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애틀란타 총격 사건, 혐오범죄법 적용 여부보다 중요한 것
2021년 4월 2일  |  By:   |  정치, 칼럼  |  No Comment

(애틀란틱, Saida Grun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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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미국의 한 대학교 기숙사에서 학생 한 명이 다른 학생을 야구 방망이로 구타한 사건이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한 적이 있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곳은 조지아주 애틀란타에 있는 모어하우스 칼리지(Morehouse College)로, 조지아주가 당시 새로 제정한 지 얼마 안 된 혐오범죄법을 최초로 적용한 재판이 벌어지면서 전국적인 관심이 쏠렸습니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습니다. 애런 프라이스(당시 19세)는 그레고리 러브(당시 20세)가 자신이 샤워하는 걸 쳐다보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이를 성적으로 접근하려는 의도로 파악한 프라이스는 동성애자를 향한 혐오가 담긴 욕설을 퍼부으며 방 안에 있던 야구 방망이로 러브를 때렸습니다. 피해자 러브는 자신이 안경을 쓰지 않고 있어서 누가 샤워하고 있는지 분간할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가해자이자 법정에선 피고였던 프라이스는 가중 처벌이 가능한 특수 폭행과 폭력죄로 10년형을 선고받았는데, 여기에 혐오범죄법을 적용하면 형이 15년으로 늘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사건에 혐오범죄법의 조항을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즉, 성폭력 위협을 느낀 프라이스가 정당방위를 한 것으로 봤으며, 동성애를 혐오하는 욕설을 했느냐를 두고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는 프라이스의 주장을 받아들여 이 사건은 혐오범죄가 아니라고 규정한 겁니다.

성 소수자 권리 단체들은 프라이스를 혐오범죄로 처벌하지 못한 것을 강력히 비판했습니다. 동시에 혐오범죄법이 작동하는 원리와 구조에 대한 관심도 커졌죠. 정확히 말하면, 명백한 혐오범죄조차 혐오범죄로 처벌하지 못하는 허울뿐인 법의 문제를 사람들이 인식하기 시작한 겁니다. 지난달 16일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으로 8명이 숨졌습니다. 희생자 가운데 6명은 아시아계 여성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조지아주 경찰과 수사 당국은 범인인 백인 남성이 주로 유색인종 여성을 살해한 범죄를 두고 인종주의나 여성 혐오가 범죄의 동기로 작동했다고 보지 않았습니다. 기소 항목에 혐오범죄라고 쓰기를 내내 주저했죠. 경찰 대변인은 “그날 일진이 사나웠다”는 범인의 말을 그대로 인용한 발표로 원성을 샀습니다. 다만 이 사건에 혐오범죄법을 적용하라고 압박하기에 앞서 법조문과 법을 적용하는 절차 자체가 다분히 상징적이라는 점을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일부 강경 보수 세력이 성 소수자를 향한 차별금지법이나 혐오범죄 금지 법안을 막아서려고 시도한 적이 있긴 하지만, 미국 의회에서 혐오범죄를 규탄하는 성명이나 혐오범죄를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법들은 대부분 민주·공화 양당의 초당적 지지를 받고 쉽게 통과됐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제정된 법은 혐오범죄 피해자의 상황을 개선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법대로 혐오범죄가 적용되면 유죄 판결문의 길이가 길어집니다. 죄목에 혐오범죄가 더해지죠. 처벌은?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미 기존 형법에 따라 받는 형량이 혐오범죄가 된다고 늘어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심지어 혐오범죄로 규정하지 못해 가해자를 아예 처벌하지 못할 때도 더러 있습니다.

혐오범죄는 실제 아주 다양한 형태로 수시로 일어나는데, 혐오범죄법이 오히려 범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대중의 시야를 가려버리는 점도 큰 문제입니다. 인종차별, 외국인 혐오, 트랜스젠더 혐오, 반유대주의, 이슬람 혐오, 여성 혐오, 동성애 혐오, 장애인 차별을 비롯해 수많은 혐오범죄가 있는데, 단지 법을 어겼는지 여부에 너무 골몰하다 보면 혐오범죄의 양상과 원인, 구조적인 문제점 등을 더욱 폭넓게, 자세히 이해하기 어려워집니다.

혐오범죄는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 일어나는 주로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한 공격으로, 인종, 성, 성적 지향, 성별, 국적, 종교, 장애 여부와 같은 정체성이 상대방을 공격하는 원인일 때 이를 혐오범죄로 봅니다. 다만 여기서 말한 공격의 원인, 즉 범죄의 동기(motivation)는 다분히 주관적인 개념입니다. 범인이 잘 알려진 테러 단체나 혐오범죄 단체 소속이거나 그런 단체와 연관이 있을 때, 범행을 저지르며 혐오가 담긴 욕설을 하는 걸 본 목격자가 있을 때, 또는 극단주의 단체의 문양을 범행 현장에 그려놓는 등 물리적으로 명징한 증거가 있을 때 정도를 빼면 범죄의 동기를 객관적으로 증명해 혐오범죄를 법률상 입증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연방과 주의 혐오범죄법은 모두 이 정의를 따르는데, 특히 연방법에는 가해자가 피해자의 정체성이 달랐다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거라는 점까지 입증해야만 혐오범죄가 성립되는 이른바 “but for” 조항이 있습니다.

FBI의 크리스토퍼 레이 국장은 앞서 애틀란타 총격 사건의 범행 동기가 “인종과는 관계가 없어 보인다”라고 말했습니다. 수사관들도 범인이 체포된 뒤 인종차별이나 다른 인종에 대한 적개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글 머리에 소개한 프라이스 사건을 생각해봅시다. 피해자인 러브는 가해자 프라이스가 자신을 때릴 때 동성애 혐오가 담긴 욕설을 내뱉었고 이를 분명히 들었다고 주장했지만, 가해자 프라이스가 혐오범죄 혐의를 벗기는 너무 쉬웠습니다. “나는 그런 적이 없다.”라고 간단히 발뺌하면 그만이었습니다.)

여전히 수사 기관이나 법원이 애틀란타 총격 사건을 혐오범죄로 규정할 가능성이 여전히 있지만, FBI 레이 국장의 발언만 봐도 혐오범죄를 대단히 편협하게 해석하고 있다는 걸 엿볼 수 있습니다. 다른 인종에 대한 공격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향한 공격도 혐오범죄입니다. 그런데 레이 국장은 인종과 관계가 없어 보이기 때문에 혐오범죄가 아니라는 취지로 발언했습니다. 미국에서 일어나는 혐오범죄 통계를 보면 여성을 향한 남성의 공격이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습니다. 여성이라서 살해당하는 경우(femicide, 1976년 인권운동가 다이애나 러셀이 만든 말)는 물론이고, 가정폭력이나 성폭행, 성추행, 스토킹도 대개 여성이 피해자, 남성이 가해자입니다. 하나같이 여성을 낮잡아보는 여성 혐오가 바탕에 없다면 일어나지 않을 범죄지만, 이는 혐오범죄로 분류되지 않습니다.

1980년대 들어 자주 쓰이기 시작한 혐오범죄라는 단어는 거의 모든 주의 형법에 포함됐습니다. 1918년에 의회에서 발의된 다이어 린치 금지법(Dyer Anti-lynching Bill of 1918)이 혐오금지 법안의 조상 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법은 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NAACP)가 줄기차게 요구해 공화당이 발의했지만, 민주당이 필리버스터를 하는 한이 있어도 절대 통과시키지 않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통과되지는 못했습니다. 흑인들은 피부색 때문에 언제든지 백인들에게 집단 구타당할 위험이 있다는 생각에 공포에 떨었습니다. 노예제가 가장 늦게까지 남아있던 남부에선 흑인들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조금이라도 향상될 기미를 보이면 백인들은 어김없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집단 구타를 일삼았습니다. 1877년부터 1950년 사이에 발생한 집단 구타 사건만 4,400건이 넘습니다. 집단 구타의 피해자 가운데는 흑인 남성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집단 구타 피해만 살펴보면, 백인 남성들에게 강간, 살해당한 숱한 흑인 여성의 피해를 간과하게 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1944년 일어난 레시 테일러 사건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테일러 씨는 앨라바마주에 살던 24세 흑인 여성으로 엄마이자 소작인이었는데, 어느 날 교회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백인 남성 6명에게 납치됐고, 강제로 눈을 가린 채 총으로 살해 위협을 받으며 성폭행당했습니다. 테일러 씨는 오늘 당한 일을 어디에 가서도 발설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나서야 가까스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집에 돌아온 테일러 씨는 가족에게 자신이 당한 일을 털어놓았고, 테일러 씨 가족은 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에서 활동하고 있던 몽고메리 출신 21살 여성 활동가 로자 파크스(Rosa Parks)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남부에 사는 흑인 여성들은 언제든지 테일러 씨처럼 성범죄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 살았습니다. 흑인 여성을 향한 백인 남성들의 공격이 빈발했던 건 백인이 흑인을 낮잡아봤기 때문이죠. 특히 흑인 여성 가운데 백인의 저택에서 가정부로 일하며 백인에게 생계를 의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성폭력이 발생할 수 있는 위계가 생겨났으며, 끔찍한 혐오범죄가 (백인 중심) 사회에서는 용인된 겁니다. 집단 구타 피해자 중에 간혹 흑인 여성이 있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강간당한 뒤 피해 사실을 알리고 백인 남성을 ‘감히’ 범인으로 지목한 이들이었습니다. 로자 파크스는 테일러 씨를 성폭행한 범인들을 기소해야 한다고 캠페인을 벌입니다. 그러자 경찰은 오히려 그런 주장을 펴는 파크스를 공격했고, 당장 마을을 떠나지 않으며 그녀를 감옥에 처넣겠다고 협박하기도 했습니다. 테일러 씨를 성폭행한 이들은 끝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오랫동안 이렇게 만연한 성폭력을 간과한 채로 지내다 만든 혐오범죄법이 오늘날까지 이어진 탓에 인종, 성별, 성적 지향을 포함한 여러 정체성이 복잡하게 얽혀 혐오범죄의 동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법에 제대로 반영이 안 됐는지도 모릅니다. 또한, 프라이스 사건에서 확인했듯 범행 동기를 밝혀 혐오범죄임을 입증하는 일도 매우 어렵기 때문에 현행 혐오범죄법은 범죄가 발생하고 나서 범인에게 죄를 무는 데 그나마 쓰일 뿐 차별과 혐오범죄를 사전에 억제하고 예방하는 데는 거의 무용지물입니다. 혐오범죄 피해자는 레시 테일러나 이번 애틀란타 총격 사건 피해자들처럼 인종과 성별 등 뚜렷하게 드러난 정체성 탓에 쉽게 범행의 표적이 됩니다. 그런데도 혐오범죄법은 멀쩡히 드러난 증거들에는 애써 눈을 감으면서 자꾸 가해자의 마음속에서 피해자가 여성이나 아시아인이었던 게 범행에 영향을 미쳤는지 추상적인 퍼즐을 맞추는 데만 골몰하게 합니다.

프라이스 사건 판결이 난 이듬해 조지아주 대법원은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난다며 만장일치로 혐오범죄법에 위헌 결정을 내립니다. 그러다 지난해 자경단에 속한 백인 남성 두 명이 흑인 아흐무드 아버리 씨를 총으로 쏴 살해한 사건 이후 조지아주 의회는 혐오범죄법을 새로 썼습니다. 지난해 6월 브라이언 켐프 주지사가 서명한 법안은 집단 간 편견에서 비롯된 혐오범죄의 처벌 규정을 강화했고, 이제 주 정부는 혐오범죄 관련 데이터도 더 철저히 모으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범인이 혐오범죄를 저지른 배경과 동기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아주 드문 사례 몇 경우를 제외하면 혐오범죄법을 적용하기도 어려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혐오범죄가 일어나는 바탕에는 불평등도 있습니다. 즉, 자신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고, 사회적으로 벼랑 끝에 몰리게 되면 이를 다른 인종이, 외국인이, 여성이 내 몫을 빼앗아가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비뚤어진 상황 인식은 엉뚱한 분노를 낳죠. 혐오범죄 피해를 본 집단은 언제든 또 다른 범죄의 목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제도하에서는 불평등을 줄이고 완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혐오범죄법 덕분에 더 많은 예산을 받게 된 사법당국이 혐오범죄 피해자들을 더 곤란하게 하는 장치를 만들기도 합니다.

사법당국은 역사적으로 혐오범죄를 묵인하고 방관했으며, 때로는 공범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아예 잠재적인 가해자를 혐오범죄 피해자로 둔갑시킬 수 있는 규정을 만들려는 움직임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지난해 조지아주 공화당은 사건·사고가 났을 때 현장에 가장 먼저 가게 돼 있는 긴급구조대원(first responders)을 혐오범죄법으로 보호받게 하자는 내용을 법에 넣으려 했습니다. 긴급구조대원은 범위를 넓게 잡으면 시위 현장에서 질서를 유지하는 업무를 수행 중인 경찰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흑인들이 주로 다니는 교회에 어떤 인종주의자가 불을 질러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시위를 하다가 현장에서 경찰의 체포에 저항한다면 이 시민은 혐오범죄법을 어기게 되는 셈입니다. (긴급구조대원을 포함하자는 내용은 조지아주에선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루이지애나주에서는 받아들여졌습니다.)

조지아주의 사례는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는 소수 집단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안 되는 현행 혐오범죄법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수많은 사례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혐오범죄법은 사람들이 이런 종류의 폭력이 왜 일어나는지 그 구조를 이해하고, 소수 집단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돼야 합니다. 또 무엇보다 성폭력이 가장 만연한 혐오범죄임을 직시하게 하는 토대가 되지 못한다면, 겉보기에만 거창한 혐오범죄법은 그저 폭력범의 형량에 간접적인 영향이나 미치는 게 전부인 법령의 세칙 수준에 그치고 말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