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등장한 역대 최고 고음(高音)
두 시간 동안 이어지는 공연 중 문제의 그 음이 등장하는 순간은 1초에도 한참 못 미치는, 말 그대로 찰나의 순간입니다. 순식간에 왔다가 사라지는 고음이라서 다행히 창문이 깨질 염려는 안 해도 됩니다.
해당 음은 높은 도(C)보다도 한참 더 위에 있는 라(A) 음입니다. 토마스 아데스(Thomas Adès)가 작곡한 오페라 “절멸의 천사(The Exterminating Angel)”의 한 장면으로, 오페라 가수인 소프라노 오드리 루나(Audrey Luna)가 이 음을 소화합니다. 오드리 루나가 부르는 라 음은 지난 137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역사상 공연에서 불린 가장 높은 음입니다.
대개 오페라 작품에서 높은 도 음을 불러야 하는 경우는 수없이 많습니다. 그보다 더 높은 레나 미를 부를 때는 서서히 긴장되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 자체로 진귀한 장면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파, 솔, 그리고 라 플랫으로 갈수록 흔하지 않은 장면이 연출되죠.
하지만 거기서 반음 더 올라간 높은 라 음은 또 다른 차원의 얘기입니다. 타고 난 재능도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정말 부단한 연습을 거쳐 완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하지 않으면 성대가 버티지 못할 겁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기록물 보관 담당자는 이렇게 높은음이 상연된 적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며, 실로 기념비적인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높은음을 기교로 처리하는 콜로라투라는 정말 특별한 짜릿함을 선사합니다. 전통적으로 높은 도 음을 들을 때마다 저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가진 것이 더 있을 텐데, 마음껏 한 번 보여주세요.’라고 말이죠.”
절멸의 천사를 작곡한 아데스 씨가 전화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새로운 작품을 쓰면서 아데스 씨는 이미 루나 씨를 점찍어두고 있었습니다. 앞서 오드리 루나는 2012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아데스의 전 작품인 “템페스트”를 공연하며 높은 솔(G) 음까지 부른 적이 있습니다.
오드리 루나는 분장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전부터 연습 때는 높은 도보다 더 위의 도까지도 내곤 했죠. 그래서 더 높은 음도 도전할 수 있겠다고 생각은 해왔는데, 그걸 실제로 무대 위에서 선보이는 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죠. 처음 템페스트의 아리엘 역할을 봤을 때 이건 엄청난 모험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 절멸의 천사는 그보다 훨씬 더 힘든 도전이죠.”
오페라 “절멸의 천사”는 1962년 루이 부뉘엘 감독이 제작한 같은 이름의 영화를 소재로 한 작품입니다. 성대한 만찬이 끝난 뒤에도 알 수 없는 이유로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귀족들의 이야기를 그린 오페라에서 오드리 루나는 극 중 오페라 가수인 레티샤 역을 맡았습니다. 이 오페라는 레티샤 역할뿐 아니라 등장하는 모든 배우에게 상당히 고난도의 가창력을 요구합니다.
이 작품을 쓴 아데스는 극 중 배우들이 부르는 노래가 음역이 상당히 넓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높은음과 낮은음을 쉼 없이 오르내리는 장면이 유독 많은 이유는 그것이 바로 극 중 인물들을 둘러싸고 있는 보이지 않는 심리적 장벽, 알 수 없는 이유로 파티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 그 장벽을 넘나드는 상징적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극적 효과를 최대한 높일 수 있는 곳에 높은음 라를 배치했습니다. “마술 피리”의 밤의 여왕 역할이나 “낙소스의 아리아드네”의 용감한 제르비네타 역, 혹은 “람메르무르의 루치아”에 나오는 끈질긴 주인공 역이 소화해야 하는 고음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절멸의 천사” 속 레티샤에게는 고음을 지르기 전에 목을 풀고 이른바 워밍업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문제의 높은 라 음은 그 악절에서 레티샤가 내는 첫 음으로, 심지어 레티샤가 무대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도 전에 부르는 소절입니다. (그녀는 잠시 후 어딘가 이상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다른 파티 참석자와 어울려 같은 음을 한 번 더 부르고 무대에서 퇴장했다가 다시 들어옵니다.)
아데스는 이 장면에서는 어렵더라도 반드시 이 음이어야만 했다고 말했습니다.
오레곤주에서 자란 오드리 루나는 고등학생 때 이미 아무나 도전할 수 없는 밤의 여왕을 소화해냈을 정도로 뛰어난 오페라 가수였습니다.
“그냥 재미있어서 불러봤어요. 노래를 부를 때 제 뼈마디마다, 그리고 코에서 머리까지 이어지는 그 공간이 울리는 전율이 좋았어요. 노래를 열창하면 저도 모르게 거기에 빠져들었다고 할까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그녀는 가장 높은 음을 낼 때도 믿을 수 없을 만큼 평온해 보입니다. 대부분 소프라노조차 범접할 수 없는 고음들을 낼 때도, 심지어 다른 작곡가들이 요구하는 것보다 훨씬 길게 고음을 끌어줘야 할 때도 그녀는 그 높은음을 온전히 불러내고 맙니다. 그녀는 동시에 “바그너 풍의 화려한 기교”가 지나치게 날카롭게 들리지 않도록 절제하는 데도 신경을 썼습니다. “절멸의 천사”에서는 마지막 아리아 부분에 높은 파 음을 오래 유지하며 극의 절정으로 치닫는 장면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역사상 공식적으로 가장 높은 음은 오드리 루나가 소화한 높은 라 음이 맞지만, 다른 오페라 배우들도 루나에 견줄 만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특히 악보에는 쓰여있지 않지만 극 중 장면에 어우러지도록 즉흥적으로 음을 바꾸거나 높여 기량을 뽐낸 이도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람메르무르의 루치아”의 주인공 역할이 고음을 뽐내고자 하는 소프라노들에게는 가장 좋은 기회였습니다. “절멸의 천사”에서 오페라 가수 역할인 레티샤가 극 중에서 만찬 파티 중 “람메르무르의 루치아”의 주요 장면을 부르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1908년 엘렌 비치 여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루치아 역할을 맡아 높은 솔 음을 불렀습니다. 버팔로 근처에서 그녀가 태어난 것이 1869년이었으니, 마흔 살의 나이였습니다. 뉴욕타임스는 그녀를 비행기 개발에 혁혁한 공을 세운 비행술의 선구자 브라질 출신의 산토스 두몽에 빗대어 “엘렌 비치 여의 피리 같은 음색은 산토스 두몽의 비행기처럼 높았다.”라고 칭찬했습니다.
프랑스 출신 유명 소프라노 릴리 퐁도 1931년 본인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데뷔 무대에서 “람메르무르의 루치아”를 열연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높은 파(F) 음을 끌고 가는 장면이 압권이었습니다. 뉴욕포스트는 이 장면을 “새가 지저귀는 소리도 아니고 가성을 쓰지도 않고 자기 목소리로 정확히 음을 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20세기 초 시빌 샌더슨은 오페라 “마스네의 마농”에서 높은 솔 음을 불렀습니다. “에펠탑 고음”으로 익히 알려진 고음이었죠. 프랑스 오페라 가수 마도 로뱅이 무려 높은 시 플랫 음까지 낸 장면의 영상이 남아있지만, 로뱅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무대에는 선 적이 없습니다.
좀 더 최근으로 오면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에서 기계 인형 올랭피아 역을 맡은 나탈리 드사이가 그녀의 맑은 높은 솔 음으로 뉴욕 오페라 가에서 유명해졌습니다. 올가을 에린 몰리는 올랭피아 역을 맡아 라 플랫 음을 불렀습니다. 앞서 2009년, 라셸 길모어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올랭피아 역을 맡아 라 플랫을 불렀습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측은 더 높은 음이 불린 적이 있지만, 기록에 남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기록물 보관 담당자인 피터 클라크는 어렸을 때 라디오를 통해 릴리 퐁이 부르는 높은 솔 음을 들었던 것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일단 오드리 루나가 부른 음보다 더 높은 음이 저희 오페라 기록으로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즉흥적으로 음을 넘나드는 기교까지 다 합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고 100년 전에는 오페라에 고음이 없었다고 해석해서는 안 되겠죠. 하지만 기록적인 고음이 공연 중에 나왔다면, 이를 언급한 언론이나 기록물이 전혀 없을 리가 없겠죠.”
아데스는 “절멸의 천사”, “템페스트” 전에도 상당한 고음을 요구하는 오페라를 여러 편 썼습니다. 실제로 그의 초기작 가운데 하나인 1990년 작 “엘리엇의 다섯 가지 풍경”의 마지막 장면은 소프라노와 피아노가 높은 솔 음을 열창하는 장면입니다.
“배우들에게는 꽤 잔인한 요구가 아닐 수 없었겠죠.”
아데스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내 방금 했던 말을 고쳤습니다.
“잔인했다기보다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아직 제가 어려서 뭘 몰랐어요. 치기였다고 할까요?”
그때는 치기였을지 몰라도, 그는 아직도 고음을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아데스의 오페라 “템페스트”는 2004년 런던에서 초연했는데, 그는 악보에 높은 솔 음을 괄호 안에 넣어뒀습니다. 그때만 해도 그 음을 과연 사람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을까 그조차 반신반의했던 거죠. 꿈의 고음이었던 겁니다.
오드리 루나가 토마스 아데스의 꿈을 이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솔 음을 불렀습니다. 10년도 더 지난 지금, “절멸의 천사” 악보에는 괄호 속에 높은 시 음표가 그려져 있습니다. 여전히 사람이 낼 수 없는 음역에 있는 고음이죠. 그러나 오드리 루나가 그랬던 것처럼, 높은 시 음을 멋들어지게 불러줄 소프라노가 나타나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한 걸음 한 걸음 여기까지 왔으니까요. (뉴욕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