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만다 고만의 시 “오르막길”
2021년 1월 23일  |  By:   |  문화, 세계  |  No Comment

현지 시각으로 20일 거행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아마도 가장 많은 이목을 끈 인물은 미국 최초로 ‘미국을 대표하는 젋은 시인(National Youth Poet Laureate)’이란 칭호를 얻은 아만다 고만(Amanda Gorman)이었을 겁니다. 고만 시인이 취임식에서 낭송한 시 “오르막길(The Hill We Climb)”을 번역했습니다.

* 다른 언어로 쓴 문학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은 당연히 기사나 칼럼을 번역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작업입니다. 원어인 영어로 들어야 시인이 표현하고자 한 말의 맛이 전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당연히 라임도 더 잘 들릴 테고요. 뉴스페퍼민트가 소개한 다른 글도 마찬가지지만, 이번 번역은 특히 독자 분들이 더 좋은 표현을 제안하거나 오역을 지적해주시면 계속해서 고쳐나가볼 생각입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6분 정도 분량의 영상을 꼭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가디언에서 정리한 원문 보기


오르막길

태양이 떠오르면, 우리는 오늘도 스스로 묻는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과연 빛을 찾을 수 있을까?

우리가 이고 가야 할 공허, 우리가 헤쳐나가야만 하는 이 거친 바다.

우리는 그 길에서 짐승의 요동치는 멱 앞에 용감히 섰다.

고요하다고 곧 평화롭지 않다는 것을, 옳고 그름을 규정하는 수많은 규범과 견해들이 항상 정의롭지도 않다는 것을 우리는 배웠다.

그렇지만 새벽은 늘 어느새 우리 앞에 와 있다.

우리가 어쩌면 빛을 찾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 우리 앞에는 부서지지 않은, 단지 미완일 뿐인 국가가 있다.

우리는 지금 노예의 후손이자 홀어머니 손에 자란 깡마른 흑인 소녀가 대통령을 꿈꾸고, 대통령 앞에서 이렇게 시를 낭송하는 세상을 살고 있다.

물론 우리는 아직 모든 걸 갖추지 못했다. 완전무결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우리가 모든 면에서 완벽한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 우리는 뚜렷한 목적을 위해 나아가는 공동체를 지향한다. 그 목적이란 모든 문화, 인종, 성격, 그리고 인간의 조건이라 할 만한 것들을 아우르는 나라를 만드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눈을 들어 우리 앞에 놓인 오르막길을 바라본다. 우리를 갈라놓으려는 걸림돌에 눈길을 주는 대신에.

우리의 미래를 최우선으로 두려면 서로 간에 나타나는 차이를 부각해선 안 되기에 우리는 우리 안의 차이를 봉합한다.

총을 내려놓는 것도 총을 들고 있던 손을 뻗어 서로에게 더 다가가기 위함이다.

우리는 누구도 다치지 않는, 모두가 조화를 이뤄 공존하는 세상을 추구한다.

적어도 세상이 다음 사실만은 알아줄 테니까 괜찮다.

우리는 슬픈 순간에도 성장했으며, 상처를 입을지언정 희망은 잃지 않았다.

힘이 다할 때까지 노력했으며, 그리하여 우리는 영원히 하나로 똘똘 뭉쳐 승리할 것이다.

우리가 다시는 패배를 모르는 불사신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서가 아니다. 다시는 우리를 갉아먹을 분열을 우리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서 그렇다.

 

성경은 우리에게 누구나 자신만의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앉을 수 있을 거라며 누구도 두려움에 빠지지 않을 거라고 말해준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살아낸다면, 승리는 닿지 않는 먼 곳에 있지 않을 거다. 우리가 세운 모든 다리마다 승리로 가득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 역경을 헤쳐나가기로 마음먹고 이 험한 산을 오르고 나면 우리 앞에 펼쳐질 작지만 안락한 초원 같은 약속이다.

미국인에게는 우리가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자부심 이상의 것이 있다.

바로 우리가 지나온 과거를 다시 돌아보며 잘못된 부분을 고쳐내는 힘, 과거를 직시하는 힘이다.

우리는 최근 이 나라를 더불어사는 곳으로 가꾸는 대신 산산이 부수려 한 폭력을 겪었다.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거스른 그 폭력은 미국을 파괴하려는 시도였다. 그 시도는 거의 성공할 뻔했다.

그러나 우리는 자명한 사실을 알고 있다. 민주주의란 잠깐 늦춰질 수는 있을지 몰라도 절대로 영원히 굴복시킬 수 없다는 것을.

이 사실과 가치를 믿기에 우리는 눈을 들어 미래를 바라보고, 우리의 과거는 역사가 되어 우리의 걸음걸음을 밝혀준다.

지금을 정당한 구원의 시대라 불러도 좋다.

처음에는 이 시대가 두렵기도 했다.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세상에 당당히 두 발로 설 준비가 안 됐다고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 앞에 서고 나서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힘이 우리에게 있음을, 스스로 희망과 웃음을 채워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한때는 ‘이 끔찍한 상황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를 고민했지만, 이제는 세상을 향해 ‘감히 그정도 역경에 우리가 굴복할 쏘냐?’라고 외친다.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고, 미래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다.

이 나라는 과거의 상처로 멍이 들었을지 몰라도 온전히, 자애롭고, 대범하고, 용맹하며, 자유롭다.

우리는 뒤돌아보지도, 위협에 굴하지도 않을 것이다. 타성에 젖어 행동하지 않는다면 다음 세대에게 떳떳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의 작은 실수가 그들에게 무거운 짐이 될 수 있기에.

그렇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우리가 자비에 옳은 결단을 더하면, 우리 시대의 유산으로 사랑을 물려줄 수 있다. 그리하여 아이들이 태어나면 얻게 될 권리도 나아질 것이다.

 

우리가 물려받은 나라보다 더 훌륭한 나라를 물려주자.

뛰는 가슴에서 나오는 숨결 하나하나를 동력으로 우리는 상처 입은 세상을 경이로운 곳으로 바꿔낼 거다.

서부의 금빛 언덕에서, 우리 조상들이 혁명의 가치를 처음으로 체득한 바람 부는 북동부에서, 호수와 도시가 번갈아 펼쳐지는 중서부에서, 태양이 작렬하는 남부에서 우리는 힘을 모을 거다.

우리는 재건하고, 서로 이해하고, 회복할 거다.

방방곡곡에서 우리나라와 다채롭고 아름다운 국민들이 일어서 힘을 합칠 거다. 쉬지 않고 하나가 될 거다.

태양이 떠오르면, 우리는 짙은 어둠 속에서 나와 두려움 없이 활활 타오르리라.

우리가 쟁취한 자유의 신새벽이 온다.

그곳에는 언제나 환한 빛이 가득하다.

우리가 용기를 내 쳐다볼 수만 있다면,

우리가 용기를 내 자유로울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