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가 인구조사에 꼭 넣고 싶어 하는 질문, “국적이 어디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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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6일 | By: ingppoo | 세계, 정치 | No Comment
지금으로부터 9년 전, 데이비드 비터(루이지애나)과 로버트 베넷(유타) 두 공화당 상원의원은 미국 정부가 10년마다 한 번씩 시행하는 인구조사(census) 질문지의 내용을 바꾸자는 주장을 폈습니다. 인구조사국이 담당하는 인구조사는 미국 시민뿐 아니라 미국에 사는 모든 거주자를 대상으로 합니다. 인구조사 자료는 정부 예산을 편성하거나 국회 의석을 배분하는 데 근거 자료로 쓰이는 등 대단히 많은 분야에 영향을 끼칩니다.
비터와 베넷 두 의원은 법을 개정해 질문지에 응답자의 국적을 묻자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주별로 인구에 관계없이 두 석씩 주어지는 상원과 달리 총 438석을 인구에 비례해 나누는 하원의 의석수를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비터 의원은 제대로 된 질문을 해서 불법으로 체류하고 있는 사람들을 가려내지 않다 보니 불법 이민자가 많이 사는 주가 의석수를 많이 배정받고, 자신이 속한 루이지애나 같은 주는 오히려 불리하다고 말했습니다.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이는 정치적 의도가 분명한 주장이기도 했습니다. 이민자들이 많이 모여 사는 주에서 대개 민주당이 인기가 많은데, 결국 민주당이 부당한 이득을 보고 있으니 이를 고쳐야 한다는 것이었죠. 당시 두 의원의 법안 개정안은 상원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2014년, 2016년에도 똑같은 시도가 좌절됐죠. 법을 개정하는 데 필요한 동료 의원들의 지지는 받지 못했지만, 어쨌든 공화당으로서는 될 때까지 꾸준히 제기할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2020년 또 한 번의 인구조사를 앞두고, 이 문제가 또다시 불거졌습니다. 이번에도 논의에 불을 붙인 건 공화당 쪽입니다.
지난달 26일, 미국 상무부는 2020년 인구조사에 응답자의 국적을 묻는 질문을 포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법무부가 미국 유권자를 보호하는 데 꼭 필요한 조치”라며 국적 질문을 포함하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해 12월 미국 투표권법(Voting Rights Act)의 2조에 맞게 법을 집행하는 데 필요하다면서 인구조사에 국적을 묻는 질문을 넣어달라고 공식적으로 요청했죠. 투표권법 2조는 투표권을 빼앗길 수 있는 상황을 방지하는 내용입니다. 법무부의 주장이 다소 이상하게 들리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핵심 당사자의 말이 불과 몇 년 사이에 정반대로 바뀌었기 때문이죠. 지난 2013년 미국 대법원이 투표권법 일부를 폐지했을 때 당시 앨라배마주 상원의원이던 현 법무부 장관 제프 세션스는 “남부 주들에는 잘된 일”이라며 대법원 판결을 반겼습니다. 이어 소수 인종의 투표를 어렵게 만드는 온갖 법안이 주 차원에서 봇물 터지듯 발의됐습니다. 예를 들어 텍사스주는 투표 시 신분증을 훨씬 까다롭게 확인하도록 하는 법을 통과시켰는데, 연방 법원은 이 법안이 인종 차별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오바마 행정부는 유권자의 투표를 억제하거나 훼방하는 데 쓰일 수 있는 주 투표권 법안을 무효로 하는 소송을 연방정부 차원에서 시작했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법무부 장관이 된 제프 세션스는 이 소송들을 잇따라 취하했습니다. UC 어바인의 선거법 전문가 릭 헤이젠은 “소수 인종의 투표권을 보호하고, 더 공정하게 선거구를 재편하기 위해 국적을 묻는 질문을 넣었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앞뒤가 하나도 안 맞는 코미디”라고 말했습니다.
‘국적이 어디냐’는 질문을 넣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발표에 즉각 비난이 터져 나왔습니다. 인구조사국 전(前) 국장 여섯 명이 윌버 로스 상무부 장관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깊은 우려를 표명했고, 캘리포니아와 뉴욕을 포함한 12개 주는 연방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뉴욕주 에릭 슈나이더만 검찰총장은 인구 통계학자와 민권 운동가, 전·현직 정부 관계자들이 수차례 거듭 강조했던 논거를 들며 정부의 움직임을 비판했습니다.
“국적을 묻는 질문을 넣으면 당장 이민자들이 모여있는 공동체에 엄청난 공포와 불신이 퍼질 겁니다. 인구조사가 정확히 진행되지도 않을 것이고,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나라가 세금을 공정하게 배분해 써야 하는데 이 과정마저 엉망이 될 수 있습니다.”
지난해 11월에는 인구조사국 소속 연구원인 미켈린 마이어스가 “이민자 커뮤니티 혹은 이민자와 같이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 가족관계 등을 비밀로 하고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현상이 전에 없이 급증했다”고 보고하기도 했습니다. 인구조사국 자문위원들 앞에서 마이어스 연구원은 지금과 같은 정치적 분위기에서 추방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이민자들이 극도로 예민해진 탓에 기본적인 설문조사를 진행하기도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지금껏 봐온 행동과는 완전히 다른 반응입니다. 국적을 묻는 질문은 결국 미국에 합법적으로 머물고 있느냐는 질문을 에둘러 묻는 것처럼 들릴 수 있고, 어디 출신은 결국 환영받지 못한다는 걸 암시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으니까요.”
정부가 계획대로 국적을 묻는 질문을 넣으면 불안하거나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인구조사 자체를 회피할 가능성이 커지고, 조사 결과도 왜곡돼 이민자들이 많은 지역은 연방정부에서 재정 지원을 덜 받게 됩니다. 만약 이로 인해 각 주에 배분되는 의석수가 바뀌게 된다면 의석을 잃게 되는 건 아마도 민주당일 겁니다.
로스 상무부 장관은 질문을 새로 바꾼다고 인구조사 응답률이나 참여율이 낮아지리라는 주장은 제대로 된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도 정확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할 인구조사에서 정확성이 떨어질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렇게 극단적인 변화를 추진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이 정책을 집행하는 수장으로서 먼저 제대로 답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한 인구통계학자의 말대로 인구조사는 “10년에 한 번, 3억 4천만 명을 대상으로 하는 대규모 사업”입니다. “정확하게 조사하기 위해 만전을 기해야 합니다.”
인구조사에서 응답자가 미국 국적이 있는지 없는지를 마지막으로 물은 건 1950년의 일입니다. 그 뒤로는 훨씬 조사 규모도 작고, 무엇보다 자발적으로 등록한 사람들 가운데 대상을 골라 진행하는 미국 지역사회 조사(American Community Survey) 같은 조사에만 부분적으로, 제한적으로 이 질문이 채택됐습니다. 미국 지역사회 조사 결과만으로도 이민자와 유권자 분포 등에 관해 웬만한 분석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법원도 데이터가 부실하다고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자꾸 문제를 제기하는 걸까요? 법무부 민권팀 팀장 대리를 맡고 있는 존 고어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한 명인 것 같습니다. 프로퍼블리카의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말 고어는 인구조사에 국적을 묻는 질문을 넣자는 제안서 초안을 직접 썼습니다. 변호사 출신인 고어는 버지니아, 사우스캐롤라이나, 플로리다, 뉴욕주 등지에서 공화당에 유리한 쪽으로 선거구 재획정안을 짜는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 공화당이 지지한 유권자 신분증 검사 강화 법안을 변호하기도 했는데, 2012년 미국 시민이 아닌 사람은 선거인 명부에서 빼도록 한 플로리다 선관위 규정을 둘러싸고 소송이 벌어졌을 때 공화당 쪽 변호를 맡았습니다. 해당 규정은 그 자체로는 문제가 없었지만, 실제 투표권이 있는 사람들도 외국인으로 간주해 유권자 등록이 취소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어 문제가 됐습니다. 마이애미 헤럴드는 “시민권이 없는 사람을 추적해 선거인 명부에서 빼려는 주 선관위의 움직임은 히스패닉, 민주당원, 중도 성향 유권자를 선별적으로 제외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반면 공화당원과 백인들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라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대개 이번 규정을 정당화하는 데 단골처럼 등장하는 논리가 있다면 바로 “투표권도 없는 이들이 선거 결과를 왜곡할 위험이 크다.”라는 논리일 겁니다. 하지만 학계에서 거듭 이 주장은 근거가 아예 없거나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는데도 여전히 일부 공화당원들은 민주주의를 뿌리째 위협하는 문제라며 유령 유권자, 불법 투표 같은 문제를 틈만 나면 들먹입니다. 경쟁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자신을 호소하는 데 이보다 더 좋은 전략도 없을 겁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 주장에 손을 들어준 이유는 개인적인 이유와 정치적인 이유가 뒤섞인 것 같습니다. 먼저 지난 2016년 대선 직후 그가 했던 말을 떠올려보면 분명한 이유 한 가지가 드러납니다. 그는 선거인단에서는 과반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이 됐지만, 전체 득표에서는 클린턴 후보에게 300만 표가량 뒤졌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기서 불법체류 이민자 3~400만 명이 힐러리 클린턴을 찍어서 그렇게 됐다는 주장을 폅니다. “불법으로 투표한 수백만 표를 빼면 전체 득표에서도 내가 이겼을 것”이라는 트윗을 남겼죠.
취임 이후 자신이 내뱉은 말을 입증하고 싶었던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 직속 진실한 선거 특별위원회를 발족합니다. 위원장에 펜스 부통령과 캔자스 주무장관 크리스 코바치를 임명하고 야심 차게 출범한 위원회는 (불법 투표나 유령 유권자로 인한 부정 선거에 관한) 아무런 증거도 찾아내지 못한 채 지난 1월 흐지부지 해산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투표권이 없는데 투표한 “불법 유권자”를 눈에 불을 켜고 찾은 공화당의 노력도 결실을 봅니다. 다만, 적발된 이들은 자신에게 투표권이 있는 줄 알고 투표했던 사람들입니다. 지난해 텍사스주에서는 네 아이의 엄마인 멕시코 출신 39세 여성 한 명이 투표권 없이 선거에 참여해 투표한 죄로 8년 징역형을 받았습니다. 영주권이 있으면 투표할 수 있는 줄 알았던 이 여성은 2012년과 2014년 투표에 참여했다가 피의자로 법정에 서게 됐습니다. 항소심에서마저 패하면 8년 형기를 채운 뒤 멕시코로 추방될 운명에 처했습니다.
캔자스주에서도 마찬가지로 영주권을 갖고 있던 페루 출신, 세 아이의 엄마가 10년도 더 전에 지역 교육감 선거에 투표했던 사실이 드러나 몇 년간 법정 공방 끝에 페루로 추방됐습니다. 이 여성도 영주권자에게 투표권이 없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크리스 코바치는 이렇게 드러난 사례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코바치가 그토록 자신의 경력을 모두 바쳐가며 유권자 신분증 검사 강화 혹은 유령 유권자 적발 문제를 고치려는데도 잘 안 되는 너무나 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 문제 자체가 원래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없는 문제를 애써 만들어 해결하려 하니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는 겁니다.
지난달 초 그는 캔자스주에 있는 연방 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피고 측 증인으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여성 유권자 연맹과 캔자스 출신 유권자 다섯 명을 대변해 미국 시민자유연맹이 캔자스주 선관위를 고소했는데, 시민자유연맹은 2011년 코바치가 주무장관일 때 유권자들에게 미국 국적을 증명하는 요건을 까다롭게 내건 선거법 개정이 통과, 발효돼 약 35,000명 정도 되는 유권자가 지방, 주, 연방선거에서 투표하지 못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번 달 판결이 예정된 가운데 코바치는 재판장에서부터 진땀을 빼야 했는데, 그가 자료나 근거라며 들고나온 통계 수치가 전문성이라곤 하나도 없는 이들이 대충 쥐어 짜낸 만화 같은 수준이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적을 묻는 질문을 인구조사에 넣으려는 의도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 왔습니다. 어쩌면 이 점이 가장 충격적이기도 한데, 단지 정치적 의도를 넘어 훨씬 실존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공언한 대로 인구조사 질문지를 바꾼다면 미국의 이민 정책은 20세기 중반으로 회귀하는 셈이나 다름없게 됩니다. 수십 년만에 처음으로 미국은 매년 받아들이는 이민자 수를 절반으로 줄이자는 사람이 대통령을 하고 있습니다. 트럼프와 참모들은 1965년 이전 미국의 이민 제도를 이상으로 삼고 있는 것 같습니다. 1965년은 미국 이민 역사에 중요한 해인데, 이때부터 유럽 국가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인종이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미국으로 건너올 수 있는 문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일해서 가족을 꾸린 이들은 바로 미국인이 될 수는 없었어도 미국에서 훌륭한 이웃으로 잘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이민자들의 후손은 미국인으로 태어나 미국인으로 자랐습니다. 미국 학교에서 공부하고 미국 정부에 세금을 내며 미국 정부, 사회, 공동체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죠. 그렇게 긴 세월이 흘러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지금, 난데없이 미국 정부가 누구는 미국인이고, 누구는 미국인이 아니라는 규정을 들먹이며 호구조사를 하겠다고 나서는 꼴이죠. 이민자들이 피땀 흘려 이룩한 아메리칸 드림을 이보다 더 깡그리 무시하는 경우는 아마 또 없을 겁니다.
(뉴요커, Jonathan Blitz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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