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의 자유(Health Freedom), 시도할 권리(Right to Try), 고지된 동의(Informed Consent)
미운 네살 이라는 말이 있다. 하루 종일 “안돼”라는 말을 듣다 보면, 아이는 부모의 말에 반항하게 된다. 어른들 또한, 무언가를 하지 못하게 하는 걸 싫어한다. 그 중 어떤 이들은 정부의 규제가 자신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학교의 입학 조건으로 백신을 요구하면, 그들은 아이들에게 백신을 맞힐 권리가 자신에게 있다고 말한다. 암으로 죽어가는 이들에게 FDA 승인 전까지는 약을 팔 수 없다고 하면, 규제 때문에 사람의 목숨을 살리지 못한다고 말한다.
건강의 자유(Health Freedom)
“건강의 자유”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치료를 받을 권리가 있으며, 정부는 여기에 간섭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사이비의료 퇴치 사이트인 쿽워치의 스티븐 바렛과 윌리암 자비스는 이렇게 말한다.
“건강의 자유”는 사이비 의료인들이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의혹의 눈초리를 우리가 본능적으로 공감하게 되는 환자들에게 돌리기 위해 만든 용어이다. 그들은 악어의 눈물을 흘리면서 “이 불쌍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 볼 자유를 가져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두 가지 사실을 숨기기 위해 노력한다. 첫째, 누구도 사기를 당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는 것, 특히 삶과 죽음에 관해서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환자들은 사이비 치료를 받기 위해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거기에 어떤 희망이 있을지 모른다고 속고 있을 뿐이다. 둘째, 사이비 의료를 막는 법은 환자의 권리를 제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환자들을 이용하려는 사기꾼들을 막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백신 반대자들은 정부가 아이들의 건강을 보호할 의무가 있으며, 따라서 백신으로 막을 수 있는 질병으로부터 아이들을 지킬 의무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부모의 권리와 개인의 취향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고 종종 생각한다.
사람들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줄기세포 치료를 받기 위해, 또 효과가 없는 것으로 밝혀진 라에트릴 치료법이나 곤잘레스 치료법과 같은 암치료를 받기 위해 외국으로 나간다. 췌장암을 대상으로 한 임상검사에서 곤잘레스 치료법으로 치료를 받은 이는 평균 4.3개월을 살았지만, 일반적인 화학요법 치료를 받은 이는 14개월을 살았으며 삶의 질 또한 더 높았다. 하지만 환자들은 여전히 이런 치료를 원하며 정부가 이런 치료를 막아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시도할 권리(Right-to-Try) 의 법제화
2018년 5월 30일 시점에서 38개 주가 이‘시도할 권리’법을 이미 가지고 있으며 연방 정부 또한 이를 법제화했다. 이는 말기 환자들이 아직 FDA 승인을 받지 않은, 임상시험 중인 치료법이라도 1상을 통과했다면 쓸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얼핏 듣기에 이는 좋은 아이디어처럼 들린다.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FDA는 이미 특별 예외조항들을 가지고 있었다. 곧, 다음과 같은 이들은 시험중인 치료법을 받을 수 있었다.
– 심각한 질병에 걸렸거나, 그 질병에 의해 생명이 위협 받는 상황
– 그 병을 진단하거나 치료하는데 있어 비교할만한, 만족스러운 다른 치료법이 없는 경우
– 임상 시험에 참가할 수 없는 경우
– 환자가 이득을 볼 가능성이 피해를 볼 가능성보다 큰 경우
– 시험 단계의 의료기기를 제공하는 것이 제조사의 임상시험이나 홍보와 무관한 경우
2005년부터 2014년까지 9,000명의 환자가 임상시험 단계의 약을 요청했고, 이들 중 99%가 승인을 받았다. 긴급한 요청은 대부분 전화 상으로 즉시 승인되며, 긴급하지 않은 경우에도 며칠이면 승인을 받는다.
과학기반의학(Science-Based Medicine) 블로그의 동료이며 암연구자이자 외과의사인 데이비드 고스키와 변호사인 잰 벨라미는 ‘시도할 권리’의 법제화가 다음과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 이 법은 치료과정에서 FDA를 배제하며, 따라서 더 안전한 다른 방법이 있는지를, 그리고 환자가 충분한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들었는지를 확인하지 못하게 만든다.
– 환자의 소송권이 없다. 이 법을 통한 치료에 대해 의사와 제약회사는 환자에게 발생하는 어떤 피해에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 소속 기관의 임상연구심의위원회(IRB)의 관리를 받지 않는다.
– 이 법은 1상의 통과가 약의 안전성을 증명한 것이라 가정한다. 하지만 1상은 소수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것으로 약의 안전성은 보장되지 않는다. 1상을 통과한 약이라도 효과가 없고 환자에게 해로울 가능성이 매우 크다.
– 이 법을 통해 발생하는 환자의 피해나 죽음에 관한 정보를 FDA가 해당 약을 승인하는데 필요한 정보로 쓰이지 못하게 되어 있다.
– 환자를 위험에 노출시킨다.
– FDA가 의료 분야에 미치는 영향력이 향후 감소할 수 있다
– 제약회사가 반드시 약을 제공할 의무는 없지만, 안그럴 이유도 없다. 제약회사는 원하는 만큼 가격을 부를 수 있으며, 환자에게 발생하는 어떤 상황에도 책임을 지지 않을 뿐 아니라, 설사 환자가 사망하더라도 그 약이 승인 받는데 지장을 받지 않는다.
– 제약회사는 원하는 가격을 붙일 수 있지만 보험회사는 임상시험 단계의 약에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즉 형편이 어려운 환자는 치료를 포기하거나, 아니면 파산할 것이며, 남은 이들의 생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 “아무 것도 잃을 것이 없는” 말기 환자라도 사실은 잃을 것이 있다. 바로 돈, 삶의 질,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과의 마지막 시간이다.
시도할 권리의 역사
데이비드 골스키는 시도할 권리 법이 “끔찍한 의료사기”라고 말한다. 그는 “사이비 의료에 우호적인 영리 법인 미국암치료재단(CTCA)과 씽크탱크인척 하는 리버태리안 선전기관인 골드워터 연구소에 속은 정치인들의 합작품”이라 말한다. “시도할 권리”라는 용어와 이를 법제화 한 이들 뒤에는 골드워터 연구소가 있다.
폭리의 시작
이 새 법률은 제약회사가 허가받지 않은 약을 환자에게 판매할 수 있게 만들었다. 비양심적인 제약회사는 이제 전통적인 임상시험이나 FDA 의 승인 없이도 약을 팔 수 있다. 예를 들어, 브레인-스톰 셀 쎄라퓨틱스는 줄기세포 치료제를 ALS(루게릭병) 환자에게 팔 계획이다. 이들은 뉴로운(NurOwn) 치료 한 번에 30만 달러(약 3억 6천만원)을 받으려 한다. 뉴로운은 2상 시험에서 플라시보에 비해 병의 진행을 늦추지 못했지만, 3상을 진행하고 있다. 그들은 3상 결과와 무관하게, 이 ‘시도할 권리’ 법에 따라 “다른 치료법이 없는 환자들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 약을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고지된 동의
의료 윤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원칙 중에는 환자가 스스로 자신과 관련된 결정을 내리는 자율성 존중의 원칙(autonomy)이 있다. 과거에는 의사가 온정적 간섭주의(paternalistic)에 의해 환자에게 가장 최선이라 생각되는 치료를 결정했다. 마치 부모가 아이에게 “브로콜리를 먹어. 엄마가 제일 잘 안단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오늘날 환자는 자신의 건강과 관련해 결정을 내릴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제정신인 한, 자신의 목숨이 위중한 상태라도 치료를 거부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동의가 충분한 설명이 따르지 않은 동의라면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환자는 반드시 적절한 정보를 제공받아야 하며, 지금 받으려 하는 치료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그리고 이 치료를 받지 않을때 어떻게 되는지와 어떤 다른 치료가 가능한지에 대해 알아야 한다.
이 고지된 동의 원칙은 윤리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의무와 같다. 당사자의 동의 없이는, 치료가 아니라 몸에 손을 대는 행위 조차도 물리적 폭행으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정기적인 건강 검진 과정에도 의사는 반드시 동의를 구해야 한다. 촉진(특히 여성의 경우), 사진, 그리고 어떤 침습적 혹은 위험이 있는 치료에는 반드시 문서 혹은 구술된 명시적인 동의가 필요하다. 가능하면 문서로 된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의사는 환자에게 모든 가능성에 대해 주고 받은 내용을 차트에 기록할 필요가 있으며, 수술의 경우 환자는 충분한 설명을 들었음을 확인하는 문서에 서명해야 한다.
하지만 일상에서 이 고지된 동의 원칙은 잘 지켜지지 않는다. 의사들은 이 모든 내용을 설명할 시간이 없으며, 전문용어를 이용하거나 몇몇 사실을 생략함으로써 환자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환자들 또한 수술 전의 동의서를 대부분 읽지 않고 서명한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이렇게 환자들이 치료의 장단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이 시도권 법률이 제약회사의 이익에만 봉사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또 이들이 임상시험의 적절한 대상이 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이미 더 상태가 나쁜 이들일 수 있으며, 따라서 임상시험의 대상이 된 이들에 비해 시험 중인 약에 의해 더 심한 고통을 당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합병증에도 더 취약할 수 있다.
결론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충분한 정보 없는 상황에서 ‘건강의 자유’는 무의미한 개념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이 세상에 규제가 없다면 환자들은 그 치료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어떠한 정보도 알지 못하는 온갖 사이비 치료에 둘러싸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먹는 음식을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법률에 의지한다. 위험한 신약이나 탈리도마이드와 같은 끔찍한 사건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는 것이 바로 FDA다. 잰 벨라미는 이를 이렇게 요약한다.
‘생명을 구할 수 있을 지 모르는’ 약이 말기 환자에게 실제로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그 위험을 과소평가한 것이며 허가받지 않은 약을 환자를 위해 판매하는 것은 의학적으로나 재정적으로나 부적절한 일이다.
(스켑틱, Harriet H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