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케이크 둘러싼 미국의 동성애 전쟁: 판결은 어디로?
2017년 12월 8일  |  By:   |  세계  |  7 Comments

미국 콜로라도주의 한 빵집 주인이 동성 커플의 웨딩케이크 제작을 거부한 사건에 대한 연방대법원 심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이번 판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의 모순된 발언이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5일 화요일 법정에서 케네디 대법관은 빵집 주인 필립스를 지지하는 트럼프 정부 측 변호인에게 빵집에 ‘동성 커플의 웨딩케이크 제작 불가’라는 표지판을 걸 수 있느냐고 물었다. 변호인은 “주문 제작되는 케이크일 경우 가능하다”고 답했다.

답변을 들은 케네디 대법관은 심기가 불편해 보였고, 변호인의 주장이 동성 커플의 존엄성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잠시 후 케네디 대법관은 필립스에게 유죄를 선고한 콜로라도주 인권위원회가 “그의 종교적 신념에 대해 관용도, 존중도 보여주지 않았다”며 조금 전의 입장과는 다소 모순되는 발언을 했다.

종교적 자유와 동성애자의 권리가 직접 배치되는 이번 사건은 미국 시민사회에서 큰 화제로 떠오르며 이미 약 100여 건의 법정 조언자 소견서가 제출된 상태다.

필립스는 자신의 재능이 동성결혼 지지 메시지를 전하는 데 쓰이도록 강요당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이번 사건의 당사자인 동성 커플 찰스 크레이그와 데이비드 멀린스는 대중을 상대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가 개인의 성적 취향에 근거해 동성애자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폈다.

5일 열린 첫 대법원 심리는 예정된 1시간보다 길어져 약 90분 동안 이어졌고, 대법관들은 여느 때와 같이 두 가지 견해로 갈렸다. 진보성향 대법관들은 재봉사·헤어 스타일리스트·메이크업 아티스트·셰프 등 모든 ‘예술가’에게 과연 동성결혼과 관련한 제품 및 서비스 주문을 거절할 권리가 애초에 있다고 봐야 하는지 의문을 표했다. 반대로 보수성향의 대법관들은 과연 예술가들이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의견과 구호를 지지하는 데 쓰일 소지가 있는 예술적 표현을 사실상 억지로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옳은지를 따져 물었다.

필립스 측 변호인 크리스틴 웨고너는 케이크를 주문 제작하는 필립스가 단순한 빵집 주인이 아니라 조각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소니어 소토메이어 대법관은 변호인의 주장에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여기는 듯했고, “단 한 번이라도 음식을 법적으로 보호한 사례가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필립스 측 변호인단은 서로 다른 인종의 커플에 대한 차별이 동성 커플에 대한 차별보다 정당화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일부 대법관들은 이러한 주장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고, 동성 커플의 변호인 데이비드 콜은 상대측의 주장이 동성 커플을 2등 시민(second-class citizenship)으로 강등시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2015년 동성결혼 합법화에 반대했던 존 로버츠 주니어 대법원장은 대법원이 동성결혼 합헌 판결을 내린 순간부터 이미 개인의 신념에 근거한 반대는 예상된 일이었다고 말했다.

로버츠 주니어 대법원장은 동성결혼 합헌 판결 당시 케네디 대법관이 작성한 다수의견을 언급하며 “대법원은 반대 의견을 가진 선량하고 올바른 사람들을 지적했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대법원장의 발언은 케네디 대법관이 이번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음을 시사한다. 케네디 대법관은 대법원 내에서도 동성애자 권리의 최대 지지자인 동시에 표현의 자유를 일관되게 옹호해 온 인물이다.

케네디 대법관이 쓴 동성결혼 합헌 판결 다수의견을 읽어 보면 그가 콜로라도주 웨딩케이크 사건과 같은 갈등을 예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종교적 이유로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이들과 동성결혼이 적법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개방적이고 성찰적인 토론”에 참여할 것을 촉구했다.

5일 대법원 심리에서 케네디 대법관은 예상대로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필립스에게 유죄를 선고한 콜로라도주 인권위원회의 판결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았다. 케네디 대법관은 “관용은 자유 사회의 근간이 되는 것”이라며 “내가 보기엔 콜로라도주가 필립스의 종교적 신념에 대해 관용도, 존중도 없는 듯하다”고 덧붙였다.

이날 케네디 대법관의 견해와 우려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기 어려웠다. 대법원이 이 사건을 다시 1심 법원으로 돌려보내 배심원 재판을 받게 할 가능성도 있다.

동성애자 인권을 지지하는 단체들은 사업자가 동성결혼과 관련한 서비스 제공을 거부하는 차별 행위는 동성결혼 합헌 판결이 보장하는 성 평등에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한편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이들은 종교적 양심을 지킨다는 이유만으로 사업에 지장이 생겨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미국에선 동성결혼 합법화 이후 빵집, 꽃집, 사진관 등 일부 상점들이 동성결혼과 관련한 서비스 제공을 거부하며 이를 강요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라는 주장을 펴왔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콜로라도주 웨딩케이크 사건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성 커플 찰리 크레이그와 데이비드 멀린스는 웨딩케이크 주문을 위해 콜로라도주 레이크우드에 있는 필립스의 ‘마스터피스 케이크숍’을 찾았다. 하지만 필립스는 “생일 케이크, 베이비샤워 케이크, 쿠키, 브라우니, 다른 건 뭐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동성결혼을 위한 웨딩케이크는 만들 수 없다.”며 그들의 요청을 거부했다. 멀린스는 그 자리에서 할 말을 잃었다. 커플은 그 당시의 경험이 “너무 수치스러웠고 더러운 존재가 된 기분이었다.”고 회상했다. 크레이그와 멀린스 커플은 필립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콜로라도주 인권위원회와 1심 법원에서 승소했다.

스스로 ‘케이크 예술가’라고 칭하는 필립스는 미국 수정헌법 제1조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가 콜로라도주의 반(反)차별법에 우선하며, 따라서 자신에게는 웨딩케이크 주문제작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고 했다. 필립스는 대법원이 정부가 개인의 신념에 반하는 표현을 강요할 수 없다고 판결한 사례들을 언급하며 표현의 자유에 무게를 둔 입장을 견지해 왔다.

필립스가 항소했지만, 콜로라도주 항소법원은 2015년 유죄판결을 내리며 필립스가 동성 커플의 케이크 주문을 거절했을 때 케이크 디자인에 대한 논의가 전혀 오가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는 침해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또한, 사람들이 필립스가 제작한 케이크를 보고 특정 메시지가 담긴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필립스는 다른 상황에서 얼마든지 동성결혼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자유가 있다고 덧붙였다.

항소법원은 “마스터피스 케이크숍이 법을 준수하고 모든 고객을 동등하게 대우한다고 해서 동성결혼 지지 메시지를 전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필립스의 법정대리인인 보수 기독교 단체 자유수호연맹(Alliance Defending Freedom)은 성명서를 통해 수정헌법 1조는 표현을 강요당하지 않을 자유를 보장하고 대법원을 이를 오랫동안 존중해 왔다며, 1977년 “자유롭게 살라, 아니면 죽으라(Live Free or Die)”라는 주(州)의 모토가 새겨진 자동차 번호판을 달고 다니도록 의무화한 뉴햄프셔 주법을 무효라고 선언한 대법원 판결을 예로 들었다.

크레이그와 멀린스 커플의 법정대리인인 미국시민자유연맹(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은 필립스의 손을 들어주는 것은 곧 차별을 정당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빵집 주인의 차별 행위가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허용된다면, 플로리스트·사진작가·재봉사·안무가·헤어 스타일리스트·레스토랑 지배인·보석세공인·건축가·변호사 등 무언가를 표현해야 하는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모든 이들에게 차별해도 좋다는 신호를 보내는 셈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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