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에 성폭행 당한 피해자들은 아직 사과를 받지 못했다
2019년 1월 30일  |  By:   |  세계, 한국  |  No Comment

한국군 병사 한 명이 푸옌(Phu Yen)주의 작은 마을에 있는 민가에 들이닥쳐 집에 있던 트란 티 응아이(Tran Thi Ngai) 씨를 강제로 성폭행했을 때 트란 씨는 24살이었습니다.

“저를 방 안으로 밀쳐 넣더니 방문을 닫고는 여러 차례 저를 겁탈했어요. 총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겁에 질려 저항할 생각도 못 했어요.”

이제 어느덧 80살을 바라보는 트란 씨는 한국 정부가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 병사들이 베트남 사람들을 성폭행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해주기를 아직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권 단체 라이따이한을 위한 정의(JLDH)는 한국 정부에 전쟁 당시 한국군 병사들의 성폭행으로 태어난 수천, 수만 명에 이르는 라이따이한을 인정하고, 성폭행 피해자들에게 사과할 것을 촉구해 왔습니다. 현재 한국군 성폭행 피해자 가운데 약 800명이 살아있는 것으로 집계됩니다. 그 가운데 한 명인 트란 씨도 세 아이를 모두 전쟁 중에 강간을 당해 임신하고 낳았습니다.

한국은 미국 편에서 베트남전쟁에 참여했습니다. 1964년부터 미군이 패퇴한 1973년까지 베트남에 파병한 한국군의 수는 32만여 명. 그러나 이렇게 많은 군인이 참전한 전쟁치고는 실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관해 알려진 것이 너무도 없습니다. 한국 정부는 파병한 한국군이 베트남 여성들을 상대로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단 한 번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성폭행 피해 여성 가운데는 미성년자인 10대 소녀들도 있었으며, 12살 어린이도 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성폭행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으니 성폭행으로 태어난 라이따이한의 존재에 관해서도 공식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반대로 한국 정부는 일본강점기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는 피해자 처지에서 일본 정부에 사과와 배상을 요구해 왔습니다.

이달 중순 분쟁 지역에서의 성폭력 예방을 위해 열린 한 행사에서 영국의 전 외교부 장관 잭 스트로는 UN 인권위원회에 베트남 전쟁 당시 성폭력에 관한 철저한 진상 조사를 촉구하며, 한국 정부도 불편한 과거를 마주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파병한 자국 군인들이 저지른 범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은 어느 나라에나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영국 정부도 (영국군이 북아일랜드에서 아무런 무고한 민간인 10명을 향해 발포했던) 피의 일요일 사건을 다룰 때 진실을 낱낱이 드러냄으로써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늦게나마 용서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진실을 마주하고 잘못한 일에 사과하는 것만이 국격에 걸맞은 일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스트로 전 장관은 라이따이한을 위한 정의의 국제 대사를 맡고 있기도 합니다.

“성폭력 피해자들과 성폭력으로 인해 태어난 라이따이한들에게 과거에 있었던 일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은 상처를 치유할 기회를 줘야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전쟁이나 분쟁 지역에서 빈번히 자행되는 성폭력과 성범죄를 근절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전 세계에 널리 알려야 합니다.”

라이따이한은 베트남어로 ‘피가 섞였다’는 뜻으로 혼혈을 경멸하는 시선이 다분히 깔린 단어입니다. 전쟁통에 베트남 어머니와 얼굴도 모르는 한국이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라이따이한들은 태어날 때부터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어쩌면 자신이 집단적인 성범죄의 결과물로 이 세상에 나왔다는 사실 만큼 끔찍한 일도 없을 겁니다. 실제로 자라는 과정에서도 학교에서 받아주지 않아 문맹률도 전체 베트남 인구보다 높고, 의료보험을 비롯한 사회보장제도의 혜택도 거의 받지 못합니다.

트란 티 응아이 씨의 아들 트란 다이 낫 씨는 아직도 어렸을 때 학교 선생님에게 이유 없이 두들겨 맞은 뒤 퇴학당했던 날을 잊지 못합니다. 어머니는 결국 아들이 18살이 되기도 전에 혼혈이라서 차별받았다는 사실을, 라이따이한이 베트남 사회에 발 디딜 곳이 얼마나 없는지를 설명해줘야 했습니다.

“학교만 가면 모두가 저를 ‘개새끼’라고 불러대며 손가락질 했어요. 이유도 모른 채 늘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죠. 선생님은 매일 같이 저를 때리며 ‘너희 아빠 따라서 한국으로 꺼지라’는 말만 했어요. 제게 베트남은 지옥 같은 곳이었어요. 평생 난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만 하면서 살아왔죠.”

트란 다이 낫 씨는 라이따이한을 위한 정의라는 단체를 세우고 한국 정부에 전쟁 당시 한국군의 성폭력을 인정하고 사과를 촉구하는 일에 직접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전쟁 성범죄에 맞서 싸우는 데 평생을 바친 공로로 지난해 콩고 의사 데니스 무크웨게(Denis Mukwege)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받은 나디아 무라드(Nadia Murad)도 라이따이한을 위한 정의의 노력을 지지한다고 말했습니다.

“라이따이한들은 그간 베트남 사회의 어두운 그늘 속에 너무나 오래 방치되었습니다.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첫걸음은 희생자와 그 가족들을 끌어안고 마주하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이라크에서 다른 여성 야지디 교도들과 함께 테러단체 IS 군벌의 성노예로 팔려갔던 적이 있는 무라드는 성범죄 가해자들을 심판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말합니다.

“전쟁이나 분쟁 지역에서 자행된 조직적인 성범죄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가해자들이 피해자들보다 훨씬 더 안락하고 윤택한 삶을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거예요. 가해자는 처벌을 받기는커녕 제대로 된 진상 조사도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고, 그런 가운데 피해자들은 가장 기본적인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끔찍했던 기억을 안고 고통 속에 죽지 못해 남은 삶을 살게 되죠. 가해자를 찾아내 제대로 처벌하지 않고서는 성범죄 피해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은 절대로 지켜낼 수 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성범죄 예방을 위한 모임의 공동 창립자 윌리엄 헤이그는 베트남 피해자들의 사례를 두고 전쟁 지역에서의 성폭력을 근절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거를 직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습니다.

“전쟁 지역 성범죄의 진상을 규명하는 상설 기구들이 찾아낸 성폭행 사례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기구들은 UN의 지원을 받고 있죠. 끔찍한 범죄의 진상을 밝히고 예방하며 정의를 바로 세우는 작업이 더디지만 계속되고 있는 겁니다.”

스트로 전 장관은 가디언에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은 배상보다도 일어났던 일을 정확히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스트로 전 장관은 한국 정부에도 여러 차례 성폭행 피해자들을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촉구했다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트란 티 응아이 씨는 언제쯤 사과를 받을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날 한국군 병사에게 처음 강간당한 뒤 저는 모든 것을 잃었어요. 집에 사실상 감금된 채 살아야 했고, 그 집마저 잃었죠. 제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단 한 번도 희망을 품지 못하는 삶을 살아야 했어요. 저 같은 피해자가 사과를 받을 날이 올까요? 언젠가는 오겠지만, 그날에 아마 저는 죽고 이 세상에 없겠죠. 그래도 하늘에서라도 저는 그 사과를 받을 겁니다.”

(가디언, Jo Grif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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