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의 탄생
* 이 글을 쓴 에드 시몬은 <마지날리아 서평(The Marginalia Review of Books)>의 편집인입니다. 펜실베니아 리하이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은 시몬은 여러 매체에 정기적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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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극작가 토마스 미들턴(Thomas Middleton)이 쓴 희곡 <진실의 승리(The Triumphs of Truth)>는 제임스 1세의 재위 기간 한가운데인 1613년 10월 29일, 연극으로 첫선을 보입니다. 이날은 근대적 맥락에서 ‘백인(white people)’이라는 개념이 탄생한 날로 기록해도 좋을 것입니다. 극 중에는 아프리카 왕이 영국인 관객들을 향해 다음과 같은 대사를 읊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 내 앞에 있는 얼굴 하얀 사람들의 낯설고 의아한 표정에서 놀라움과 경이를 읽을 수 있구나.
미들턴의 희곡은 적어도 문헌으로 남아있는 작품 가운데 유럽 작가가 다른 유럽인들을 ‘백인’, 혹은 ‘얼굴색이 하얀 사람들’이라고 지칭한 첫 작품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듬해 영국의 평민 출신인 존 롤프가 버지니아 제임스타운에서 북미 원주민 부족인 알곤퀸족의 공주 마토아카를 아내로 맞이합니다. 마토아카는 세상에는 포카혼타스로 더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문학비평가 크리스토퍼 호킨스에 따르면 제임스 1세는 둘의 결혼 소식을 처음 듣고 심리적으로 상당히 동요했습니다. 다른 인종 간의 출산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제임스 1세는 “평민 출신인 롤프가 그곳을 통치하는 부족의 공주와 결혼하면서 그곳 권력자로부터 허락을 받지 않은 점”을 걱정했다고 호킨스는 설명합니다. 제임스 1세에게는 롤프의 혈통에 외국인이 섞이는 것보다 오히려 마토아카의 혈통에 평민의 피가 섞이는 것이 더 우려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독자의 눈에는 위의 두 가지 사례 모두 놀라운 일일 겁니다. 하지만 역사학자 닐 어윈 페인터가 2010년 작 <백인의 역사(The History of White People)>에서 ‘인종이란 것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개념(race is an idea, not a fact)’이라고 정리한 데는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백인이라는 개념을 미들턴이 홀로 발명해낸 것도 물론 아닙니다. 하지만 미들턴이 아니라 누구라도 백인이라는 개념이 뿌리를 깊이 내린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하게 들리는 아프리카 왕의 대사를 써내는 건 결국 시간문제였을 겁니다. 인종에 관한 개념이 공고해지는 과정을 살펴보면 우리는 역사가 필연보다도 우연에 얼마나 좌우되는지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됩니다. 인종이라는 개념은 반드시 나타나야 했던 것이 전혀 아닙니다. 문학을 연구하는 록산 휠러는 2000년에 쓴 <얼굴색과 인종(The Complexion of Race)>에서 “생물학적으로 인종이라는 것을 굳이 나누고 구분할 필요가 없던 시대가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유럽사람들이 항상 자신을 하얗다거나 백인으로 여긴 것은 아닙니다. 결국, 인종이라는 것은 사회적인 맥락에서 그야말로 임의로 생겨났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백인(과 그에 따라 상대적으로 파생된 인종)이라는 개념의 길지 않은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이 개념은 생물학적인 실체를 바탕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회적 구조와 역사적 맥락에 따라 형성되고 변화해 왔습니다.
인간을 나누는 기준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 많은 기준 가운데 피부색은 상당히 새로운 기준에 속합니다. 얼굴색에 따라 사람을 나누기 전부터 이미 종교, 생활 양식, 의복에 따라서도 사람을 나누는 기준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영국인 혈통으로 식민지로 이주해 온 초기 식민지 개척자들은 아메리카대륙 원주민을 자신의 조상인 영국인과 비교하곤 했는데, 주로 생활 양식 등 문화적인 차이를 놓고 비교했을 뿐 신체적인 차이에는 거의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미들턴이 작품 활동을 할 때쯤에는 어느덧 피부색의 차이가 점점 더 많은 주목을 받았고, 피부색에 따라 인종을 나눈다는 오늘날에는 굳어진 관념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영문학자이자 아프리카사를 연구하는 킴 홀 교수는 1996년 저서 <어둠에 관하여(Things of Darkness)>에 이렇게 썼습니다.
하얀색은 검은색과 나란히 놓였을 때 가장 돋보인다. 결국, ‘백인’이라는 개념은 얼굴이 하얀 사람의 반대라 할 수 있는 얼굴이 검은 사람을 고안해낸 뒤에야 등장할 수 있었다.
반대 개념과 짝을 이뤄야 명확히 돋보일 수 있었기에 하양은 검정이 꼭 있어야 했습니다. 결국 두 단어, 두 개념은 서로가 서로를 만들어낸 셈입니다. 영문학자 버지니아 메이슨 보간은 2005년 저서 <1500~1800년 영국 무대 위의 흑인(Performing Blackness on English Stages, 1500-1800)>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초기 현대극에서 얼굴이 검거나 어두운 빛깔의 등장인물은 주로 밝은색을 띠는 캐릭터를 부각하는 장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검정이나 하양은 단지 어떤 집단을 가리키는 추상적인 표현이었을 뿐 사람의 신체나 특징을 직접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었다. 물론 추상적인 표현이 미친 영향력은 그때도 대단히 컸다.
백인이나 흑인이라는 말은 이처럼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개념이고, 만들어진 뒤에도 시대에 따라 그 뜻이 바뀌어 왔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흑인이나 백인으로 묘사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시대는 찾기 어렵습니다. 시칠리아 사람이나 스웨덴 사람을 똑같이 백인으로, 이그보우어를 쓰는 사람들이나 마사이족을 똑같이 흑인으로 한데 뭉뚱그리는 건 지금도 어색한 일입니다. 이런 식의 인종적인 사고는 노예무역이 활발해지면서 본격적으로 개발됐습니다. 킴 홀 교수의 설명을 빌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백인의 특징이라는 것은 결국 아프리카 사람들과 교류가 늘어나고 아프리카 사람들과의 차이가 부각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끊임없는 식민지 개척으로 아프리카에서 영토를 확장하고 있던 대영제국은 아프리카인들에 비추어 ‘백인다움’이나 ‘백인의 특징’을 확립하는 데 이바지한 셈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근대 유럽인들이 자기 자신을 ‘백인’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을 때는 영국인이나 기독교도라는 뜻만 있던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이미 상대적으로 우월한 존재라는 ‘백인’을 만든 뒤 자기 자신을 그 집단에 포함시켰습니다. 그리하여 ‘백인’이라는 개념은 같은 사람 가운데도 백인보다 열등한 집단이 있어 이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우월한 백인이 소유하고 재산처럼 거래해도 도덕적으로 문제되지 않는다는 정당화 논리의 근거를 제공했습니다.
킴 홀 교수는 (백인의 대척점으로서) 흑인의 특징, 흑인다움, 흑인성은 당시 잉글랜드에 있던 아프리카 사람들의 규모나 영향력에 비해 훨씬 강조됐다고 말합니다. 미들턴의 작품이 상연되기 전에도 이른바 상상 속의 ‘흑인’ 혹은 이방인이 등장한 작품은 많았습니다. 극작가 벤 존슨이 1605년에 쓴 <검은 가면극(The Masque of Blackness)>에는 피부가 검은 앤 여왕이 등장합니다. 역시 미들턴의 작품보다 몇 년 앞서 무대에 오른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에도 피부가 검은 북아프리카인 ‘고귀한 무어인’이 등장합니다.
시대를 거치며 인종에 대한 관념은 달라졌습니다. 근대 초기 작품에서는 이국적인 등장인물의 어두운 피부색을 표현하는 단어로 ‘dusky(어스름한)’, ‘dun(회갈색의)’, ‘dark(어두운)’, ‘sable(흑담비색의)’, ‘black(검은)’ 등의 단어가 두루 쓰였습니다. 또한, 아프리카인뿐 아니라 외국인이면 거의 모두 이국적인 등장인물로 분류됐습니다. 이탈리아인, 스페인인, 아랍인, 인도인, 심지어 아일랜드 사람까지도 외국인으로 묘사됐으니까요. 미들턴의 작품은 기존의 분류법을 모두 뒤엎고, 흑인이라는 한 집단을 만든 뒤 흑인이 아닌 이들을 넓은 의미에서 백인으로 묶었습니다. 물론 이후에도 세부적인 기준은 시시각각 바뀌었죠.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집에 나오는 ‘검은 여인(Dark Lady)’을 생각해봅시다. 그는 미스테리한 자신의 애인에 관해 “그녀의 젖가슴은 회갈색”이라고 묘사합니다. (130번 소네트) “담비털 같은 짙은 색 곱슬머리” (12번 소네트), “검은 철사가 머리에서 자라는 것 같다.” (127번 소네트)라는 묘사도 있습니다. 흔히 셰익스피어는 이전의 페트라르카 같은 시인들이 여성스러운 아름다움을 옅은 색 금발의 이미지로 표현하던 전통을 완전히 뒤엎은 작가로 알려졌습니다. 어쩌면 “검정은 아름다움의 진정한 계승자”라는 선언 같은 데도 전통에 맞서 새로운 조류를 만들어낸 셰익스피어의 정신이 깃들어있는지도 모릅니다. 검정과 하양을 나타내는 언어가 현대적 의미에서 인종에 관해 어떤 뜻을 갖는지 생각해보면 셰익스피어의 이러한 표현은 더욱 진보적으로 읽히기까지 합니다. 132번 소네트에는 더욱 급진적인 표현이 나옵니다.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검다. 그대의 얼굴에선 찾아볼 수 없는 그 빛깔이 바로 아름다움 본연의 색이다.
이런 표현과 단어 선택에서 셰익스피어가 ‘검은 여인’이라는 인물을 어느 집단의 누구로 상정하고 만들어낸 것인지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동시에 유럽인과 아프리카인의 모습이 완전히 혼재된 그녀의 특징으로 미루어 셰익스피어가 작품을 쓴 당시 인종에 관한 기준이 지금처럼 굳어지지 않은 채 끊임없이 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니면 <템페스트(The Tempest)>에서 마법사 프로스페로가 식민지로 삼는 섬에 사는 캘리반을 생각해봅시다. 현대화한 작품에서는 보통 노예로 팔려 온 아프리카인이나 아메리카 원주민으로 그려지지만, 여러 가지 정황상 제임스 1세 시대에 이 작품을 접한 잉글랜드 사람들은 캘리반을 영국이 처음 식민지로 삼은 아일랜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이는 역사가 노엘 이그나티에브가 1995년 쓴 ‘아일랜드 사람들은 어떻게 백인이 되었나’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됩니다. 물론 캘리반이나 앞서 살펴본 검은 여인이 실제로 어떤 국적이나 민족에 속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 두 가지 사례에서 현재 우리에게 익숙해진 인종에 관한 분류가 아주 처음에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단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물론 인종에 관한 분류는 무척 다양하고 지금 이 순간도 변하고 있으므로 끝내 어떤 방향으로 바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지금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인종 분류법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돌이켜보면 식민주의와 자본주의의 도구로서, 즉 두 가지가 결합해 만들어낸 노예 제도라는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지금처럼 피부색에 따라 인종을 나누게 됐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실증주의 언어에 힘입어 인종이라는 개념은 아주 보편적인 것으로 자리매김했고, 이제는 어느덧 백인이라는 개념이 원래 실재하던 것이 아니라 누군가 만들어낸 것이라는 주장이 이상하게 들릴 정도가 됐습니다. 하지만 분명 백인이라는 개념은 인간과 서구 문명의 발명품입니다. 최근 공개적으로 인종차별을 일삼는 집단이 다시 등장해 논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들은 종종 대단히 복잡한 용어와 개념을 거리낌 없이 마구 쓰고 있습니다. 먼저 “인종이란 실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입에서 나옵니다. 이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이런 말을 입에 올리는 것이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못하기 전에 정확하지도 않은 억지에 불과하다는 것도 분명히 해둬야 합니다. 우리는 인종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변덕스러운 것인지 미들턴의 사례를 통해 똑똑히 지켜봤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만 해도 우리가 아는 백인은 백인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흑인도 흑인이 아니었습니다. 하얀색과 검은색이 함축하는 의미도 전혀 달랐습니다. 미들턴 이후 관객들은 점점 이 세상을 하양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아직 그 패러다임 안에 갇혀 있습니다.
인종이라는 것은 실재하지 않는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인종차별주의는 분명 실재합니다. 실제 자기가 대리한다는 신이나 초월적 존재가 환상에 불과하더라도 우상은 어떻게든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입니다. 미들턴의 희곡을 읽다 보면 우리가 ‘백인’이라는 말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세상을 향해 다시 나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인간이 피부색으로 분류된 건 정말 얼마 되지 않은 일임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더는 피부색으로 사람을 가르지 않는 미래를, 그리하여 피부색이라는 낡은 기준에 따라 갈라진 집단끼리 반목하지 않는 미래를 얼마든지 그려볼 수 있습니다. (A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