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라이팅: 악몽이 된 완벽한 로맨스
* 이 글은 뉴스페퍼민트에 올 여름 인턴으로 합류해주신 연수현 님이 선정, 번역한 기사입니다.
니콜(Nicole)은 매력적인 남자와 몇 년을 함께 살았지만, 항상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문제가 자신이 아니라 그 남자에게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는 그의 전 여자친구 엘리자베스(Elizabeth)를 만나자 더욱 명확해졌습니다. 니콜과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를 차례대로 소개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각자 직업에 만족하고 평화롭게 지내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런 관계에 관한 생각은 여전히 나를 두렵게 합니다. 수년이 지난 지금도, 내가 두려워하고 사랑했던 전 남편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만으로도 공포에 질립니다. 매력적이고, 아름답고, 성공한 남자가 나를 그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내가 꿈꿔왔던 모든 것이었고, 나는 그의 야심과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에 매료됐습니다. 내가 그와 함께 있을 때면 가장 좋은 것이 우리 앞에 펼쳐졌습니다. 우리는 그의 일을 위해 세계를 여행했고, 최고의 호텔에 묵었으며, 최고급 식당에서 식사했습니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어떤 멋진 삶이든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를 망쳤습니다. 모든 것이 나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친구들 앞에서 돈을 내려고 하거나 전에 사귀었던 사람의 이름을 입에 올렸고, 다른 나라에 갈 때 제 여권이나 돈을 따로 가지고 다니려 했죠. 식사 자리부터 대화, 휴일에 이르기까지 내가 모든 것을 망쳤습니다. 그는 며칠 동안 격노했고, 내가 보여준 부적절한 행동은 나 같은 사람이 그에게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 자격 미달인지 증명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는 어떻게 보나 나보다 훨씬 나았죠. 나는 또한, 그저 그가 좋아하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어리석은 짓을 해 생일과 크리스마스도 망쳤습니다.
“그냥 600만 원밖에 안 해. 저축한 돈을 쓰면 되잖아.”라고 말하면서 내게 비싼 선물을 사달라고 말한 그에게 나는 “그건 미래를 위해 모아둔 돈이야. 쓸 수 없어. 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지만 그럴 만한 여유는 없어.”라고 답하고 말았습니다.
그 말에 그 매력적인 남자는 울었고, 나는 그를 실망하게 한 장본인이면서 그의 마음을 풀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잠을 거의 자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도 덩달아 잠이 줄었죠. 내가 그보다 먼저 잠들면 그의 밤을 망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나는 먼저 잠들 수도 없었습니다. 만약 내가 먼저 잠이라도 드는 날이면 남편은 아침 일찍 나를 깨워놓고는 우리 관계에 관해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말해주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잠이 쏟아질 만큼 피곤했고, 갈수록 지쳤습니다. 직장에 있는 장애인 화장실은 점심시간에 낮잠을 청하는 피난처가 되었습니다.
왜 더 일찍 그를 떠나지 않았냐고요? 그는 매력적이었고 우리 가족은 그를 사랑했습니다. 게다가 나는 그를 존경했고 이 남자가 나를 선택했기 때문에 그의 곁을 일찍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는 고생했고 나는 그를 도와야만 했습니다. 내가 그에게 상처 줬다는 걸 알았기에 어떻게든 상황을 더 낫게 돌려놓고 싶었습니다. 내가 친구들과 외출할 때면 그는 서재에 틀어박혀서 커다란 책상 아래에서 몸을 웅크리고 울부짖었기 때문에 나는 그를 빼놓고는 거의 밖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를 원하는 다른 여성들의 사진과 그들에게서 받은 편지를 보여주면서 내가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다고 얘기했고, 그럴수록 나는 그에게 더 잘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는 내가 떠나려고 했을 때마다 문 앞에 웅크리고 앉아 나에게 떠나지 말라고 울며 소리쳤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바닥에 앉아서 그를 달래며 더 열심히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매번 진이 빠지는 일이었지만, 원래 관계를 맺는 일이란 힘든 일이고 그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친밀한 관계 또는 가족 관계에서의 강압적인 행동
2015년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강력범죄법이 개정돼 관계에서 상대방을 강압적으로 대하거나 행동을 통제하는 행위도 범죄에 들게 됐습니다.
행동 통제(Controlling Behaviour)란 상대방을 학대자에게 종속적이거나 의지하게 만드는 행위로, 이러한 행위는 그들로부터 지원을 끊고, 저항 및 탈출에 필요한 모든 수단을 빼앗아 일상적인 행동을 규제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강압적인 행동 (Coercive Behaviour)이란 피해자를 해치거나 겁을 주는 데 사용되는 학대 행위입니다.
“너는 그 사람보다 잘할 수 없을 거야. 그는 완벽해, 너는 아이를 원하지 않니?”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을 때 내가 더는 그의 곁에 머물 수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졌습니다.
이 남자와 살아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내 몸과 두뇌가 망가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떠난다는 생각만 해도 겁이 났지만, 내 남은 인생을 그와 보내야 한다는 사실도 무서웠습니다. 결국,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왔고, 나는 그가 내가 떠나는 이유를 알아채지 못하게 하면서 짐을 챙겼습니다. 여동생의 도움으로 멀리 도망칠 수 있었고, 그녀의 주방에서 지친 상태로 쓰러졌습니다.
심리 치료를 받고 나서야 화장실을 가거나 씻기 위해 그를 잠시 떠난다는 이유만으로 화장실 문에 경첩을 떼는 행동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겐 책을 들고 화장실에 앉아 있는 순간들이 소중했습니다. 그와 함께 있을 때면 언제쯤 또 화장실에 가서 몇 분이나마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 있을지 생각하며 곁눈질로 시계를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내 내가 화장실에 있는 순간조차 견디지 못했고, 초조한 목소리로 같이 있고 싶다고 울부짖으며 잠긴 문을 열고 들어오려 했습니다.
처음 이 얘기를 꺼냈을 때 이미 그것이 미친 짓이었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는 분명 내가 겪은 현실이었습니다.
치료를 받으며 알게 된 단어와 용어들은 그야말로 전에 본 적 없는 신세계였습니다. “나르시스트”나 “가스라이팅”같은 단어들이 특히 그랬죠. 나는 이런 식으로 학대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치료를 통해 나는 내가 “가스라이팅” 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며, 나르시스트를 만족시키기 위해 했던 내 행동에 대한 이해가 바뀌었습니다. 또한, 문제는 내가 아니었다는 사실도 명확히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더 배울 것이 남았습니다. 내 치료사는 매력적인 전 남편에게 연락을 해 보라고 제안했습니다.
“정말요?”라고 되물었더니 치료사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가 현실을 왜곡했던 모든 방법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그도 희생자였고 그가 만들어낸 허구적 현실에서는 적어도 그가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스라이팅이란 무엇인가?
- 가스라이팅은 심리적 조작과 학대의 한 형태로 가스라이팅을 당한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력, 인지력, 온전한 정신에 의문을 품게 됩니다.
- 이 용어는 1938년 <가스등(Gas Light)>이라는 연극에서 비롯된 용어로, 극중 아내와 다른 사람들에게 아내가 미쳤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남편의 행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 가스라이팅에는 세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미화, 평가 절하 그리고 부인입니다.
- 미화 단계에서, 희생자는 그들의 모습을 완벽하게 비추는 가스등 불빛에 도취해 상대방에게 열렬히 사로잡힙니다.
- 이어 평가 절하 단계에서는 극심한 타격을 입습니다. 자신이 누구보다도 황홀하게 사랑받는 줄 알던 희생자는 어느덧 올바른 무언가를 전혀 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이 상황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필사적으로 헛된 노력을 계속합니다.
- 평가 절하의 단계가 지나면 부인의 단계가 옵니다. 희생자는 버려지고, 이미 다음 희생자가 준비된 상태입니다 – 이것은 종종 다음 피해자의 미화 단계 등과 동시에 일어납니다.
나는 그의 전 애인을 찾았습니다. 외국에 사는 그녀는 나의 긴장한 메세지에 즉시 답했습니다.
“네, 당신과 얘기하고 싶어요. 당신이 연락하기를 기다렸어요.”
전화가 연결된 순간, 내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습니다. 우리는 네 시간 동안 통화했습니다. 그녀는 나보다 먼저 찾아온 여자들과 얘기를 나눴었는데, 모두 그가 오랫동안 독신으로 지낸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우울증과 자살 시도를 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남자가 계획적으로 다른 사람의 삶을 파괴했다는 것을 깨닫자 소름이 끼쳤습니다.
나는 그 매력적인 남자에게 새로운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을 들었습니다. 그녀에게 지금 당신의 모습은 당신이 아니니 당장 도망치라고, 이제는 법이 바뀌어서 그가 당신에게 하는 행동은 불법이고 범죄라고, 당신이 그를 막아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시펐습니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저 정신나간 전 애인일 뿐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녀가 시간이 났을 때 내게 연락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녀가 나를 찾아올 때 작은 희망을 주면서 인생을 충만하게 사는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제 이야기와 무척 비슷한)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몇 년 전에 엘리자베스도 카리스마 넘치는 남자에게 반합니다.
나는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갈망하는 대도시에 살면서 독립심 강한 교육받은 젊은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내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기꺼이 이 잘생긴 남자에게 휩쓸렸습니다. 이 사람이 얼마나 매력적이냐고요? 두말 할 것도 없이 대단했죠.
연애 편지와 함께 멋진 주말을 보내면서 나는 완벽한 로맨스에 빠졌다고 생각했습니다. 파티 초대장은 다이어리에서 빠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새로운 드레스를 구매했고 미용실을 예약했습니다. 신데렐라가 정말 무도회에 간다는 사실에 내 친구들은 흥분했습니다. 그러다 내 가족을 같이 보러 가기로 오래전부터 약속했던 그 날 문제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정말 유감입니다. 당신은 데이트 날짜를 혼동한 게 틀림없어요. 다른 여자친구를 데리고 가도 괜찮겠죠? 그저 내가 전에 한 번 바람 폈었던 오래된 동료입니다. 저는 이런 상황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혼동이 발생한 건 당신 잘못입니다.”
그는 나를 탓하며 거짓말을 늘어놓았습니다. 친구들은 그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봐도 이상해. 너도 그 사람한테 화나지 않니?”
그렇지만 나는 오히려 나를 탓하며 그를 변호했습니다. 약혼하지 않았지만 그가 내가 하는 걸 봐서 잘하면 더 영속적인 관계를 맺어줄 수도 있다는 식으로 한 말을 굳게 믿고 온갖 희망을 품으며 그 사람의 부인처럼 보이려고 나를 호사스럽게 꾸몄습니다.
하루는 내가 다른 친구들과 함께 운동 수업을 듣기로 한 날 그가 저녁식사를 예약하려고 했습니다. 둘 다 놓치기 싫었던 나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수업이 끝난 뒤에 샤워하고 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 예약을 조금 느즈막히 8시로 할 수 있을까요?”
그는 단칼에 내 제안을 물리쳤습니다.
“됐습니다. 안됐지만, 다음에 뵙죠. 당신에겐 나와 보내는 시간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군요.”
나는 그 뒤로 3년 동안 체육관에 다시 가지 않았습니다.
우리 관계가 시작된 지 3년이 지난 어느날, 저는 성병 클리닉에 홀로 앉아 있었습니다. 지난 3년간 성관계를 맺은 파트너가 몇 명이나 되느냐는 질문에 한 명이라고 답하는 내 모습을 보며 나는 무언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가 물어봤습니다: “그가 너를 때렸니?”
“아니요.” 라고 말하는 제 얼굴에는 이미 눈물이 흘렀습니다.
“음, 얘야, 그 사람 만큼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 같기는 하구나.”
나는 내가 살던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습니다. 이미 그가 나의 동거인마저 유혹했기 때문이죠. 그녀는 그가 자신에게 무슨 일을 했는지 내게 털어놓으며 나도 그를 만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지만, 내가 그녀를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요? 아마 그녀는 그냥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을 갖고 싶었을 뿐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계속해서 병가를 내고 의사가 권한 대로 휴식을 취하며 그가 처방한 프로잭을 먹었습니다.
동료들은 내게 빨리 회복하라는 메시지를 보내거나 그가 돌봐주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성공한 사람 행세를 했습니다. 여자 동료들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하며 “동료 직원을 알아가는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어느 날 밤, 그의 집앞에 주차된 차 안에서, 나는 그가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는 굴욕감에 덤블속에서 토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나는 사회적으로 다시 내 자리를 찾는 것도, 그를 다시 보는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는 결백하다고 얘기했고, 내가 피해망상이라고 말했습니다. 공황 발작이 왔을 때 그는 내게 약을 먹으라고 말했습니다. 몇 년이 지나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내가 좀 더 잘 행동했으면 우리가 기회를 잡을 수 있었을지 따위의 가정에 시달립니다. 그는 나를 진정으로 사랑했다며, 하지만 우리 사랑을 망친 건 다름아닌 나라고 말할 겁니다.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 잔디깎는 소리를 뚫고 전화벨 소리가 들립니다.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내가 겪었던 일을 겪는 누군가의 전화일 겁니다. 그녀에게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나는 그녀를 치유해줄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큰 위로가 됩니다.
(신변 보호를 위해 글에 소개된 여성은 모두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B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