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미래(2/2)
2018년 7월 19일  |  By:   |  IT  |  No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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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 아무 문제가 없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먼저, 유료 서비스가 모두에게 잘 작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지역 언론들은 여전히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지역 신문들은 광고를 잃지 않기 위해 탐사 보도나 정치 관련 보도를 자제하고 있습니다. 즉, 민주주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지역 정부는 여전히 어둠 속에 가려져 있습니다.

둘째, 위의 경제 모델을 뒷받침하는 제품인 뉴스는 항상 똑같은 모습으로 있지 않습니다. 뉴스의 형태는 기사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바꾸는 기술에 발맞추어 변하고 있죠. 그중 하나가 자동화(automation)입니다. 제가 블룸버그에 온 2015년만 해도 편집국에는 이른바 “속보 전담팀”이 있었습니다. 속보팀 기자들은 회사의 수익에 관심을 가지고, 우리의 오랜 라이벌인 로이터 통신보다 몇 초 더 빠르게 제목을 뽑아 기사를 여러 언론사로 보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초 단위로 승패가 갈리는 속보 전쟁이 끝나면 약 10분 정도 뒤에 다른 기자가 숫자들을 합치고, 시장의 반응이나 전문가의 평가를 따옴표에 넣어 좀 더 틀을 갖춘 완성된 기사를 내보내죠.

요즘 기자들은 회사의 수입 구조를 분석해내는 ‘사이보그’라는 컴퓨터 시스템을 통해 빠르게 기사 서식을 준비합니다. 사이보그는 즉석에서 헤드라인을 만들어내지는 않지만, 필요한 모든 숫자와 배경 데이터를 모아 순식간에 짧은 기사를 써냅니다. 이러한 변화는 로이터뿐 아니라 전문적인 뉴스 스크랩 사이트와의 경쟁 때문입니다. 뉴스 스크랩 사이트는 100만분의 1초 차이로 이익을 보는 헤지펀드에 뉴스를 공급하죠. 이제 전장은 (중국에서 팔린 아이폰의 숫자와 같은) 2차 자료 분석으로 옮겨갔습니다. 이는 수익보다 주식 시세를 다룬 기사들이 많아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블룸버그에서 만들어지는 콘텐츠의 4분의 1은 어느 정도의 자동화 과정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가 경제지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워싱턴포스트는 고교 스포츠 경기 내용을 보도할 때 자동화 기술을 사용합니다. 사회부 기자를 통해 뉴스를 받던 언론사는 이제 “폭발,” “사임,” 심지어 “카다시안” 등과 같은 단어를 포함한 소셜미디어 데이터를 살펴보며 기사를 찾습니다.

로봇이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없던 시절, 언론사는 단순히 기사를 서식에 맞게 잘 써내는 것뿐 아니라 다른 언론사와 차이를 만들어내야 했습니다. 다른 곳에서 보도되지 않은 생생한 뉴스는 매우 큰 가치가 있었죠. 당신은 주식이 상장된 직후 십수억 달러의 가치로 매매되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뉴스가 정말 새로운 소식인 기간은 그것보다도 짧습니다. 사실관계 확인 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전하던 기자들은 이제 왜 그런 일이 발생했고, 다음엔 어떤 일이 생겨날지에 대한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두 기업이 인수 과정 중에 있거나 정치인의 부패와 같은 컴퓨터가 알아내지 못하는 뉴스를 밝혀내는 일은 이제 더욱 큰 가치를 지니죠. 사실이 모두에게 공개된 현시대에서 논평의 중요성은 더 커졌습니다: 좋건 나쁘건 당신은 맷 리바인의 뇌를 디지털화할 수 없습니다.

자동화가 트렌드의 한 축이라면 다른 하나는 개인화입니다. 오래된 미디어는 새로운 기술을 사용해 독자가 알고 싶어 하는 뉴스를 맞춤형으로 공급하는 작업을 잘 수행하고 있습니다. 제가 어디에 있든 BBC는 러틀랜드의 날씨와 레스터시티의 경기 성적에 대해 기쁘게 알려줄 것입니다. 경제지는 시간보다 돈이 많은 독자에게 알맞은 정보를 공급하는 데 가치가 있습니다. 당신은 투자자의 포트폴리오뿐 아니라 그들의 고객 및 업무 관계자에 맞춰서 뉴스를 전할 수 있습니다; 한 펀드매니저는 주식을 매각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 뉴스피드를 봅니다. 이런 방식의 한계 역시 존재합니다. 뉴스를 나누기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상품을 살 여유가 있는 독자들이 점차 개인 정보와 개성을 우선시하고, 종이 신문처럼 다른 기사를 보는 데 재미를 느끼기 때문이죠.

변화의 최종 단계는 형식의 다양성입니다. 기본적인 형식의 종이 신문은 이제 해설, 비디오 그래픽, 팟캐스트 등으로 세분화됐습니다. 편집장의 업무는 시간에 쫓기는 소비자들을 위해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제일 나은 방법을 고르는 것으로 점차 변하고 있습니다. 뉴스는 더 짧아지고, 빨라지고, 그래픽을 포함하고 있죠. 하지만 당신이 시리아나 암호화폐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면 여러 개의 짧은 기사를 끊임없이 읽는 것보다는 비즈니스위크나 뉴요커에서 긴 기사를 한 편 읽는 것이 오히려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입니다.

이 멋진 신세계에 나타난 가짜뉴스는 어떤가요? 가짜뉴스는 언제나 존재해 왔습니다. 루이스 라팜이 지적했듯이 트로이 목마도 가짜뉴스였죠. “유언비어”란 단어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포함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던 프랑스의 선전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허스트와 퓰리처 제국 간 경쟁으로 나타난 “옐로저널리즘”이 스페인-미국 전쟁 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한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

가짜뉴스는 기술과 함께 자주 논의되죠. 1814년 증기력을 이용해 언론은 생산성을 10배 증가시켰고, 신문의 가격이 저렴해졌으며, 물의를 빚는 부정확하거나 인종차별주의적 이야기들이 곳곳에 나타났습니다. 1835년 1페니였던 뉴욕의 더 선(The Sun)은 반은 박쥐고 반은 인간인 돌연변이가 달에 산다고 확신에 찬 보도를 내보냈죠. 이제 해당 산업은 깔끔하게 새 단장을 했습니다. 이는 광고주들이 질 낮은 기사 옆에 자신의 브랜드를 홍보하고 싶어 하지 않았고, 독자들이 더 좋은 콘텐츠를 알아보고 거기에 돈을 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현재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트위터에 모여있는 사람들은 점차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죠: 이게 과연 사실일까? (우리는 무엇이 진실인지를 확인해주는 트위터 뉴스 네트워크 틱톡 바이 블룸버그(TicToc by Bloomberg)를 시작하며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의 요구에 페이스북과 구글도 그들의 행동을 정화하기 위해 애쓰고 있죠. 광고주는 더 까다롭습니다: 40만 개의 사이트에 광고를 내던 JP모건체이스는 이를 5천 개로 줄였습니다.

진지한 저널리즘은 중요합니다. 뉴욕타임스의 하비 웨인스타인에 대한 보도는 목욕 가운을 떨어뜨렸다거나 몸을 더듬는 행위에 대한 외설적인 내용이 자세히 기술돼 있었지만, 전 세계에 있는 사무실과 공장, 언론사 내에서의 여성에 대한 남자들의 행동을 심오한 방식으로 변화시켰습니다. 백악관 연례 만찬에서 내 옆쪽에 앉았던 이집트계 미국 구호단체 여성 활동가 아야 히자지는 그녀에 대한 보도 전까지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해당 보도는 트럼프가 이집트 대통령 압델 파타흐 엘시시에게 탄원하게끔 했죠.

종종 미디어의 위선을 비난하는 트럼프의 주장이 옳을 때도 있습니다. 객관성이라는 명목하에 몇몇 기자들은 실제로는 그를 공격하고 있죠. 하지만 대다수의 더 많은 기자는 단순히 그들이 맡은 업무를 하고 진실을 세우기 위해 노력할 뿐입니다. 베조스를 비롯한 사람들이 탐사 저널리즘에 투자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미국을 위해 바람직합니다.

신문은 변화함으로써 죽지 않았죠. 뉴스는 과도기에 있습니다. 현재 새로운 기술과 오래된 진리는 함께 엉켜 있습니다. 기자로서 우리는 독자를 유지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적어도 가짜뉴스에 대해서는 낙관적입니다. 가짜뉴스는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절대로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가짜뉴스의 영향력은 어느 수준을 넘지 못할 겁니다. 최후의 승자는 소비자인 당신입니다. 심지어 당신이 이를 위해 약간의 돈을 내야 할지라도 말입니다.

(블룸버그, John Michklethwa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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