정권이 다른 나라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면서까지 대담하게 활개 친다면 국제 사회도 더 강력히 대응해야만 합니다.

지난 수십 년간 민주주의가 후퇴할 때마다 서구 국가들은 각각 다른 잣대를 들이대며 선별적으로, 뜨뜻미지근하게 대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국제 사회가 한목소리를 내는 일은 거의 없었고, 루카셴코 같은 독재자들은 이런 무관심을 먹고 연명하며 권력을 지켰습니다. 지금이라도 국제 사회가 이번 일을 한목소리로 강력히 규탄하지 않는다면, 권위주의 정권과 독재자들은 민간 여객기를 납치하고 위협하는 것을 초국가적인 탄압의 새로운 도구로 활용하려 할 겁니다. 독재자들은 국내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외부에서 분란을 일으키려 합니다. 또한, 외부의 적을 상기시켜 이를 빌미로 정적을 제거하는 것도 독재자들이 오랫동안 써온 수법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