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계의 인지 편향 극복을 위해
최근 다니엘 카네만의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 데이비드 맥레이니의 “당신은 그렇게 똑똑하지 않다(You are NOT So Smart)”, 마자린 바나지의 “숨겨진 편향들(Blindspot)” 등 인간이 가진 인지 편향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과학 분야에 이 지식들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과학자들은 데이터의 편향은 통계적 분석을 통해 측정 장치의 편향은 영점 조절 등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지만 그들이 가진 가장 중요한 도구의 편향은 아직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가진 뇌입니다.
뇌가 가진 편향이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인지 편향이 무엇인지를 먼저 간단하게 이야기 해야겠군요. 인지편향이란, 인간이 빠른 결정을 위해 사용하는 일종의 지름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지 편향은 착시 현상과 매우 비슷합니다. 유명한 아래 사진을 봅시다. 정상적인 뇌는 A 타일이 B 타일보다 훨씬 짙은 색이라 판단합니다. 하지만 화면 상의 두 타일의 밝기를 비교해보면, 우리는 두 타일이 같은 밝기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이 사진에서 두 타일의 색깔을 잘못 인식한 이유는 이 사진이 그림자를 가진 3차원 대상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뇌는 자동으로 그림자를 제외한 밝기를 파악한 뒤 우리에게 B 타일이 훨씬 밝은 색깔이라고 말해줍니다.
즉,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누군가가 타일의 밝기를 물었다면 당신이 내린 판단이 맞았을 겁니다. 문제는 이 질문이 실제 상황이 아닌 2차원 화면에 뿌려진 픽셀의 밝기를 물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당신은 이러한 편향을 고려해 직관을 무시하지 않는 한 틀린 답을 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인지 편향 또한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며 역시 같은 방식으로 피할 수 있습니다. 바로 직관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인지 편향은 당신이 보다 쉽게 상황을 판단하도록 만들어주는 편향일 뿐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이러한 편향을 가지고 있으며 일상에서 늘 이를 사용할 뿐 아니라 대체로 이를 통해 이득을 보게 됩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편향은 아마 주의 편향(attentional bias)일 겁니다. 이는 당신이 무언가에 대해 더 자주 듣게 될 경우, 그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는 대체로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만나는 많은 이들이 감기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지금 감기가 유행이니 이를 조심하고 예방주사를 맞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일 겁입니다.
하지만 이 주의 편향은 잘못된, 혹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정보에 대해서도 작동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소셜 미디어를 이용해 잘못된 정보가 넘쳐 나도록 만든다면, 당신은 이러한 잘못된 정보에 바탕한 결정을 내리게 될 수 있습니다. 테러리즘이 한 가지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언론이 내보내는 테러에 대한 뉴스는 많은 이들이 테러를 걱정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실제로 테러가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칠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이 주의 편향은 과학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어떤 연구주제가 언론의 관심을 끌 경우 혹은 주위 동료들이 그 연구 주제를 모두 이야기할 경우, 주의 편향을 주의하지 않는 과학자들은 그 연구주제가 실제보다 더 과학적으로 중요한 것이라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외에도 과학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편향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손실 회피(loss aversion)의 경우를 봅시다. 이는 쉽게 말해 ‘손실을 메꾸려다 더 큰 돈을 잃는(throw good money after bad)’ 상황을 말합니다. 곧, 무언가에 시간이 나 돈을 투자한 다음, 실패를 인정하기 두려워 계속해서 무의미한 노력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손실 회피는 과학자들이 전망이 사라진 연구 주제를 끝까지 붙잡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과학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인지 편향은 바로 집단 사고(group think), 혹은 사회적 강화(social reinforcement)입니다. 이 편향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모인 거의 모든 공동체에서 나타나며, 자신들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서로를 북돋아 주는 방식으로 동작합니다. 이를 통해 자신들의 연구에 대해 과도한 낙관을 가지게 되며 공동체 외부의 의견을 무시하게 만듭니다. 집단 사고는 과학의 발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자신의 실수를 파악하고 스스로를 교정하는 과정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사회적 강화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공유정보 편향(shared information bias)도 과학계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는 소수가 가진 생각보다 다수가 공유한 정보에 더 주목하는 편향을 말합니다. 이 편향이 왜 문제가 되는지는 명확합니다. 곧, 얼마나 많은 이가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와 그 사실이 참인지는 전혀 무관하기 때문입니다. 즉, 어떤 정보가 얼마나 널리 알려졌는 지는 그 정보가 참일 가능성을 평가하는데 있어 고려되어서는 안됩니다.
최근 많은 연구들이 누구나 이러한 편향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지능의 높고 낮음은 편향의 유무와 무관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과학계 또한 이러한 편향이 미치는 영향을 줄이는 방향을 고려해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과학 연구가 이루어지는 방식은 아쉽게도 정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습니다. 곧, 인지 편향이 더 악화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한 과학자가 자신의 연구 주제를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이는 연구 자금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이 그 분야에 전문성이 있음을 보여야하기 때문입니다. 연구기관 또한 해당 분야에 경력을 가지지 않은 이를 채용하지 않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이러한 원칙이 학자들로 하여금 전문성을 가지게 만들며, 따라서 연구 자금의 효율적인 사용방법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장기적인 효과를 고려할 경우 이는 훌륭한 투자 전략이라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 주제를 바꾸기 위해 심리적인 장애물 뿐 아니라 경제적인 장애물 또한 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 결과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하면서도 그 방향이 옳다고 끝없이 주장해야만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학계가 가진 또다른 문제점은 자신의 연구를 과장할수록, 그리고 대중적으로 인기있는 분야를 연구할수록 그 과학자가 더 많은 보상을 받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회적 강화의 편향과 공유정보의 편향을 악화시킵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이 영구적인 것은 아닙니다. 우선, 인지 편향의 존재와 그들이 야기하는 문제를 인식한다면, 우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연구 주제를 바꾸는 연구자들에게 어떤 혜택을 주는 것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또, 모든 과학자들로 하여금, 논문이나 강연에서 자신의 연구가 가진 단점을 먼저 나열하도록 만듦으로써 그 단점 또한 집단 사고의 틀 안에 존재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학회에서는 경쟁 분야의 연사를 반드시 초청하도록 정할 수 있으며, 과학자들로 하여금 자신이 속한 집단 내에서 자유롭게 비판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장려할 수 있습니다. 이는 모든 과학자들이 각자 조금씩 생각을 바꾸는 것 만으로 가능하며, 일단 이런 방향을 시작한 이후에는 더 좋은 아이디어들이 많이 등장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잊지 맙시다. 인지 편향은 착시와 비슷하게 보통의 뇌를 가진 모든 이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나 이러한 실수를 범할 수 있으며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단지, 이 편향이 객관적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기만 하면 됩니다.
과학은 세계의 변화를 선도하며, 과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우리사회의 진보 또한 느려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학계의 인지 편향은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며,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바로 위에서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
(Sabile Hossenfelder, 백리액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