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과의 결혼은 위험할까(2/2)
사실 인간이건 비인간이건, 서로 비슷한 표현형을 가진 이들끼리 더 짝을 잘 짓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동류 짝짓기(assortative mating)라 불리는 이 현상이 어쩌면 혈족간의 결혼이 선호되는 한가지 근거가 될지 모른다. 사촌이 항상 비슷한 외모를, 곧 비슷한 표현형을 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그런 편이며, 곧 서로 매력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어쩌면 부모나 이성 형제에 대해서는 성적으로 거부감을 느끼지만 사촌이나 그보다 먼 친척에게는 끌리는 본성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엘비스가 ’키싱 커즌(Kissin’ cousins)’이라는 노래를 부른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한 연구는 역사적으로 맺어진 인류의 결혼 중 80%가 사촌간이라고 추정하기도 했다. 사촌간의 결혼을 자연 선택이 지지하고 진화적으로도 유리하다면, 법적으로 이를 금지했던 한 가지 이유인 생물학적 위험이라는 주장은 근거를 잃는다.
실제 데이터가 말해주는 것
진화론, 특히 진화심리학은 너무 추측과 이야기에 의존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진화적 설명은 그럴듯해 보일 수 있지만 실제 데이터가 무엇을 말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이성 형제를 피하고 사촌에게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이런 선호가 우리로 하여금 더 적합한 형질을 가지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촌간의 결혼이 어떤 위험을 주는지 또한 살펴보아야 한다. 우선 지금까지 인류의 대부분이 사촌과 결혼했다면, 그리고 지금 우리의 상태가 큰 문제가 없다면 적어도 사촌과의 결혼에 치명적인 문제는 없다고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유전적으로 유사한 상대와 짝을 지음으로써 동일한 유전자 두 쌍이 만나는 동형접합(homozygosity)의 확률이 높아지며, 치명적인 유전자가 발현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인류학자들이 근친간의 결혼이 금기가 된 이유를 찾기 시작하던 때, 찰스 다윈은 근친간의 결혼 뿐 아니라 사촌간의 결혼이 어떤 위험을 가지고 있는지도 생각했다. 사실 그는 자신의 사촌인 엠마와 결혼했고, 그 결정이 자신의 후손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를 걱정한 것이다.
다윈의 아들 중 한 명인 조지는 1870년 까지 이 문제를 깊게 연구했다. 그는 정신병동에 관심을 가졌고, 만약 사촌간의 결혼이 알려진 것처럼 그렇게 위험하다면 정신병동에 갇힌 이들의 부모 중에 사촌간의 결혼 비율이 더 높을 것이라 추측했다. 하지만 조사 결과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병동에 갇힌 이들 중 부모가 사촌간인 이는 3~4 %에 불과했고, 이는 영국의 평균적인 숫자였다. 조지가 이 결과를 그의 아버지인 다윈에게 편지로 알리자 다윈은 이렇게 답했다. “정말 다행이구나… 적어도 정신병에 관한한 혈족간의 결혼이 해롭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그 결과를 사람들에게 발표하는 것이 좋겠다.”
최근에는 더 분명한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국립유전연구기관(NSGC)은 포괄적인 메타분석을 통해 사촌간의 결혼은 유전적 결함을 1.7% 증가시킨다고 발표했다. 이는 40세 여성이 아이를 가질때 져야할 위험과 비슷한 정도이다. 즉, 사촌간의 결혼은 분명 위험하지만, 그렇다고 미국의 절반 가까운 지역에서 법적으로 금지해야 할 정도로 위험하지는 않다는 뜻이다. 어떤 주도 40세 여성이 아이를 가지는 것을 금지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와 비슷한 위험을 가지는 사촌간의 결혼은 왜 금지되어야 할까? 이를 금지하는 이들은 일종의 우생학적 사고를 하는 것이며, 예를 들어 헌팅턴 병을 가진 이의 결혼을 금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볼 때 이 우생학적 사고를 일관성있게 주장하지도 않는 셈이다.
1.7%는 사촌간의 결혼이 흔한 사회에서 태어나는 유전병 환자들에 대한 언론 보도의 양에 비해 그리 크지 않은 숫자로 보인다. 대표적인 예는 영국에 사는 파키스탄인 들이다. 이들 중 사촌간의 결혼은 약 50% 이며, 유전병을 가지고 태어나는 아이들은 다른 영국인에 비해 열 배에 달한다.
이런 사실에 대해 다이앤 폴과 하미쉬 스펜서는 이렇게 말한다. “영국의 파키스탄인들은 가난합니다. 산모는 충분한 영양을 취하지 못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 수준 또한 높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들이 가지는 문제에 사회경제적 원인과 유전적 원인을 구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때문에 영국 이민부 장관 필 울라스가 사촌간의 결혼이 심각한 유전적 문제를 일으킨다고 주장했을때 많은 과학자들은 그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반박했던 것이다.
창시자 효과(founder effect)라는 것 또한 존재한다. 이는 어떤 집단의 조상이 되는 사람이 가진 유전자가 자손 집단 내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커지는 것을 말한다. 만약 창시자가 위험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그 집단 내에서 계속 짝짓기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어쩌면 창시자가 가진 좋은 유전자의 효과가 강화되면서 그 후손들은 환경에 더 적합한 유전자를 가질 수도 있다. 금융계에서 잘 알려진 로스차일드 가문이 바로 그런 예일 수 있다. 이들 또한 사촌간의 결혼이 잦았지만, 커다란 유전적 문제 없이 가문의 부를 유지하고 있다.
반대로 창시자에게 위험한 유전자가 있다면, 그 효과는 반대가 된다. 합스부르크 왕가가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이들은 여러 세대 동안의 근친간 결혼 때문에 “합스부르크 턱”이라는 주걱턱을 가지게 되었다. 17세기 후반 스페인의 카를로스 2세는 심각한 유전 질환 때문에 대를 잇지 못하고 왕조를 끊어지게 만들었다. 이 주걱턱은 15세기 신성로마제국 황제였고 합스부르그 왕가의 창시자인 맥시밀리안 1세의 턱에서 비롯된 걸로 보인다.
즉, 사촌간의 결혼은 그 효과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증폭시키는 것이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주걱턱은 초기에도 존재했지만, 거듭된 근친 결혼 때문에 카를로스 2세의 대에 이르면 치명적인 수준으로 바뀌었다. 이는 과거 근친간의 결혼을 하지 않던 집안의 사촌이 결혼할 경우 합스부르크 왕가와 같은 위험은 크지 않을 것임을 말해준다.
미국의 여러 주들에서 사촌간의 결혼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이유
따라서 우리는 부모 자식간에, 그리고 형제 간의 짝짓기를 우리가 거부하는 데에는 충분한 생물학적 이유가 있으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모든 사회에서 이러한 금기가 있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사촌간의 결혼에 대한 금기는 보편적이지 않으며, 이는 생물학적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 말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러하다. 사촌간의 결혼을 선호하되 부모의 이성형제쪽으로만, 곧 고모의 딸이나 외삼촌의 딸과의 결혼은 선호하되 부모의 동성형제, 곧 삼촌의 딸이나 이모의 딸과의 결혼은 혐오하는 사회가 있다. 그리고 어떤 사회에서는 오히려 그 반대의 호오가 존재한다. 이는 그러한 호오에 생물학적 이유가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하고, 실제로 어느 쪽이건 유전적 근친도는 0.125로 동일하다. 만약 이들 사회가 사촌간의 결혼에 커다란 유전적 문제가 있기 때문에 금지했다면 모든 종류의 사촌간의 결혼을 금지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촌간의 결혼을 “역겹게” 느끼는 이들은 거기에 생물학적 근거를 찾으려 한다. 그러나 마틴 오펜하이머가 “금지된 친족(Forbidden Relatives)”에서 총체적으로 다룬 것처럼, 여기에는 오랜 문화적 이유가 있다. 19세기 후반, 미국은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라는 슬로건 하에 영토를 확장하며 힘을 키웠다. 이는 신이 미국에게 하사한 임무라는 종교적 색채를 띄었지만 세속적인 목표 또한 가지고 있었다. 바로 프랑스의 “문명화 사명(mission civiliatrice)”처럼 북아메리카의 “야만인” 들에게 문명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인류학자 루이 헨리 모건은 비문명화된 사회는 근친간에 관계를 가지는 집단이며 근친에 대한 금기야말로 문명의 명백한 특징이라 믿었다. (프로이트와 레비 스트로스는 이러한 모건의 문명의 기원에 대한 사상을 물려 받았다.) 모건은 자신도 사촌과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촌과의 결혼 또한 야만적인 근친의 유산이라 생각했다. 미국인은 야만인을 문명화시키려는 열망 때문에 이런 사고방식을 받아들였다. 영화 “서바이벌 게임”은 바로 이러한 주제를 따라간다. 문명화된 도시인은 사촌과 결혼하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야만적인 힐빌리들은 모두 근친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렇게 미국의 지식인들은 사촌간의 결혼을 야만인, 특히 가난한 이들의 풍습으로 여기게 되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적어도 이러한 인식에 민주적인 측면이 존재했다. 적어도 사촌간의 결혼은 미국 공화정이 반기를 든 유럽의 왕가에서 행해지는 끔찍한 구습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북전쟁 이후 현대적인 정치 시스템이 자리잡으면서 각 주는 자율적으로 법을 정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사촌간의 결혼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지금은 그렇게 옳지 않은 것으로 밝혀진) 통계에 의한 법률의 제정이자 중요한 문명화의 상징이 되었고, 여기에는 몇십년 뒤 또다른 잘못된 과학에 기반해 시대를 흔들었던 우생학을 낳게한 가부장적 분위기 또한 일조했다. 바로 이런 역사적 흐름 때문에 미국의 몇몇 주는 아직도 법적으로 사촌간의 결혼을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사촌간의 결혼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는 적지만 어쨌든 위험하기는 하다. 따라서 우리가 40세 이상의 여성이 임신하는 것을 권장하지 않는 것처럼, 사촌간의 결혼을 권장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똑같은 이유로 이를 금지해야할 이유도 없다. 최선은, 결혼을 원하는 사촌간의 두 사람에게 유전자 검사를 받도록 권장하고, 그 결과에 따라 두 사람이 이를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과 초민감성의 이 시대에 ‘명백한 운명’의 사고방식은 너무 많은 이들에게 피해를 줄 뿐이다. 반대로, 미국인의 대다수는 자신들의 나라를 “자유의 땅”이라 생각한다. 사촌간의 결혼을 금지하는 것은 자유에 반한다. 지금이 바로 이 법을 바꿀 시기이다.
(스켑틱, Gabriel Andra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