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도 딴짓 때문에 고민했습니다” – 니르 이얄과의 인터뷰 (2/2)
(Let Me Think, 니르 이얄)
LMT: “방해 받지 않기(Indistractable)”에서 당신은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곧, 평범한 사람과 방해 받지 않는 사람 말이지요. 그리고 앞으로 우리는 점점 더 강력한 도구를 가지게 될 것이며 따라서 이런 구분이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기술을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도 말했지요.
Nir: 앞으로 우리는 새로운 “사회적 항체의 전파(spreading of social antibodies)”현상을 보게 될 겁니다. 이는 사회가 어떤 부정적인, 반사회적인 행동을 발견했을때 이에 대한 일종의 예방접종을 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그런 불건전한 행동을 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기술에 대해서도 같은 대응이 생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내가 태어난 70년대, 그리고 80년대까지 우리 집에는 재떨이가 있었습니다. 거실에 재떨이를 두었지요. 80년대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담배를 피웠습니다. 남의 집에 가서도 바로 담배에 불을 붙였죠. 남의 집 거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 유럽의 경우는 모르겠지만 – 누군가가 남의 집 거실에서 담배를 피운다면 바로 쫓겨날겁니다. 그런 행동은 이제 어처구니 없는 행동이 되었지요. 왜 그렇게 바뀌었을까요? 다른 사람의 집에서는 담배를 피워서는 안된다는 법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그런 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개인적 공간에서 담배를 피워도 됩니다. 바뀐 것은 사람들의 생각이며, 어떤 행동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가 하는 사회적 기준입니다. 오늘날 이 새로운 기술에 대해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미 이런 변화는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방해 받지 않는 사무 공간을 만드는 법을 알려달라며 여러 회사의 초청을 받습니다. 강연장에 들어가면, 제일 뒷쪽에 앉아 자신의 노트북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일까요? 그들은 젊은 사원이 아닙니다. 회사에서 가장 높은 사람들입니다. 자신에게 너무나 중요한 이메일이 많아서 지금 당장 이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을 남들에게 보이고자 하는 이들이지요. 젊은 사원들은 이런 행동이 무례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나이든 이들은 아직 그런 분위기를 모르고 있지요.
LMT: 오늘날은 감정의 시대입니다. 모든 곳에 감정이 있고, 모든 제품이 우리의 감정을 이용하려 합니다. 감정을 조절하는 일의 중요성과 열정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수많은 철학 책들이 있습니다. 당신이 “방해 받지 않기”를 쓸때 그런 책들의 영향을 받았나요?
Nir: 내가 딴짓의 심리학을 연구하기 시작했을때 나는 아이폰이 등장하기 무려 2500년 전인 플라톤 역시 이 문제로 고통을 겪었다는 것을 알고 놀랐습니다. 그리스어로 그는 이를 “아크라시아(akrasia)”라 불렀습니다. 바로 자신에게 이롭지 않은 일을 하려는 경향을 말합니다. 즉 플라톤이 페이스북, 컴퓨터 게임, 아이폰이 등장하기 2500년 전에 이 문제로 고생했다면, 적어도 이 문제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는 이 문제가 최근 등장한 기술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죠. 오히려 인간이 타고난 조건의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아크라시아”를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이 이런 상태를 만들어내는지를, 곧 내가 “내적 자극(internal triggers)”이라 부르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딴짓은 외부 자극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핸드폰의 메시지나 벨소리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자극 때문입니다. 지루함, 불확실성, 공포, 피로, 외로움 등이 그 원인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이런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뉴스를 찾고, 술을 마시고, 페이스북을 하고, 축구 경기를 봅니다. 이것은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이야기한 고대의 지혜와 연결됩니다. 바로 불교의 가르침이지요. 괴로움을 깨닫는것은 나쁜 일이 아니라 바로 인간의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사회에서는, 특히 자기계발 분야의 사람들은 만약 당신이 항상 행복하지 못하고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면 당신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이라 말합니다.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런 상태를 벗어날 방법을 찾게 만듭니다. 지루할때 우리는 레딧을 들어가고, 유튜브를 보며, 뉴스를 읽습니다. 외로움을 느낄때 페이스북에 들어갑니다. 불안할때 우리는 구글에서 무언가를 찾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들을 사용함으로써 위안을 얻는 어떤 습관을 만듭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습관적 행동을 하면서, 과연 우리가 이들을 이용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들이 우리를 이용하는 것인지 묻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사실 이들이 당신을 이용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며, 따라서 이 감정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도를 가지고 이들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충동이나 감정을 제어할 수 없습니다.
담배를 피고 싶은 마음이나 페이스북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 뉴스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은 재채기를 하고 싶은 기분과 비슷한 것입니다. 재채기가 나올때 이를 억지로 참을 수 없습니다. 그 기분은 당신의 머리를 떠나지 않을 겁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그 충동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때 책임감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재채기가 나올때 당신은 모든 사람 앞에서 크게 재채기를 하나요? 아니면 휴지로 코를 막나요?
즉, 우리는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낄지를 결정할 수 없습니다. 그 감정에 어떻게 대응할지만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지루할 때,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 가족 모임이 별로 재미가 없을때 바로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이때 바로 스마트폰을 열어서 기분을 좋게 만들어야 할까요? 아니면 이런 충동을 남에게 상처를 주는 방식이 아니라 보다 긍정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배워야 할까요?
이것이 ‘방해 받지 않는 사람’이 되는 첫 번째 단계입니다. 곧, 내적 자극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자기 계발을 위한 조언이 아닙니다. 만약 당신이 이런 내적 자극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면, 어떤 시간 관리 비법으로도 별 효과를 보지 못할겁니다.
LMT: “훅(Hooked)”과 “방해 받지 않기(Indistractable)”에서 당신은 복잡한 심리학적 원칙들을 단순하게 이론화했습니다. 오늘날 제품 개발자와 마케팅 전문가들은 우리의 뇌에 직접적으로 호소하기 위해 뇌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향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하게 될까요?
Nir: 그 문제는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나도 답을 모르겠네요. 아직은 모두 과학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적어도 오늘날, 어떤 증강현실이나 가상현실을 이용한 기술도 우리를 지배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진 것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무언가를 설득하며, 어떤 것을 밀어붙일 수는 있지만, 우리가 충분히 준비 했을때도 극복할 수 없는 것은 없습니다. 방해 받지 않는 방법을 한 마디로 줄이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충동은 준비성(forethought)으로 이길 수 있다.” 딴짓과 미루기는 충동 제어의 문제일 뿐 성격적 결함이라 할 수 없습니다. 딴짓을 하는 그 사람의 문제라고 말해서도 안됩니다. 그는 그저 이런 충동에 건전하게 대처할 수 있는 도구를 가지고 있지 못할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계획을 세우고 앞날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이는 지구상의 다른 어떤 생명체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다른 어떤 동물들 보다도 미래를 더 잘 예측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린다면 우리는 대부분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알게 됩니다. 초콜렛 케잌을 포크로 찍어 입으로 가져간다면, 분명히 당신은 그 케잌을 먹을 겁니다. 담배에 불을 붙인다면, 분명히 그 담배를 피우게 되겠지요. 당신이 스마트폰을 침대 옆에 둔다면, 아침에 일어나 처음으로 하는 일은 스마트폰을 확인하는 일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미리 준비함으로써 막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딴짓을 못하도록 미리 이를 준비하자는 것입니다. 지난 5년 동안 내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방해 받지 않는 사람들 또한 그렇게 많은 의지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사실 그들은 스스로를 그렇게 잘 제어하는 이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위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미리 계획을 세웠습니다. 곧, 자신이 방해 받지 않도록 만드는 단순한 조치를 미리 취함으로써, 어떤 충동이 생겼을때도 여기에 쉽게 대응했습니다.
그들은 자신과 싸울 필요가 없었습니다. 딴짓을 하지 못하게 막는 시스템을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나 또한 앞으로 어떤 기술이 더 등장할지는 알지 못합니다. 누가 알까요? 하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이 딴짓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있는 방해 받지 않는 이들을 굴복시킬만한 기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LMT: 니르, 오늘 좋은 이야기를 들려줘서 감사합니다. 특히 우리가 하는 일에 당신의 이야기는 매우 큰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