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로 둔갑한 거짓, 가짜뉴스는 어떻게 편견을 만들어내나 (3/3)
블레어 씨는 지난 2년 동안 수천 편의 가짜뉴스를 만들어냈습니다. 매번 기본적인 틀은 그대로 두고 내용만 조금씩 바꿔서 내보내는 가짜뉴스에 거의 매번 똑같은 편견에 갇혀 사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똑같이 속아 넘어갔습니다. 블레어 씨는 실제로 자기가 올린 가짜뉴스가 어떻게 퍼져나가는지 확인해본 적은 없습니다. 대개 글을 올린 뒤 1분 사이에 평균 8회, 15분 안에 평균 160회, 그리고 한 시간 안에는 1천 번 넘게 공유되죠.
“우리 페이지는 그야말로 썼다 하면 대박이다. 이제는 처음과 달리 어떤 것을 올리든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그냥 올린다. 아무리 말도 안 되는 내용을 올려도, 조금이라도 생각이라는 걸 하면 금방 알아낼 수 있는 뻔한 거짓말을 올려도, 트럼프든 이슬람이든 했던 말을 재탕, 삼탕 토씨 하나 안 바꿔도 해도 저들은 기계처럼 좋아요를 누르고 글을 퍼다 나른다.”
블레어 씨가 페이스북 개인 페이지에 쓴 글입니다. 이 글을 보는 건 가짜뉴스에 속아 넘어가는 보수주의자들이 아니라 그런 이들을 조롱하고 비웃는 진보 성향의 사람들이죠.
‘미국 최후의 보루’ 웹사이트 기준에서 보면 엉뚱한 여성 두 명에게 피부색만으로 오바마, 클린턴이라는 이름표를 붙인 뒤 지어낸 가짜뉴스의 성적표는 썩 좋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보고 더 잘 속아 넘어가서 널리 퍼져야 광고도 붙는데 그러지 못했죠. 해당 콘텐츠로 블레어 씨가 직접 번 돈은 한 푼도 없습니다. 이 글은 심지어 그날 올린 11편의 가짜뉴스 가운데서도 1위를 하지 못한 그저 그런 글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의 영향력은 광고수익만으로 재단할 수 없습니다. 어느 날 아침 메인주 숲속에 있는 작은 집의 컴퓨터 책상머리에서 떠올린 블레어 씨의 아이디어 하나는 버젓한 ‘뉴스’가 되어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적어도 수백 명, 아니 수천 명은 전 영부인과 전 대통령의 딸이 현직 대통령을 뒤에서 욕했다고 믿게 됐을 겁니다. 누가 달았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이런 댓글이 계속 달렸으니까요.
“역겹다. 저 둘은 스스로의 가치마저 깎아내리는 짓을 했다.” – 와이오밍주 포트 와샤키에 사는 한 여성
“대중과 격리해야 마땅한 자들” – 플로리다주 게인스빌에 사는 한 남성
“쓰레기가 쓰레기 짓 하는 거지 뭐, 이제 놀랍지도 않다.”
“저자들을 당장 투옥하라!”
그러고 나면 블레어 씨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진실을 알려주며 가짜뉴스에 깜빡 속아 넘어간 사람들의 멍청함을 마음껏 비웃어주는 순간이죠. ‘미국 최후의 보루’ 사이트에 올린 원본 가짜뉴스에 가장 첫 댓글을 수정해서 이런 식으로 답니다.
“자, 그럼 당최 똥, 오줌을 분간할 줄 모르는 우리 멍청이들을 다시 현실로 한 번 불러와 볼까요? 사진 속 여성은 오마로사와 호프 힉스랍니다. 오바마, 클린턴이 아녜요. 그 둘이 백악관 행사에 초청받아서 간 뒤에 그런 경거망동한 일을 버젓이 사진에 찍혀가면서 하겠어요? 빗나간 애국심 때문에 사리판별을 못 했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그건 애국심이 지나쳐서가 아니라 그냥 이걸 진짜라고 믿은 당신이 구제불능 머저리라 그런 거예요. 아시겠어요?”
웹사이트를 운영해 수익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블레어 씨에게는 이렇게 터무니없는 가짜뉴스를 퍼뜨린 뒤 극적으로 사실관계를 밝혀냄으로써 덫에 걸린 사람들을 조롱하는 것도 중요한 목적이었습니다. 이렇게 한 번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고 나면 앞으로 읽고 좋아요를 누르고 공유하는 글을 조금이라도 더 꼼꼼하게 따져보려 할까요? 자기가 옳다고 믿는 주장, 의견, 사실이라고 알고 있는 것들이 어디서 만들어지고 퍼졌는지 한 번 더 알아보려 하지 않을까요? 블레어 씨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바이기도 합니다.
물론 블레어 씨가 페이스북 페이지에 달리는 댓글을 일일이 잡아내 잘못을 깨우쳐주고 조롱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기엔 미국 최후의 보루 사이트는 너무 인기가 많죠. 그래서 블레어 씨는 진보 성향의 이용자 100여 명을 따로 임명해 댓글을 검토하고 사실을 알려주는 일을 나누어서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그저 보수주의자들의 댓글만 보고 교정하는 게 아니라 직접 정치적인 토론을 벌이기도 하며, 인종차별주의를 드러내거나 혐오 발언을 유도하게 한 뒤 페이스북에 이 사실을 신고해 계정을 정지시키기도 합니다. 블레어 씨는 그런 식으로 정지시킨 계정만 수백 개에 이르고, 온라인에서 부적절한 언행을 한 것이 직장에 알려져 별도로 징계를 받거나 해고된 사람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한, 자신이 정성스레 만든 가짜뉴스를 그대로 베껴 유포하는 또 다른 가짜뉴스 사이트 22곳을 페이스북에 신고해 문을 닫았습니다. 대부분 마케도니아에 서버를 둔 사이트들로, 블레어 씨의 가짜뉴스를 그대로 실으며 출처를 밝히지 않았을뿐더러 나중에 풍자나 거짓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은 점이 문제였습니다.
웹사이트 실적은 훌륭하지만, 블레어 씨는 여전히 이를 통해 단 한 사람이라도 진짜로 생각을 고쳐먹게 됐을지 여전히 확신하지 못합니다. 그가 사실을 밝히며 보내는 조롱이 큰 타격을 입혔을 것 같다가도 똑같은 독자들이 여전히 진실과 가짜뉴스를 전혀 구분하지 못한 채 계속 미국 최후의 보루 페이지에 와서 또 다른 가짜뉴스를 읽고 좋다고 하고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와 NFL 미식축구 경기 전 미국 국가가 연주될 때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의미에서 무릎을 꿇는 퍼포먼스를 주도했던 콜린 캐퍼닉, 이민자, 조지 소로스, 클린턴 재단, 오바마 가족들 등 편견이 공고한 만큼 소재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합니다.
블레어 씨는 웹사이트 상단과 모든 글 위에 이 기사는 정치 풍자를 위한 가짜뉴스라는 점을 명백히 밝히고, 일부러 풍자인 것을 나타내고자 몇몇 단어는 철자를 틀리게 쓰기도 했지만, 웹사이트 방문자는 계속 늘어났습니다. 웹사이트 방문자가 늘어나고 광고 수익도 늘어나는 건 당장 좋을지 모르지만, 사람들이 글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마구 퍼 나르거나 글을 읽었어도 블레어 씨의 공격이 전혀 소용이 없었다는 뜻으로도 풀이될 수 있습니다. 가끔은 나중에 진실을 밝힌다고 사람들이 사실과 거짓을 구분하게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을 끌어들이고자 자극적으로 썼던 글이 독이 되어 사람들을 더욱더 가짜뉴스의 늪에 빠트려 바보로 만드는 건 아닌지 걱정될 때도 있습니다.
“원래 민주당 좋아하는 사람 치고 제대로 된 사람이 어디 있던가요?”
네바다주 파럼프에 사는 셜리 채피안이라는 사람이 이런 댓글을 달았습니다. 채피안 씨는 이내 블레어 씨와 성향이 비슷한 민주당 지지자들의 표적이 됩니다.
“와 아직도 뭐가 뭔지 감도 못 잡는 쓰레기 같은 인간이 여기 또 있었네? 머리는 장식으로 달고 사는 건가?”
“저기요, 이 페이지는 진보 성향 정치 풍자 페이지거든요. 당신 같은 천지 분간 못하는 멍청한 인간들에게 진실을 좀 알려주려는 건데, 진짜 구제불능이네요.”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머릿속에 뇌 대신 감자가 든 건 아니겠지?”
“당신 입으로 들어가는 밥이 너무 아깝네요.”
“제발 인터넷에 뭐 좀 쓰려면 생각이라는 걸 하고 써라.”
채피안 씨는 이런 공격과 비아냥을 들을 때면 도대체 이런 글을 쓰는 사람들은 누구길래 이렇게 세상을 모르는 건지 궁금해집니다. 채피안 씨가 아는 미셸 오바마, 첼시 클린턴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가운뎃손가락을 들이밀고도 남을 위인들입니다. 그런 진보를 가장한 무질서를 조장하는 놈들 때문에 나라가 이 꼴이 됐는데 문제의 심각성을 아직도 모르는 사람들은 짜증 나기 전에 불쌍할 정도입니다.
댓글로 싸움을 벌이는 대신 채피안 씨는 페이스북 개인 페이지에 이렇게 글을 썼습니다.
“역겨운 진보충들.”
그리고는 다시 그녀가 매일 빠지지 않고 둘러보는 다른 뉴스 사이트로 갑니다. 아직 확인해야 할 중요한 소식들이 많이 남았으니까요. 부르카를 입은 무슬림 여성이 불에 타고 있습니다. 경찰은 곤봉으로 봉기한 극좌 세력 시위대를 내리치고 있습니다. 힐러리 클린턴이 부쩍 야위고 건강이 안 좋은지 창백한 사진도 있고, 난민캠프 같은 곳에 모여 있는 이민자들을 향해 총알을 가득 장전한 기관총을 단 군 헬리콥터가 날아갑니다. 채피안 씨가 ‘좋아요’를 누른 사진과 글들입니다.
채피안 씨가 나라가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엄중한 시국이라며 개탄하는 ‘뉴스’를 읽고 있던 어느 날 오후, 채피안 씨 집 밖의 풍경은 채피안 씨가 보는 뉴스 속 세상과 사뭇 달랐습니다. 한가로이 집앞을 빗자루로 쓸며 조약돌을 다시 정원으로 정리하는 이웃, 구름 한 점 없는 푸르른 하늘, 배달 온 편지가 많지 않은 듯 여유롭게 갈 길을 가는 우편배달부의 모습에서 이슬람 율법 샤리아의 그림자는 전혀 볼 수 없습니다. 미국으로 오려는 이민자들은 제일 가까워 봤자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멕시코에 있습니다. 극좌파 시위대가 진짜 있는지 몰라도 파럼프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채피안 씨는 햇빛에 눈이 부신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창문의 블라인드를 내리고 다시 컴퓨터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미국에 잠입한 불법 체류 이민자가 투표 부스 안에서 몰래 표를 던지며 미국 선거를 왜곡하는 현장을 포착한 사진이 보입니다. 제목은 “이런 사람들이 천지에 널려 계속 번창하는 중”입니다. 채피안 씨는 ‘좋아요’를 누릅니다.
글은 돌고 돌아 다시 ‘미국 최후의 보루’ 사이트로 왔습니다. 빠르게 훑어 내려가다 눈길이 멈춘 어떤 글은 블레어 씨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일부러 쓴 비문이나 틀린 철자가 없는 글이었습니다. 교실에 매트를 깔아놓고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며 기도하는 학생들의 사진 옆에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캘리포니아의 한 학교가 교칙을 샤리아를 토대로 다시 정했다. 이제 학생들은 모두 베이컨을 먹지 못하고, 가장 중요한 토론 주제도 알라신에 관한 것이 되었다. 학생들에게 우상을 섬기게 하는 짓을 당장 멈춰야 한다!”
채피안 씨는 깜짝 놀라 파르르 떨며 자기도 모르게 외칩니다.
“제발 좀 그만해라! 역겨운 자식들. 우리 애가 저런 학교에 다니고 있다면 오늘 당장 학교로 달려가서 아이를 구해낼 텐데.”
그녀는 페이스북에서 이슬람 율법이 미국에 얼마나 큰 위협인지에 관한 이야기를 수백, 수천 건 읽었습니다. 하나같이 채피안 씨가 믿고 있던 바를 확인해주는, 걱정을 키우는 글들이었습니다. 정말 문제가 심각한 만큼 대책을 세우는 것이 시급해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정말 이 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는 걸까요?”
채피안 씨는 다음 글로 넘어갑니다. 웹사이트 방문 기록은 데이터가 되어 메인주에 있는 블레어 씨에게 전달됩니다. 블레어 씨는 이미 다음에 쓴 새로운 가짜뉴스가 무서운 속도로 퍼지는 걸 지켜보고 있습니다. 도대체 언제쯤 사람들은 이 모든 게 가짜뉴스인지 알아챌지 궁금해하면서.
(워싱턴포스트, Eli Sasl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