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기술 냉전의 도래
2020년 9월 22일  |  By:   |  IT, 경제, 칼럼  |  No Comment

(포린 어페어스, Adam Seg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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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맞서기 시작한 중국

트럼프 정부가 출범 3년 반 만에 중국과의 기술 경쟁을 위한 종합적인 전략을 내놓았습니다. 중국 거대 테크기업이 포함된 공급망을 단절하고, 미국 기업과 해당 기업 간 거래를 금지하고, 통신용 해저 케이블을 규제했습니다. 이런 조치는 때로는 불완전하고, 즉흥적이며, 미국의 혁신 시스템을 저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향후 미국의 대중국 기술 전략의 방향을 정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중국으로 기술 유출을 금지하고,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하고, 미국의 첨단기술에 투자하는 것이죠. 미국의 차기 정부도 이러한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의 대응 전략도 확고합니다. 중국은 미국의 제재에 따른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반도체를 포함한 핵심기술 개발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자국의 테크기업을 동원하는 것은 물론, 일대일로 참여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사이버 산업 스파이 활동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기술 냉전의 양상이 분명해졌지만, 이 경쟁에서 어느 나라가 이득을 볼지는 미지수입니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기술 단절로 인해 단기적으로 기술 혁신의 비용이 상승하고, 속도가 더뎌질 것입니다. 도이체방크(Deutsche Bank)는 향후 5년간 기술 전쟁의 비용이 3조 5천억 달러(4,08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이러한 막대한 비용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중국은 기술 전쟁을 국가 안보의 문제로 삼고 기술개발 속도전에 나섰습니다.

 

중국의 대응 전략

트럼프 정부는 대중국 기술 경쟁의 방향을 잡았으며, 대선을 거쳐 정권이 바뀌더라도 정책의 미세 조정 외에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입니다. 물론, 다양한 변화가 있을 수 있죠. 원산지 규정에 근거해 포괄적으로 서비스를 금지하는 현행 규정을 강력한 개인정보 보호 규제로 바꿀 수 있습니다. 틱톡, 위챗을 포함한 중국산 앱의 개인정보, 검열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이외에도, 중국과 기술경쟁 과정에서 새로운 정책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차기 정부가 동맹국과 관계를 개선한다면 국제표준 개발, 지적 재산권 보호, 5G 등 신기술에 투자하는 데 국제 협력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트럼프 정부는 인공지능, 양자 정보과학 분야에 대한 지출을 30% 늘리자고 제안했지만, 다른 분야로 더 넓힐 수도 있겠죠. 트럼프의 반 이민정책을 개혁해 미국보다 호주, 캐나다, EU, 영국을 찾았던 고급 인재를 다시 미국으로 끌어올 수 있습니다. 이는 반도체와 인공지능 분야에서 미국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

하지만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트럼프 정부가 세운 전략적 목표와 방향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중국으로 기술 유출을 차단하고, 첨단기술 공급망을 복원해 미국의 혁신 시스템을 재건하는 기조를 유지할 것입니다. 중국도 이미 미국의 전략을 뻔히 알고 있으며, 이에 대비해 미국이 보유한 핵심 기술에 의존하지 않는 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올해 개최된 중국의 전국 인민대표대회에서 지방정부와 기업이 AI, 데이터센터, 5G, 산업 인터넷을 비롯한 첨단기술 분야에 1조 4천억 달러(1,630조 원)를 투자하는 5개년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특히 중국 정부는 미국에 대한 반도체 기술 의존도를 낮추려 합니다.  2019년 10월, 290억 달러(34조 원) 규모의 반도체 펀드를 설립했고, 지난 8월에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중국 유치를 위해 세제 혜택, 연구개발 지원을 망라한 정책을 마련했습니다. 정부 지원을 받은 반도체 기업 2곳은 대만의 반도체 제조기업인 TSMC(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의 기술자와 관리자 100명 이상을 영입했습니다. 최근 대만의 사이버 보안 업체는 중국 해커 그룹이 2년에 걸쳐 대만의 7개 반도체 회사에서 소스 코드, 소프트웨어 개발 키트, 반도체 설계기술을 탈취했다고 밝혔습니다.

기술 의존을 벗어나려는 중국의 정책은 새로운 거시적 경제전략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중국의 국유 언론은 최근 시진핑 주석이 내건 이중 순환(Dual circulation theory) 전략을 적극적으로 홍보했습니다. 이 전략의 구체적인 내용은 불분명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경제성장을 이끌어 온 수출주도형 경제를 탈피해 기술 자립을 이루기 위해 국내 소비와 시장을 확대하고, 자국 기업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 방점을 찍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의 류허 부총리가 미국의 제재로 인한 자국 기업과 산업의 피해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특별히 어려운 분야에 정부의 연구개발 자금을 추가로 지원할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 정부는 민간 테크 기업의 참여를 독려하고 나섰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7월에 열린 기업인 간담회에서 기업들에 애국심을 가지고 혁신에 나설 것을 주문했습니다. 참석한 25개 기업 중 절반 이상이 반도체, 인공지능, 스마트제조 등 첨단기술 분야였습니다. 알리바바는 지난 2018년 9월 반도체 분야 자회사인 핑터우거를 설립했고, 바이두는 2019년 7월 인공지능 칩 쿤룬을 출시했습니다. 알리바바와 텐센트는 클라우드 서비스와 데이터 센터의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대규모 신규 투자를 발표했습니다.

중국은 공급망 다변화를 꾀하면서 미국의 제재를 피할 수 있는 오픈소스 솔루션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화웨이는 구글의 모바일 서비스를 대체하는 오픈소스 운영체제를 개발하기 위해 개발자 영입에 10억 달러(1조 2천억 원)를 투자하기로 약속했습니다. 또한, 중국은 오픈소스 칩 설계 프로젝트인 리스크파이브(RISC-V)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도 중국 기업의 진출에 제동을 걸 경우, 일대일로 참여국에 대한 디지털 인프라 구축과 서비스 제공에 더욱 주력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중국 정부는 최악의 상황에 꺼낼 수 있는 카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테크 기업에 보복하는 것이죠. 중국 상무부는 비경제적인 이유로 중국 기업에 대한 부품 공급을 중단한 외국 기업에 대해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리스트(unreliable entity list)”를 작성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중국 정부가 해당 기업에 무역, 투자, 규제, 인허가와 관련된 제재를 내릴 경우, 이 기업들은 중국 사업에 크게 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중국 언론과 기업계에서 애플(Apple)과 퀄컴(Qualcomm)이 중국 정부의 타깃이 될 수도 있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미국 정부의 화웨이 제재 방침에 따랐기 때문이죠. 하지만 중국은 일단은 맞불 제재에 나서는 대신 미국과의 무역 분쟁에서 절제되고 책임감 있는 위치를 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장기전 태세

중국과 미국은 앞으로 오랫동안 이어질 기술 경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미국 대선 결과로 상황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술 경쟁에 따른 손실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중국과 미국 모두 국내의 정치적 장벽을 넘어야 합니다.

중국의 산업정책은 슈퍼컴퓨터와 같은 분야에서 성과를 거두었지만, 중앙 정부의 하향식 정책은 비효율, 중복투자, 낭비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반도체 분야에서 미국을 따라잡기 위해 수십 년간 지원금을 쏟아부었지만, 격차를 줄이지 못했고, 최근의 노력도 단기간에 구체적인 성과를 얻기 어려워 보입니다.

미국의 경우, 의회와 집행기관은 혁신 시스템에 관심이 높습니다. 지난 6개월 동안, 국회의원들은 혁신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법안을 제출했습니다. 미국 내 반도체 제조 활성화, 국가 과학재단 설립, 리서치 클라우드 구축 등을 위한 법안이 대표적입니다. 인공지능을 포함한 첨단 분야의 종사자들이 이민 비자를 더 쉽게 취득할 수 있도록 규정한 법안도 발의했습니다.

이러한 활동이 단기적인 정치적 관심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집권당에 상관없이 장기적인 지원이 이어져야 합니다. 지난 3년은 앞으로 다가올 치열한 기술 전쟁의 예고였습니다. 중국은 미국의 정책에 맞추어 응전할 태세를 명확히 보여줬습니다. 미국도 대응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