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고니아 vs 트럼프 (3/5)
“마음 놓을 때가 아니다”
2012년 파타고니아는 세다르 메사의 친구들(Friends of Cedar Mesa)이라는 환경운동 단체를 후원하기 시작합니다. 파타고니아가 후원하는 다른 작은 단체들과 마찬가지로 비영리 단체였던 세다르 메사의 친구들은 유타주 남부의 민감한 사막 지역 일대를 지키는 데 힘을 쏟고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훗날 베어스이어즈(Bears Ears)에 포함되는 지역도 있었죠.
당시 특히 롭 비숍(Rob Bishop) 의원을 포함한 유타주 공화당 정치인들은 국유지로 지정해 연방정부가 보호하고 있는 땅들을 되찾아오려는 노력을 강화하고 있었습니다. 보호구역을 해제할 수만 있다면 석유나 가스, 우라늄을 캐 주 정부 세수(稅收)를 늘릴 수 있었습니다.
파타고니아는 이에 맞서 세다르 메사의 친구들에 대한 지원을 더 강화합니다. 후원금을 지급하고 단체를 이끄는 조시 유잉이 이 일대에서 암벽을 타는 모습을 담은 짧은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수년간 파타고니아가 수많은 지역 환경단체들을 지원했던 방식 그대로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베어스이어즈가 곧 공공의 토지 소유와 운영을 둘러싸고 모두의 입에 오르내리는 뜨거운 감자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유잉은 “파타고니아는 환경운동 분야에 오랫동안 관심을 둔 기업”이라고 말했습니다.
“스스로 한 약속과 내뱉은 말을 지키는 데 이렇게 많은 돈과 열정을 쏟아붓는 회사는 아마 또 없을 겁니다.”
파타고니아는 그 과정에서 유명한 암벽 등반가였던 베어스이어즈라는 인물에 대해 더 알게 됐고, 베어스이어즈 지역이 특히 얼마나 소중한지도 깨닫습니다. 여러 미국 원주민(인디언) 부족이 신성하게 여기는 땅이자 호피(Hopi)족과 나바호(Navajo)족의 고향이자 보존 가치가 매우 높은 선사시대 암벽화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이곳은 석유 시추, 광물 채취 계획을 앞세운 개발 광풍이 불기 전까지는 자연도, 그 안의 역사도 원시의 모습에 가깝게 보존돼 있던 땅이었습니다.
“이 곳에 관해 더 많이 알게 될수록, 문화적으로 또 이른바 영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곳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지금이 아니라 적어도 50년은 전에 보호구역으로 지정됐어야 할 곳이었죠.”
파타고니아에는 아예 환경운동 전담 부서가 있는데, 이 부서를 이끄는 리사 파이크 쉬히가 한 말입니다. 쉬히의 직책은 부사장입니다. 파타고니아는 베어스이어즈 보호 운동에 총 200만 달러를 썼습니다. 비영리 단체를 지원하거나 관련 영화, 마케팅용 제작물을 만드는 데 쓰고, TV에 광고를 싣기도 했습니다. 적어도 잠깐은 효과가 있었습니다.
2016년 12월, 퇴임을 한 달도 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오바마 당시 대통령은 천연기념물 두 곳을 새로 지정했는데, 베어스이어즈가 여기에 포함된 겁니다. 오바마 정권으로서는 그야말로 마지막 힘을 쥐어짜 환경 보호 유산을 남기고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지켜본 지지자들은 마냥 기뻐하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하면 오바마 정권의 모든 정책을 문제 삼을 것이고, 환경 정책 또한 바람 앞의 촛불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축할 겨를도 없었어요.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죠. “천연기념물 지정”이라고 사무실 한쪽 칠판으로 쓰는 벽에 써놓긴 했지만, 그걸 보는 누구도 이제 베어스이어즈는 안전하니 마음 놓아도 되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죠.”
파타고니아 내부에서도 이미 마르카리오를 비롯한 임직원들은 이들이 이룩한 작은 성과가 조만간 시험대에 오르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한 선거 다음 날 아침, 마르카리오는 전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한 통 보냈습니다.
“우리가 숨 쉬는 공기,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땅과 물을 지키는 일은 이제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해졌습니다. 지난 몇 년간 우리는 더 많은 이들에게 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고 결실을 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코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됩니다. 멈추지 않을 겁니다.”
걱정하던 바는 이내 현실이 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국의 천연기념물, 보호구역을 전면 재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정부 권력의 지독한 남용을 끝내는 일의 하나”라는 설명이 뒤따랐습니다.
이어 국립공원과 천연기념물을 관리하는 내무부는 한 달 동안 청원을 받았는데, 무려 200만 건 넘는 청원이 접수됩니다. 그 가운데 대부분은 국유지를 비롯해 공공 부지로 지정된 땅은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으니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내용이었죠. 파타고니아는 자사 고객이 접수한 청원서만 해도 15만 건이 넘는다고 밝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초기, CEO 마르카리오는 아웃도어 업계를 대표해 징케 장관을 만나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습니다. 뉴욕타임스가 입수한 내무부 이메일에는 파타고니아의 한스 콜(Hans Cole)이라는 직원이 수차례 면담을 요청한 기록이 있었습니다. 끝내 징케 장관은 만날 수 없었지만, 콜은 내무부 직원들이 참석한 회의에 두 번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즈음 파타고니아는 궁극적으로 이 문제를 법정에서 해결해야 할지 모른다는 결론을 내리고 소송을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파타고니아가 지명한 법무법인 호건 로벨스는 이 사안을 처음부터 꼼꼼히 검토했으며 매주 (장차 고소인이 될) 파타고니아 측과 화상회의를 했습니다.
파타고니아는 베어스이어즈를 비롯한 국유지 보호의 중요성을 알리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구글과 함께 베어스이어즈의 모든 것을 동영상에 담고 가상현실로 직접 체험하듯 살펴볼 수 있는 웹사이트를 만들었습니다. 파타고니아 역사상 처음으로 TV에 광고도 했습니다. 창업자 추이나드가 강가에 앉아서 대자연이 가르쳐준 수많은 교훈을 떠올리는 모습을 화면에 담았습니다.
파타고니아는 또 유타주 정치인들에게 경고했던 대로 아웃도어 소매 박람회를 유타에서 빼버렸습니다. 오랫동안 이 박람회는 유타주 주도인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렸는데, 여러 회사가 참여하고 많은 사람이 찾아 유타주 경제에 보탬이 되는 행사였습니다. 그런데 국유지를 보호하기 위해 유타주 정치인들이 앞장서 달라는 파타고니아의 부탁을 정치인들이 외면하자, 파타고니아도 마침내 칼을 빼든 겁니다. 파타고니아는 아웃도어 업계에서 차지하는 지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박람회 장소를 콜로라도주 덴버로 옮겨버렸습니다.
파타고니아는 베어스이어즈를 지키는 것이 가져올 경제적 효과를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아웃도어 레크리에션 활동이 유타주 경제에 매년 120억 달러 효용을 가져오는데, 공유지를 자원 개발에 써버리면 손해가 막심하리라는 논리였습니다.
결국,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는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8월, 징케 장관은 베어스이어즈를 포함한 천연기념물 네 곳을 축소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12월 4일, 트럼프는 대통령 특별 선언을 통해 이를 공식화합니다. 이제 협상의 여지는 거의 없습니다. 싸울 일만 남았습니다.
(뉴욕타임스, David Gel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