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경제학상 수상한 리처드 세일러 교수
* 행동경제학 분야의 대가이자 ‘넛지(nudge)’로 잘 알려진 리처드 세일러(Richard H. Thaler) 교수가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습니다. 앞서 뉴스페퍼민트는 세일러 교수가 뉴욕타임스에 쓴 칼럼을 번역해 싣기도 했습니다. 노벨상 수상 소식이 알려진 뒤 뉴욕타임스가 정리한 세일러 교수의 업적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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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경제학자가 인간의 행동 자체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되고, 여러 정부가 경제학에서 더 많은 교훈을 얻으려 하게 된 데는 리처드 세일러 교수의 공이 크다. 지난 월요일 세일러 교수는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노벨상을 받기 전부터 이미 명성이 자자했다는 점에서 세일러 교수의 이번 수상은 특이하기도 하다. 그는 더 나은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지침서로 자리매김한 “넛지”의 저자로 이미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2015년 상영된 영화 “빅쇼트”를 본 사람이라면, 팝스타 셀레나 고메스 옆에서 2008년 금융위기의 원인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던 경제학 박사로 기억할 것이다. 아마도 세일러 교수가 영화 속에서 전달한 설명은 경제학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보고 들은 강연일 것이다.
노벨위원회는 스톡홀름에서 “세일러 교수는 사람들이 기존 경제학 이론이 가정하는 것처럼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데 선구적인 연구를 수행했다.”라며 수상 이유를 밝혔다. 경제학 이론에 어긋나는 인간의 비합리적인 행동은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사람들은 폭우가 쏟아질 때도 평소보다 비싼 돈을 내야 하면 우산을 사지 않는다, 기름값이 떨어지면 거기서 아낀 돈을 다른 데 쓰지 않고 고급 휘발유를 주유하는 데 쓴다, 커피잔을 3달러에 사겠다는 사람이 6달러를 준다고 해도 팔지 않겠다고 한다.
노벨위원회는 또 세일러 교수 덕분에 경제학 전체가 인간이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고 그 공로를 평가했다. 특히 연구 결과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더 나은 선택을 내리게 하는 정책을 고안한 점을 높게 평가했는데, 노동자들이 퇴직연금에 자동으로 가입하도록 해 가입률을 비약적으로 높인 정책은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시카고대학교 부스 경영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세일러 교수는 수상자로 선정된 뒤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에게 이로운 좋은 경제학을 하려면, 무엇보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늘 잊지 말아야 합니다.”
누군가 우리돈 약 12억 5천만 원에 이르는 상금을 어떻게 쓸 계획인지 묻자 이렇게 말했다.
“재미있는 질문이네요. 제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비합리적으로 써보겠습니다.”
노벨 경제학상은 스웨덴 중앙은행이 1968년 알프레드 노벨을 기리며 제정했고, 매년 스웨덴 왕립과학 아카데미가 수여한다. 세일러 교수와 여러 연구를 함께 한 다니엘 카네만 교수는 앞서 2002년 이 상을 받았다. 또 다른 행동경제학자이자 앞서 2013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쉴러 교수는 “세일러 교수는 현대 경제학에서 가장 창의적인 연구를 이끄는 석학 중 한 명”이라며 수상을 축하했다.
주류 경제학의 토대를 받치는 가장 핵심적인 가정은 바로 사람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가정이다. 경제학자들은 인간이 모든 상황에서 완전히 합리적일 수는 없다고 하면서도 인간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가정해도 경제 현상을 설명하는 데 큰 무리가 없다고 주장해 왔다.
세일러 교수는 바로 이 핵심 가정에 반기를 들었다. 그렇다고 세일러 교수가 인간이 단지 비합리적이라고 주장한 건 아니다. 인간의 행동이 대부분 비합리적이라도 그렇게 주장해선 학계에서 논의를 진행할 수 없었다. 대신 세일러 교수는 인간이 합리적이라면 하지 않았을 수많은 행동을 꾸준히 모아 정리하고 소개했다. 결국, 합리적인 인간이라는 가정을 대체할 수 있는 예측 모델을 세울 수 있는 정도가 됐다.
세일러 교수와 함께 “넛지”를 쓴 하버드 법대의 캐스 선스타인 교수는 세일러 교수를 가리켜 “사람의 심리에 관해 누구보다 천착한 연구자”라고 말했다. 2008년 출간한 책에서 저자들은 수많은 공공 정책을 관장하는 정부가 정책의 효율성과 효과를 제고하기 위해 행동경제학의 교훈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년 뒤 영국 정부는 이에 관한 실험을 수행할 부처를 신설했고,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뒤를 이었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는 세일러 교수가 주창한 넛지에 관해 “아주 간단하면서도 인간의 본성을 놀랍도록 정확하게 짚어낸 관찰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어떤 넛지는 상대적으로 사소한 영역에 있다. 영국 정부는 사람들이 자동차 등록세 고지서에 자동차 사진이 있으면 글자만 적힌 고지서를 받았을 때보다 등록세를 더 잘 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반대로 그 파급 효과가 훨씬 큰 넛지도 있다. 퇴직 연금 제도나 학교 점심 급식 등 사람들이 참여만 하면 혜택을 누릴 수 있는데도 참여하지 않는 현상을 거듭 접한 세일러 교수는 정부와 사용자에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자동으로 프로그램에 등록되도록 기본 설정을 바꾸라고 조언했다. 예전에는 (등록 절차가 복잡하지 않더라도) 내가 원하면 등록을 해야 했는데(opt-in), 이제는 가만히 있으면 퇴직 연금이나 점심 급식에 등록되어 있고, 내가 하기 싫으면 등록을 해지해야 하도록 (opt-out) 바뀐 것이다. 보다 바람직한 상황을 기본으로 하도록 설정을 바꾼 효과는 잘 알려진 것처럼 엄청났다.
“나중을 위해 아낍시다(Save More Later)” 캠페인도 비슷한 맥락의 제안이다. 사람들은 현재 소득, 지금 눈앞의 돈에 상대적으로 너무 높은 가치를 매기곤 한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지금 받을 돈을 아껴서 내년에 받으면 더 많은 액수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 저축을 늘리는 제안이었다.
올해 72세인 세일러 교수는 뉴저지주 이스트오렌지에서 태어났다. 케이스웨스턴리저브 대학교를 졸업하고 로체스터대학교에서 1974년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당시 경제학은 인간은 합리적인 행동만 한다는 믿음이 팽배했다. 보통 사람들은 정부가 재정 정책을 바꿀 때마다 그 결과를 능히 예측하고 그에 맞춰 가계 지출을 조절할 것이라는 식의 논의가 경제학 전반에서 의심 없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던 때다.
세일러 교수는 그가 대학원 시절부터 “무언가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고 술회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실제 생활에서 어떤 선택을 내리고 왜 그랬는지 물어보기 시작했다. 대부분 경제학자는 경제학과 전혀 무관하다고 여겼을 질문을 꾸준히 던지고 답변을 모은 결과, 세일러 교수는 사람들이 교과서에서 설명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행동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어 카네만 교수가 그의 오랜 동료인 아모스 트버스키 교수와 함께 발표한 연구들을 접한 것이 세일러 교수의 진로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트버스키 교수는 특히 경제학이 사람들의 실제 행동을 분석하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꾸준히 주장해 왔다. 세일러 교수는 이들과 함께 연구하며 심리학과 이를 바탕으로 한 행동경제학 논의를 주류 경제학 영역으로 끌어왔다.
1995년, 세일러 교수는 시카고대학교 교수로 부임한다. 인간은 합리적이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한 주류 경제학의 호랑이굴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간 셈이다. 세일러 교수는 월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도 저와 생각이 많이 다른 사람들이 가득한 곳으로 간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다른 생각을 접하고 때로는 치고받는 것이 저에게도, 그 사람들에게도 좋을 거라고 생각했죠. 제 기량을 갈고닦는 가장 좋은 길은 가장 강력한 적과 싸우는 것 아니겠어요?”
세일러 교수는 주류 경제학 이론이 인간의 행동에 관해 내린 가정이 틀렸다는 것을 실제 인간의 행동을 정리해 보여줌으로써 반박했다. 세일러 교수의 학문적 업적을 요약하면 실제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관한 끝없는 탐구가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사람들은 모든 돈을 액면가 그대로 똑같이 취급하지 않는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기름값이 내려가면 사람들이 아낀 주유비를 다른 필요한 곳에 쓸 것이라고 가정한다. 적어도 기름값이 싸졌는데 아낀 돈을 기름을 더 사는 데 쓰지는 않으리라고 예측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은 기름을 넣는 데 돈을 더 썼다. 고급 휘발유를 넣으면 안 되는 차에까지 굳이 고급 휘발유를 넣는 사람도 있었다. 즉, 사람들은 예산 일부를 미리 주유비로 떼어놓고, 기름값이 싸져도 그 돈을 기름을 넣는 데 어떻게든 다 써버린 것이다.
사람들이 자기가 소유한 것에 높은 가치를 매기는 것도 세일러 교수가 밝혀낸 인간의 실제 행동이다. 세일러 교수와 두 공저자의 커피잔 실험은 이미 유명하다. 교실의 학생 절반에게 커피잔을 나눠주고 교실에 있는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커피잔을 사고팔 수 있게 한다. 똑같은 커피잔을 무작위로 학생들에게 나눠줬는데도 커피잔을 사겠다는 학생이 제시한 가격보다 팔겠다는 학생이 제시한 가격이 두 배 가까이 높았다.
이러한 “소유 효과(endowment effect)”는 교실에서 배우는 이론으로 왜 현실 세계를 잘 설명할 수 없는지 설명하는 좋은 도구다.
공정함의 중요성을 정립한 것은 세일러 교수의 가장 중요한 업적 가운데 하나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혜택이 없더라도 불공정한 행위를 직접 저지하거나 불공정한 행위를 하는 사람을 깎아내린다는 점을 사례를 통해 입증했다.
경제적인 함의가 대단히 큰 발견인데, 이를 토대로 예를 들면 왜 우산 가게가 비가 올 때 우산값을 올리지 않는지 설명할 수 있다. 또한, 고용과 실업률에 관해서도 주류 경제학의 가정보다 더 정확한 설명을 내놓을 수 있다. 주류 경제학 이론은 경기 침체가 오면 고용주가 예상되는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에 맞춰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임금을 낮춘다고 설명한다. 이론적으로는 임금을 낮추면 해결된 문제인 만큼 경기 침체가 해고를 늘리고 실업률이 높아질 이유가 없다.
하지만 노동자 관점에서 임금 삭감은 불공정한 것, 잘못된 처사다. 고용주로서는 계속 고용하고 싶은 노동자가 회사에 등을 돌리지 않게 하는 제일 나은 방법이 임금을 일괄적으로 낮추는 대신 다른 노동자를 해고해 인건비를 아끼는 것이다.
지난해 1월 당시 미국 경제학회 회장이던 세일러 교수는 회장 연설에서 행동경제학이 성공을 거듭해 머지않아 주류 경제학 안에 뿌리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행동경제학을 일종의 혁명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경제학은 연구 주제에 따라 실제 행동을 연구하고 분석하는 학문이 될 테니까요.” (뉴욕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