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전기차 시장이 글로벌 선두로 성장한 원동력, 그리고 한계에 맞닥뜨린 이유
2021년 3월 23일  |  By:   |  경영, 세계  |  No Comment

(월스트리트저널, William Boston)

원문보기

 

유럽의 전기차 판매량이 정부 보조금과 수십 종의 신차 효과에 힘입어 전례 없는 속도로 급증했습니다. 이제 유럽은 중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전기차 시장이 됐습니다.

지난해 유럽의 글로벌 전기차 신차 판매 점유율은 전년보다 두 배 가까이 늘어난 43%였습니다. 반면, 또 다른 거대 시장인 중국과 미국의 점유율은 감소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정부가 지원을 중단하면 전기차 판매가 하락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유럽의 전기차 판매는 팬데믹 기간에 지급된 정부 보조금 덕택에 급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럽 각국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은 대부분 올해 말까지만 지급됩니다.

시장조사 업체인 번스타인 리서치(Bernstein Research)의 아른트 엘링호스트 자동차 산업 애널리스트는 이렇게 전망했습니다.

전기차 시장은 정부 지원금과 자동차 회사의 가격 할인에 매우 민감합니다. 정부 보조금이 중단되면 전기차 판매는 3~6개월 사이에 최소 30~40% 급감할 것입니다.

보조금을 제외한 전기차의 판매 가격은 비슷한 수준의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훨씬 비쌉니다. 새로운 기술, 규모의 경제, 치열한 경쟁으로 전기차 배터리의 가격이 하락하기까지는 10여 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따라서 2030년 이전에는 전기차의 가격 경쟁력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애초 유럽은 전기차 보급을 늘리기 위해 당근보다는 채찍을 활용했습니다. 유럽연합은 자동차 배출가스 규제를 꾸준히 강화하면서 기업들이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차량 보급을 늘리도록 유도했습니다.

그러나 작년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이 시장을 강타하자 유럽 정부는 기후변화 대응에 이바지하는 기업에 경기 부양 예산을 지원했습니다. 상당한 규모의 지원금이 전기차 구매 보조금으로 투입됐고, 이는 전기차 수요 증가를 이끌었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전기차 시장에 대한 업계의 시각을 바꿔놓았고, 전기차 생산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는 배경이 됐습니다.

중국 지리자동차(Zhejiang Geely Holding Group)가 소유한 볼보(Volvo)의 하칸 사무엘슨 CEO는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정부의 구매 지원금은 전기차 판매를 늘리는 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이런 인센티브와 세금 감면 혜택을 지속할 수 없습니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전기차 모델을 출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럽 최대 자동차 제조사인 폭스바겐(Volkswagen AG)이 전기차 모델 ID.3와 ID.4를 공개했습니다. BMW, 벤츠(Mercedes), 아우디(Audi) 등 프리미엄 브랜드는 럭셔리 전기차를 출시했습니다. 벤츠는 s 클래스의 뒤를 이을 야심작으로 예고한 전기차 전용 모델 EQS의 출시를 앞두고 있습니다.

지난해 유럽에서 출시된 신형 전기차 차종은 중국의 두 배가 넘는 65종이나 됩니다. 올해는 유럽 시장에 99종의 새로운 전기차 모델이 선을 보입니다. 미국과 비교해도 훨씬 큰 규모입니다. 미국 시장에서는 작년 15종의 신형 전기차가 출시됐고, 올해는 64개 모델이 등판할 예정입니다.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정부 인센티브와 신형 모델 출시 효과가 시너지를 일으켜 전기차 수요와 공급의 동시에 상승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친숙한 브랜드의 전기차 모델도 소비자들을 유혹합니다. 65세의 노르웨이 환경 운동가이자 전직 정치인 할게이어 랑엘란은 지난 25년간 자동차를 보유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포드(Ford Motor Co.)에서 전기차 머스탱을 출시하자 주저 없이 지갑을 열었습니다.

그는 머스탱 전기차를 보며 젊은 시절 자신이 몰았던 머스탱을 떠올렸습니다. “난 이 차를 사야만 했습니다. 체리 레드 색상을 선택했어요. 머스탱을 인수하는 3월이 너무 기다려집니다.”

노르웨이는 보조금을 바탕으로 세계 제일의 전기차 시장으로 떠올랐습니다. GM이 이번 슈퍼볼 때 미국의 전기차 구매를 늘려 세계 1위인 노르웨이의 전기차 시장을 따라잡자는 광고를 냈을 정도입니다.

독일에서 에너지 효율 주택 사업을 하는 크리스티안 부르크는 디젤 SUV인 BMW X3를 몰았습니다. 지난해 여름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을 늘리자 중소기업용 보조금을 신청해 하이브리드 자동차인 iX3로 바꿨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난해 차를 바꾸면서 인센티브 3,750유로(510만 원)를 받았습니다.”

시장조사 업체인 EV 볼륨스닷컴(ev-volumes.com)은 지난해 유럽의 전기차 판매량이 137% 증가한 140만 대를 기록하며, 중국과 미국을 따돌렸다고 발표했습니다. 중국의 전기차 판매는 12%가 늘어난 130만 대, 미국의 전기차 판매는 4%가 늘어난 33만 대를 기록했습니다.

유럽의 전기차 시장을 보면 수년 전 중국의 사례가 떠오릅니다. 중국 정부는 서구 자동차 산업을 뛰어넘기 위해 막대한 구매 보조금을 지원했고, 매년 신차의 일정 비율을 전기차로 생산하도록 자동차 제조사들에 요구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수백 개의 전기차 스타트업이 등장했고, 2019년 중반 전기차 판매 비율이 8%를 넘어섰습니다. 상당한 성과를 이뤘다고 평가한 중국 정부는 2019년 6월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대폭 삭감했습니다. 그 결과, 전기차 판매는 급감했고, 2019년 말에는 신차 중 전기차 비율이 5%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닥치자 중국의 전기차 시장은 더욱 위축됐습니다. 2025년까지 전기차 비중 20%를 공언한 중국 정부의 계획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2019년 줄였던 보조금을 지난해 초 늘렸지만, 올해 1월 전기차 시장의 자생력을 높이기 위해 보조금을 다시 삭감했습니다.

한편, 유럽 국가들은 전기차 보조금을 올해 말 폐지하려던 계획을 다시 검토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독일, 프랑스처럼 자동차 생산량이 많은 국가는 지원금 제도를 연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평가합니다.

업계에서는 전기차와 같은 새로운 기술 시장에 대한 정부의 초기 지원을 반깁니다. 다만, 전기차 시장이 자생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보조금과 단기 인센티브보다는 지원의 초점을 구조 개선에 맞춰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다시 말해, 일시적 수요 창출 효과를 노린 구매 보조금 대신에 전기차 충전소 확충, 배터리 공장 건설 지원, 탄소배출 과세 등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