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이 읽은 제프리 웨스트의 ‘스케일’ (2/2)
프랙탈(fractal)을 논의하는 부분에서 제프리 웨스트는 복잡성의 이론에 가장 근접한 논의를 진행합니다. 프랙탈은 나뭇가지나 포유류의 혈관과 같이 모든 크기가 비슷해 보이는 크고 작은 가지 같은 구조입니다. 프랙탈의 작은 조각을 크게 확대해보면 전체처럼 보입니다. 수학자 베누아 만델브로는 1960년대에 프랙탈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자연에 있는 프랙탈의 편재성에 주목했습니다. 프랙탈 구조는 확장으로부터 독립적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확장의 법칙 쪽으로 연구가 이어졌습니다. 웨스트는 포유류 혈관 시스템의 예를 상세하게 다뤘는데 이 혈관 시스템의 삼차원 조직에서 일차원 혈관을 통해 영양분의 공급을 최적화시키도록 프랙탈의 분기가 발전하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최적화된 분기에서 확장의 법칙이 관찰되고 총 혈액의 흐름은 질량의 3/4승에 비례한다는 점이 관찰되었습니다. 생물학에서 발견되는 확장의 법칙 대부분은 조직의 프랙탈 구조의 결과와 유사한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프랙탈의 이론적인 논의 자체를 복잡성의 이론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프랙탈은 복잡한 구조 중에서도 가장 융통성 없는 규칙을 가진, 복잡한 구조 중 가장 단순한 종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정확한 확장의 법칙은 복잡성의 결과가 아니라 단순함의 결과입니다. 웨스트가 생물학에서 나아가 경제학과 사회학으로 그 주제를 옮길 때 프랙탈 구조는 덜 분명해지며 확장의 법칙 또한 정확성이 떨어집니다. 도시와 회사에는 대략 계층적인 구조만 있으며, 어떤 이론에 의해 좌우되지 않습니다.
제프리 웨스트는 대도시를 매우 좋아하며 인간 사회의 서식지로서 대도시가 우월한 점을 확장의 법칙을 이용해 설명합니다. “도시의 과학에 대한 서곡”이라는 제목의 장에서 제프리 웨스트는 현대 도시에 대해 다분히 서정적인 평가를 내립니다.
세계의 위대한 대도시들은 인간 상호작용을 촉진시켜, 혁신과 흥분의 원천인 영감을 제공하고,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뜨거운 관심을 모으며 회복력과 성공에 크게 기여한다.
사실 이런 관점은 널리 받아들여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도시의 엄청난 발전과 성장을 설명하는 데도 어느 정도 잘 들어맞기도 하죠. 이번 세기에도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시골에서 도시로 이동할 것이며, 인간이 사는 곳은 갈수록 더 도시화될 것입니다.
제프리 웨스트는 45번 도표에서 도시 내 통화 수와 거주자 수에 관련된 확장의 법칙을 제시합니다. 통화 수는 인구의 1.15승으로 증가합니다. 이 규칙은 통화 기록을 가장 정밀하게 수집하는 영국과 포르투갈에서는 정확하게 맞았습니다. 웨스트는 통화 수를 삶의 질을 나타내는 좋은 척도로 보았습니다. 다른 사람과 전화할 일이 많다는 건 그만큼 더 많은 사회적 상호작용과 비즈니스 거래가 일어나고 아이디어를 주고받는다는 뜻으로, 개인들이 사회의 발전에 더 기여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는 인간의 진보가 일어나는 대도시의 특성을 버즈Buzz라는 단어를 써서 포착합니다. 위대한 도시들은 도시에 사는 개개인이 더욱 효과적으로 혁신에 이바지할 수 있게 한다는 그의 관점을 비선형적 확장의 법칙이 확인시켜 준다고 보았습니다.
웨스트는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다른 확장의 법칙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확장의 법칙은 유전자 부동의 법칙으로, 소규모의 인구에서 진화에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앞서 언급한 바 있습니다. 소규모의 인구 내에서 교배가 이루어질 경우, 모든 인간 능력의 평균적인 수치의 부동율은 인구의 역제곱에 비례합니다. 도시보다 고립된 마을에서 평균적인 수치가 더 자주 바뀝니다. 평균적으로 시골 사람들이 도시 사람들보다 능력이 뛰어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만약 1천만 명의 사람이 유전적으로 고립된 마을에 나눠진다고 할 경우, 운이 좋은 어떤 마을에는 평균 능력이 상당히 높은 사람이 모일 것이고, 이 안에서 교배가 이루어지면 단시간 내에 천재들이 태어날 가능성이 커집니다. 이런 유전적 고립의 영향은 마을의 인구가 계급이나 카스트, 종교 등으로 또다시 나누어지면 더 강해집니다. 사회적 우월주의는 지역적 분리만큼 효과적으로 사람들이 유전자를 널리 퍼뜨리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유럽 및 중동 인구의 상당 부분이 기원전 1000년부터 서기 1800년 사이에 유전적으로 고립된 마을에 살았기 때문에 유전자 부동은 지식 혁명을 가능하게 한 가장 중요한 요소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식 혁명이 일어난 장소들 가운데 특히 기원전 800년경의 예루살렘(단일신 종교의 발생), 기원전 500년경의 아테네(드라마와 철학의 발명 및 과학의 기원), 1300년경의 베네치아(현대 상업의 발생), 1600년경의 피렌체(현대 과학의 발생), 그리고 1750년경의 맨체스터(현대 산업의 시작)가 있습니다.
이 장소들은 모두 인구가 수만 명인 마을이었으며, 그 안에서 다시 다른 부족, 사회적으로 다른 계급으로 세분돼 있었습니다. 각각의 경우에 수백 년 동안 집단 내 교배를 통해 몇몇 천재가 탄생하였고, 이들은 우리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이러한 발생에는 많은 역사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사건이 젊은 천재들에게 특별한 기회를 제공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천재들의 탄생은 유전자 부동의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예시들은 모두 서구 사회에만 해당합니다. 다른 문화권에서도 유사하게 천재들이 탄생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다른 문화권에서 역사적으로 세부사항이 어떠했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이에 관해서는 언급할 수 없습니다.
제프리 웨스트는 마을을 통한 변화를 도외시했습니다. 이는 무척 중요한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향후 수 세기 동안 많은 사람이 과연 유전적으로 고립된 커뮤니티에 남아있을까요? 우리는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습니다. 경제적 발전과 세계의 정치, 그리고 그보다 더 예측 불가능한 인간의 욕망에 따라 답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 커뮤니티를 영원히 유전적으로 고립시킬 두 가지 기술적 발전을 예측해볼 수 있습니다.
먼저 소수의 부모가 미래의 삶에 유리하도록 자식의 유전자를 원하는 대로 바꿔 낳을 수 있게 될지 모릅니다. 이렇게 변형된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보다 더 건강하거나, 더 오래 살거나 지적으로 더 재능을 타고 났을 수 있으며, 자연적으로 태어난 아이들과는 교배하지 않으려 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소수의 사람이 지구를 떠나 아주 먼 우주의 어느 공간에서 새로운 사회를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제프리 웨스트는 이 두 가지 가능성 중 어느 하나도 고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미래에 대한 그의 관점은 인간이 하나의 행성에서 단일한 종족으로 영원히 남는 전제 위에서 전개됩니다. 우리의 미래가 과거와 비슷하다면, 인류의 조상이 지구에서 널리 퍼져나가고 다양화되었듯, 온 우주로 퍼져나가 여러 종족으로 다양화될 것입니다.
인류가 지구에 남는 한 인류는 사회적, 정치적 도덕적 이유를 동원해 특정 부모가 자녀의 유전자를 바꿔 낳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우리가 아주 멀리 떨어진 고립된 커뮤니티로 흩어진다면 굳이 유전자 조작이나 변형을 금지할 이유가 없습니다. 소수의 인간이 춥고 공기가 없는 환경을 식민지화한다면 그들의 자손들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유전자 공학을 사용하는 데 망설이지 않을 것입니다. 우주의 식민지화를 예언했던 19세기의 콘스탄틴 치오코프스키는 이미 인간의 폐를 초록색 잎으로 대체하고, 목소리 대신 피부에 나타나는 무늬를 바꿔 소통하는 우주 식민지의 생명체를 상상해 그렸습니다. 우주 운송 기술과 유전자 기술이 치오코프스키의 꿈을 실현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요?
기술의 발전은 예측하기 어렵지만, 유전자 변형된 아기와 우주여행이 저렴하고 보편화하는 데 200년 정도를 예상한다면 (과학의 발전에 100년 정도 걸리고 이를 응용해 기술을 개발하는 데 약 100년이 걸린다고 가정하면) 이는 합리적 예측일 것입니다. 또한 200년 안에는 태양계로 승객과 수화물을 나르는 공공 우주 고속도로가 생기고 교통량이 어느 정도가 되면 일반인도 큰 부담 없이 우주를 왕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동시에 농부들은 미생물을 번식시킬 뿐만 아니라 인공적인 생태계에서 공생할 수 있도록 고안된 식물과 동물도 번식시키게 될 것입니다. 생태계에 인간을 포함하는 선택 또한 항상 가능하게 됩니다.
저렴한 우주여행이 가능해지려면 두 가지 공공 고속도로가 필요한데, 하나는 지구와 같이 중력이 강한 행성을 탈출하는 데 필요하며 또 하나는 중력이 강하지 않은 곳 사이를 여행하는 데 필요한 고속도로입니다. 강한 중력의 고속도로는 강력한 레이저 빔을 땅에서부터 고속도로로 쏘아 올려서 만들어진 것으로 우주선이 빔으로부터 에너지를 받아 상하로 날 수 있게 합니다. 교통량이 늘어나 이 레이저빔을 지속할 수 있게 된다면 우주선 한 대당 드는 에너지 비용은 오늘날 제트기로 대륙과 대륙을 여행하는 데 드는 에너지의 비용과 비슷해질 것입니다. 저중력 전용 고속도로는 태양열을 에너지 자원으로 사용하는 이온 제트 엔진으로 가동되는 우주선에 연료를 충전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운영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200년간 우리가 더 나은 시스템을 발명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고중력 시스템과 저중력 시스템 모두 200년 이내에 발전하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먼 우주에서 적은 비용으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온혈식물을 만드는 유전자 공학이 필요합니다. 온혈식물들은 원거리에 있는 태양, 물에서 오는 에너지와 얼어붙은 토양에 있는 필수 영양분을 활용하여 태양계의 모든 차가운 물체의 표면에서 자랄 수 있습니다. 식물은 살아있는 온실이 되며 외부의 차가운 거울이 햇빛을 집약시켜 투명한 창문에 투영해 온실 내부의 뿌리와 새싹들은 햇볕으로 따뜻하게 유지될 수 있습니다. 온실 내에는 편안한 온도에서 숨 쉴 수 있는 공기로 차 있는 공간이 있어 미생물과 식물, 동물과 인간의 다양한 생태계의 서식지가 되어줄 것입니다. 온혈식물들은 거울과 온실을 자라게 하며 전체 커뮤니티에 영양분을 공급해줍니다. 소행성이나 혜성, 위성과 같은 태양계의 작은 물체들은 표면적만 놓고 보면 지구보다 훨씬 더 많은 인구를 수용하기에 아주 넓습니다. 태양계가 지나치게 붐비게 되면 생명은 다른 은하계와 우주로 더 멀리 퍼져나갈 수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대통합 이론의 비전”이라는 제목의 챕터는 미래에 대한 웨스트의 관점을 보여줍니다. 제프리 웨스트는 대도시와 빅데이터의 빠른 성장이 인간의 활동을 초기하급수적으로 확장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은 관찰된 양이 무한한 시간 속에 무한하게 성장하게 되면서 수학적으로 특이점을 가져오기 때문에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특이점에 대한 생각은 레이 커즈와일의 책 “특이점이 온다”(2005) 에서 나온 것으로 인공지능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결과, 세계의 위기가 닥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생각입니다. 일반적으로 커즈와일의 주장을 과학보다 과학 소설에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제프리 웨스트는 알려진 확장의 법칙의 결과로 이 주장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특이점은 인간의 존재를 지속 가능하게 하기 위해 인간 사회 조직에 강제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그러나 확장의 법칙으로 인해 또 다른 특이점이 오고 이에 따른 다른 강제적인 근본적 변화가 불가피하게 됩니다. 웨스트는 지속 가능한 대통합 이론을 통해 진정으로 유지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법을 알게 될 때까지 특이점이 반복되는 미래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는 영원히 지속 가능한 사회의 모습을 우리의 상상력에 맡기고 있으며, 인간 행동의 규칙을 정하게 될 대통합 이론 하나만을 지속 가능한 사회의 미래 특징으로 고집하고 있습니다. 대통합 이론은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우리가 가진 방법에 맞춰 생활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인간이 우리의 존재를 지속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대통합 이론을 마지막으로 발명한 것은 칼 마르크스가 변증법적 유물론을 만들었을 때입니다. 이 이론은 지구상의 많은 지역에서 인간의 행동을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그 변화는 지속될 수 없음이 증명되었고, 그 이론은 더 이상 통합된 상태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제프리 웨스트의 이론도 유사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될 것입니다.
상상하는 미래의 선택은 언제나 취향의 문제입니다. 제프리 웨스트는 지속 가능성을 목표로 삼았으며 대통합이론을 목표 달성의 방법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나의 취향은 그 반대입니다. 나는 인간의 자유를 목표로 생각하며 소수의 인간 사회를 그 방법으로 보고 있습니다. 자유는 인간의 자손들이 부모가 강요한 대통합 이론에 반기를 들게 하는 신성한 불꽃이 될 것입니다.
(The New York Review of Books, Freeman Dy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