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겟 아웃”은 코미디인가
코미디는 다면적인 장르입니다. 웃기고, 점잖지 못하고, 몸 개그에 의지한다는 점에서 “저급”이고 동시에 복잡한 것을 재치있게 다루어낸다는 점에서 “고급”이기도 하죠. 정치적인 풍자를 위한 “전통 코미디”가 있는가하면, 특정한 캐릭터들의 일상 속에서 웃음을 이끌어내는 “신식” 코미디“도 있습니다. 서브 장르도 매우 다양하고, 그 모든 장르들을 한 작품 내에 조화롭게 녹여낸 셰익스피어와 같은 작가도 있습니다. 그러나 ”웃긴 것“, 나아가 ”웃긴 것“으로 이루어진 코미디라는 장르의 정의란 결국 보는 이의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정의가 모호한만큼, 특정 작품을 코미디 장르로 분류하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논란이 종종 일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매년 시상식 시즌이 돌아오면 논쟁에 불이 붙죠. 최근에 논란이 된 작품은 바로 조던 필 감독의 “겟 아웃”입니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이 이 작품을 코미디 부문의 후보로 올렸기 때문입니다. (아카데미와 달리 골든글로브는 최우수 작품상을 “코미디/뮤지컬”과 “드라마” 두 부문으로 나눠서 선정합니다.) 배급사들이 상을 타내기 위해 일종의 “장르 반칙”까지 무릅쓰는 것은 최근 일종의 관행처럼 굳어졌습니다. 2015년 골든글로브에서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마션”이, 2010년에는 조니 뎁과 안젤리나 졸리의 “투어리스트”가 코미디 부문에서 경쟁했으니까요.
“겟 아웃” 배급사도 나름대로 할 말이 있을 겁니다. “겟 아웃”이 백인 여자친구의 집을 방문했다가 인종차별적 공포를 경험하게 되는 젊은 흑인 남성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영화는 분명 날카로운 풍자와 관객들이 좋아하는 스릴을 동시에 갖추고 있으니까요. 큰 웃음이 터져 나오는 장면들도 분명히 있는 동시에, 호러 장르의 공식들도 충실히 따르고 있죠. 작품이 다루고 있는 사회적, 인종적 풍자는 분명 코미디 장르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골든글로브의 결정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번 결정이 사회적 기록으로서 이 영화가 갖고 있는 힘을 약화시킨다고 말합니다. 이 영화를 코미디로 분류해버리면 백인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가 다루고 있는 처절한 현실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도록 빌미를 주는 셈이라는 주장이죠. 필 감독이 반쯤은 농담으로 트위터에 올렸던 말(“겟 아웃은 다큐멘터리입니다.”)처럼 이 영화를 진지한 영화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독은 나아가 인터뷰에서 “중요한 점은 우리의 진실이 하찮고 사소한 것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코미디라는 딱지는 종종 하찮은 일에 붙죠.”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겟 아웃” 이전 풍자 코미디로 이름을 날린 필 감독의 입에서 나왔다기엔 조금 이상한 말입니다. 그의 작품인 “키 앤드 필(Key and Peele)”은 어려운 인종과 젠더의 문제를 유머로 접근해 사회적 담론 형성에 기여했음을 인정받아 피바디상을 받기도 했죠. 조던 필과 키건-마이클 키 듀오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오바마의 분노 통역사“일 것입니다. 이들은 흑인 대통령에게 결코 허용되지 않은 분노의 표현과 그로 인한 좌절감을 생생하게 그려냈습니다. 이들의 작품은 유머라는 쿠션을 가지고 심각한 주제를 정면으로 다룬다는 코미디 장르의 오랜 전통을 그대로 계승한 것이었죠. 찰리 채플린이 슬랩스틱 코미디로 나치 독일을 풍자하고,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핵무기 시대의 광기를 유머러스하게 다루었던 것처럼요.
골든글로브를 비판하는 목소리 가운데는 이번 결정이 “겟 아웃”의 오스카 작품상 수상 가능성을 크게 낮추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실제로 근거가 보다 분명한 주장이기도 하죠. 실제로 골든글로브의 드라마 부문 경쟁 작품들이 코미디 부문 작품들에 비해 오스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역사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아카데미가 코미디를 경멸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앞서 언급한 찰리 채플린의 “위대한 독재자”나 스탠리 큐브릭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역시 오스카 작품상을 비롯한 여러 부문에 후보로 이름을 올린 바 있고, 최근에는 “빅 쇼트”,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네브레스카”, “실버라이닝 풀레이북”, “미드나잇 인 파리”, “인 디 에어”, “주노”, “아티스트”와 같은 작품이 골든글로브 코미디 부문에서 경쟁했지만 오스카 작품상 후보에 올랐었죠. 물론 실제 수상으로 이어진 것은 “아티스트” 뿐이었지만, “겟 아웃”의 화제성은 충분한 상황입니다.
특히나 작년 “문라이트”의 작품상 수상은 아카데미에도 큰 변화가 일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위원회에 젊은 회원들을 영입해 개혁 의지를 보였습니다. 필 감독 본인도 회원이죠. 기존의 아카데미였다면 작년 작품상은 “라라랜드”에게 돌아갔을 것이 분명합니다. 아카데미가 마이애미 도심 빈민가를 배경으로 인종적, 성적 정체성 탐구한 인디 영화를 수상작으로 뽑을만큼 달라졌다면 “겟 아웃”이 작품상을 받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겟 아웃”이 코미디 장르로 분류된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는 오히려 코미디의 역할을 비하하고 있습니다. “겟 아웃”이 다루고 있는 소재에 대해 누군가와 얼굴을 맞대고 토론을 펼치기란 쉽지 않죠. 하지만 유머는 긴장을 완화시키고 생각의 공간을 열어줍니다. 인류 역사 상의 위대한 풍자가들은 이 점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조던 필 감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코노미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