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트럼프의 코로나 대응 속 소중한 전문가의 존재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 속에 자가 격리 상태로 살다 보니 웹서핑이 더더욱 평행우주 탐험처럼 느껴집니다. 요즘 인터넷에서 자주 눈에 들어오는 문구가 있습니다. “파우치 박사는 어디 있냐?”라는 질문이죠. 그렇습니다. 저명한 면역학자이자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NIAID) 소장인 앤써니 파우치(Anthony Fauci) 박사를 찬양하는 열성 팬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절박한 심정으로 박사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거짓말은 현재 워싱턴포스트의 팩트체크팀이 구축한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1만6000건 달합니다. 그 거짓말이 전 세계로 확산 중인 감염병에 대한 것일 때, 이는 말 그대로 생사가 걸린 문제가 되죠.
트럼프 대통령은 요즘 매일같이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파우치 박사가 함께 자리한다면 그 브리핑은 꼬박꼬박 시청할 가치가 있습니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친지와 직장 동료들도 저와 비슷한 의견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파우치 박사가 배석하지 않은 날엔 TV를 끄게 되죠.
물론 정치적, 문화적으로 양극화가 심해진 미국에서 나 자신부터가 나와 비슷한 리버럴 및 중도주의자들에게 둘러싸여 살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고 해도 팩트체크를 하라”는 뉴스룸의 신조를 마음에 새기고 대통령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집단이죠.
하지만 현재의 국가 비상사태 속에서 오하이오나 메릴랜드 주지사와 같은 저명한 공화당원들조차 부활절 전에 경제를 회복시키겠다는 대통령의 희망 사항에 의심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파우치 박사도 이 주지사들과 의견을 같이합니다. CNN뉴스에 출연해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타임라인을 정하는 것은 바이러스지 우리가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죠.
파우치 박사는 공개 석상에서 이런 말을 하고도 일단 자리를 보전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파우치 소장은 두 사람 간 갈등이 있다는 보도를 부인했고, 파우치는 계속해서 다양한 인터뷰 요청에 응하고 있죠. 하지만 파우치 박사의 노출이 줄어든 것에서 우리는 대통령이 박사의 인기 가도에 화가 났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의 분노는 곧 해고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파우치 박사는 무려 1984년, 레이건 대통령 때부터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를 이끌어 왔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훌륭한 의사에게서 기대하는 모든 요소를 갖춘 인물처럼 보입니다. 가장 끔찍한 소식도 쉽고 차분하게 알려줄 것 같은 태도를 지니고 있죠. 반박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사 앞에서 그의 말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말을 해야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우치 박사가 자꾸 대통령의 거짓말을 고치고 나서자 대통령이 화를 냈다는 보도가 이어졌고, 민주, 공화 양당의 정부에서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해 온 파우치 소장은 과학과 국가를 의심하는 피해망상적 우파들의 공격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일례로 트럼프 대통령이 리트윗한 적 있는 트위터 계정 Peter Barry Chowka는 파우치를 “딥 스테이트(Deep-State) 힐러리 클린턴을 사랑하는 꼭두각시”로 칭한 바 있습니다. 정작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서 왔다고 한 바이러스를 두고 사실은 파우치 박사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나왔죠. 파우치 박사, 또 자신의 우파적 신념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끌어들이기를 서슴지 않는 담론의 수준이라는 게 이 정도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인정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지만, 파우치 박사를 자신의 위기 대응팀 안에 두는 것이 대통령에게도 이득입니다. 믿기 어렵지만 지난주 발표된 국정 지지도가 소폭 상승하기도 했죠. 특히 코로나 사태에 대한 대응 부문의 지지도는 전반적 국정 운영에 대한 지지도보다 살짝 높습니다. 하지만 이런 지지도는 대통령이 국가적인 사회적 거리두기 전략을 접는다면 곧장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아니라 바이러스가 타임라인을 정한다는 사실, 대통령이 꼭 기억해주기를 바랍니다. (시카고트리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