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투표의 후폭풍, 회복할 수 있을까?
- 캐나다의 前 정치인이자, 헝가리 센트럴유러피언대학(Central European University) 총장인 마이클 마이클 이그나티에프가 이코노미스트에 기고한 글입니다.
브렉시트를 둘러싼 우여곡절이 이어지는 가운데, 비슷한 고통을 겪은 다른 나라의 경험을 돌아보는 것이 유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캐나다는 1980년과 1995년에 퀘벡 분리 문제를 두고 국민투표를 실시했죠. 1980년의 투표는 캐나다의 명백한 승리로 끝났지만, 1995년의 결과는 죽음에 가까운 경험으로 이어졌습니다. 독립 반대가 50.58%의 아슬아슬한 수치로 겨우 과반을 넘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만약 영국인이 캐나다인에게 국민투표가 좋은 것인지 묻는다면 (그렇게 묻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우리는 선뜻 좋다는 답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퀘벡 분리주의자들마저도 국민투표가 엄청나게 분열적인 경험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곤 합니다.
퀘벡은 수세기 동안 영어권 주민과 불어권 주민이 한데 섞여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살아온 지역입니다. 이름은 패트릭 오브라이언인데 영어는 한 마디도 못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올리비에 뒤슈노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의 제 1언어가 영어인 그런 곳이죠. 이런 환경에서 주민 투표는 지역사회, 나아가 가정까지도 분열시키기에 이릅니다. 다시는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다는 것이 사안에 대한 관점을 불문하고 퀘벡 주민들 사이에서 공유되는 정서입니다.
실제로 1995년 이후 국민투표는 없었고, 최근 퀘벡에서 치러진 지방 선거에서도 분리독립은 이슈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국민투표를 두 번 했다가 세 번째, 네 번째 국민투표라는 악몽으로 이어지는 게 아닌가 걱정인 영국인들이 있다면, 그런 걱정은 접어두어도 됩니다. 물론 존재론적인 문제에 결론이 난다거나 문제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도 다시는 국민들에게 이 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캐나다인들이 합의한 사항은 한 가지입니다. 국민투표로 존재론적 문제를 결정하는 건 끔찍한 방법이라는 점이죠. 이런 문제를 다루라고 의회와 정치인들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브렉시트 논쟁에 지친 많은 영국인들이 이런 말에 동의하기는 하겠지만,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닙니다. 어느 한 쪽도 압도적인 지지를 얻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렇게나 분열된 의회가 상황을 어떻게 해쳐갈 수 있는가가 문제입니다. 국민투표가 아무리 괴로운 일이지만, 정치인들이 의회에서 합의를 이루어낼 수 없다면 대안은 무엇일까요? 다시 국민의 뜻을 물어야 하는 것일까요?
메이 총리의 안이 부결되면서 상황은 총리의 표현대로 “미지의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자신도 국민투표에 반대하기는 했지만, 총리직을 유지할 수 있는 최후의 방편은 국민투표일지도 모릅니다.
만약 자신의 안이 국민투표에서 채택된다면, 이것을 다시 하원으로 가져와서 통과시킨 후에 실행하면서 총리직을 마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국민투표에서 영국인들이 총리의 안을 거부한다면 그걸로 끝이죠.
노동당 당수 제러미 코빈은 국민투표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노동당은 선거를 원하죠. 근본적인 문제를 2년 간 회피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선거가 열리면 이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전략적 모호성이 야당의 유일한 카드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그런 때가 아닙니다. 선거는 그 자체로 브렉시트에 대한 국민투표이자, 엉망이 된 과정에 대해 정치인들의 책임을묻는 장이 될겁니다. 코빈이 모호한 말을 늘어놓거나 사회 정의로 주제를 바꾸어 이길 수 있다고 믿는다면, 결과를 보고 놀라게 될 겁니다.
즉 국민투표란 수 백만 명의 사람들이 국민투표를 재촉한다고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총리가 마음을 바꾸고 자신의 총리직을 국민투표의 결과에 걸기로 결심하면, 또 코빈 대표가 국민투표만이 메이 총리를 끌어내리고 자신이 총리에 오를 수 있는 길이라고 결심하면 성사될 일이죠.
이 정치인들이 지금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할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어떤 쪽으로 결정이 나건 더 큰 문제는 그대로 남습니다. 국민투표는 대의정치의 신뢰성에 장기적으로 어떤 악영향을 미칠까요?
우선 국민투표가 의회라는 제도와 의회가 갖는 정당성을 약화시킨다는 비관적인 관점이 있습니다. 보다 긍정적인 관점에서는 국민투표를 대의 정치가 실패할 경우 등장하는 보완적인 직접 민주주의의 수단으로 인식합니다.
저는 이번 사태가 민주주의에 일말의 애정을 갖고 있는 모두에게 대의 민주주의와 직접 민주주의의 한계에 대해 벼락치기 공부를 시켜주었다고, 다소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쪽입니다. 이 경험을 통해 무엇이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되어야 하고, 무엇이 의회의 대표자들에 의해 다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해 모두가 분별력을 조금 더 갖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투표는 정당의 규율이 무너지고 의회가 신뢰를 잃을 때 빠지게 되는 함정입니다. 우리는 왜 우리가 대표자를 선출하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리가 생업 때문에 바빠서 공부하고 생각할 수 없는 문제들을 대신 공부하고, 어떤 것이 나라를 위해 옳은 길인지에 대해 우리와 소통하는 것이 국회의원들의 일입니다.
이제 우리는 국민투표가 꼭 필요한 문제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대의정치나 선거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경우죠. 지난 주 다시금 의회의 실패로 갈 길을 잃은 영국이 지금 처한 상황이 바로 이에 해당되는지도 모릅니다.
더 큰 교훈은 민주주의 제도의 정당성이나 효과라는 것도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란 우리 사회를 이끌어감에 있어 어떤 것이 효과가 있고 어떤 것은 실패하는지를 고통스럽게 배워가는 장입니다. 영국 민주주의의 역사 역시 권력의 행사와 규제에 관한 교훈을 고통스럽게 배워온 과정이었습니다. 브렉시트 사태 역시 민주주의의 약점을 노출시킨 사건이라기 보다, 민주주의가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었던 기회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민주주의에서는 이런 교훈들이 보상과 처벌로 강화됩니다. 정당 내의 통합마저 이루어내지 못해 국민투표를 실시한 총리는 권력을 잃어 마땅한 총리였고, 실제로 권력을 잃었습니다. 자신의 안을 국민에게 설득시키지 못하는 총리도 오래 갈 수는 없을 겁니다. 자신의 입지를 위해 나라의 운명이 걸린 문제에 모호한 태도로 임하고 있는 야당 대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브렉시트는 악몽이지만, 민주주의가 어떤 것인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알려준 교훈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코노미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