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맨더링: 1인 1표 민주주의 원칙을 위협하는 숫자 놀음 (2)
2017년 9월 20일  |  By:   |  정치  |  4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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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콘신 주의회가 이러한 선거구 획정안을 통과시켰을 때만 해도 연방 대법원이 특정 정당에 편파적으로 유리하게 짜였다는 이유로 선거구 획정안을 파기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주요한 판례로 2004년 비스 대 주베리러(Vieth v. Jubelirer) 판결이 있습니다. 펜실베니아주 민주당원 세 명이 공화당이 다수당인 펜실베니아 주의회를 선거구 재획정 시 제리맨더링했다며 고소해 재판이 열렸습니다. 당시 안토닌 스칼리아 대법관은 먼저 특정 정당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제리맨더링을 법원이 심판하는 것이 타당한지 먼저 의문을 던졌습니다. 윌리엄 렝퀴스트 대법원장과 산드라 데이 오코너, 클라렌스 토마스 대법관도 스칼리아 대법관의 문제 제기에 동의했습니다. 대법원은 펜실베니아 유권자들의 소를 기각했고, 한 발 더 나아가 대법관들이 뜻을 모아 향후 이에 관한 문제는 대법원이 논하지 않기로 못을 박아버립니다. 스칼리아 대법관은 각 주 의회가 선거구를 획정하는 권한은 헌법에 명시된 권리로, 선거구를 획정하는 권한에는 “새 선거구를 만들거나 기존 선거구를 변경할 수 있는 권한”도 포함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반면 선거구 획정과 관련해 헌법에 사법부의 역할은 따로 나와 있지 않습니다.

안토니 케네디 대법관도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다른 대법관 네 명과 마찬가지로 펜실베니아 유권자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케네디 대법관은 “특정 정당에 지나치게 유리하다는 이유로 선거구 재획정안을 파기할 수 있는지에 관한 마땅한 기준이 지금은 없지만, 그러한 기준이 곧 마련되면 좋을 것”이라는 추가 의견을 덧붙였습니다.

여전히 미국 대법관 아홉 명 가운데 중도 성향으로 거의 모든 사안에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케네디 대법관이 언급한 마땅한 기준이라는 것을 세워보고자 수많은 정치학자와 수학자가 달려들었습니다. 이들은 제리맨더링을 기획하는, 즉 지도를 펴놓고 선거구를 새로 획정하는 이들이 쓰는 도구를 법원이 그대로 가져와 새로운 선거구가 양쪽 정당에 얼마나 유리하게, 혹은 불리한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확인해보고 문제가 있으면 금지하면 된다고 주장합니다. 지난해 11월, 선거구를 새로 짜는 이들이 쓰는 분석 기법을 그대로 적용해 본 위스콘신주 법원 재판부는 앞서 언급한 두 차례 소송 가운데 두 번째 소송에서 2011년 새로 획정한 선거구는 잘못됐으므로 무효라고 판결했습니다. 공화당은 여기에 항소했고, 다음 달 3일 대법원 재판이 열릴 예정입니다.

이번 소송(Gill v. Whitford)에서 대법원이 내릴 판결은 앞으로 수십 년간 미국 정치 지형을 좌우하게 될 것입니다. 2015년에 주 상원의원직을 내려놓은 데일 슐츠는 그 당시 위스콘신주의 새로운 선거구 획정안을 반대했었어야 하는 건 아닌지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에게 정부나 정치에 관해 말하면 항상 정치는 다 썩어빠졌다고 하잖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선거구를 다시 짜는 문제가 아마도 문제의 핵심이 아닌가 싶어요. 유권자를 어느 선거구에 배속시키느냐에 따라 그 유권자의 한 표가 갖는 가치가 달라지는 일이니까요. 이건 정말 바꿔야 하는 문제예요.”

2010년 이후 연방 하원 선거에서는 갈수록 경쟁이 치열한 선거구가 줄어들었습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민주당 지지 성향 유권자들이 점점 진보적인 도시들로 모여들면서 지역적으로 도시는 민주당, 시골은 공화당 성향이 뚜렷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권자들의 성향을 더 자세히 분석할 수 있게 되면서 선거구가 더 정교하게 다시 획정된 것도 큰 몫을 했습니다. 유권자들의 지지 정당은 한번 결정되면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여러 주 법원에 선거구 재획정에 관련한 자문위원을 맡기도 했던 스탠포드 법학대학원의 나다니엘 퍼실리 교수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꼭 필요한 정보는 단 두 가지입니다. 누가 어느 정당을 찍을 것인지, 그 사람들이 각각 어디에 사는지 이 두 가지만 알면 됩니다.”

제리맨더링을 자기 당에 유리한 쪽으로 활용하려는 건 민주당과 공화당이 다르지 않습니다. 브레멘 센터에서 내놓은 2012년 분석을 보면 의회 선거마다 제리맨더링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현재 적용되고 있는 선거구는 2011년에 확정됐는데, 공화당이 원하는 대로 선거구를 재편한 곳은 미국 전체에서 17개 주로 의석수로 따지면 하원 전체 의석의 40%입니다. 이 17개 주에서 공화당 후보는 전체의 53%를 득표하고 의석의 72%를 차지했습니다. 반대로 민주당이 원하는 대로 선거구를 재편한 곳은 미국 전체에서 6개 주로 의석수로 따지면 하원 전체 의석의 10%입니다. 이곳에서 민주당 후보들은 전체의 56%를 득표해 의석의 71%를 차지했습니다. 조금씩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각기 자신에게 유리하게 선거구를 재편한 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보입니다. 나머지 27개 주는 민주, 공화 양당 가운데 어느 곳도 선거구를 다시 정하는 데 필요한 압도적인 권한을 갖지 못한 곳입니다. 주의회 가운데 상원과 하원의 다수당이 다르거나 아니면 법원, 혹은 주의회에서 합의 하에 임명한 선거구 획정위원회가 직접 선거구를 재편하기도 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배정된 하원 의석이 하나뿐이라서 따로 선거구를 획정하고 자시고 할 일이 없는 곳도 포함됩니다.

미국 대법원은 선거구 획정에 관한 문제에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지만, 앞서 여러 차례 선거구를 획정하는 일은 일차적으로 주의회 소관임을 거듭 확인했습니다. 1964년 대법원은 미국 전역에 걸쳐 선출된 정치인이 뽑힌 선거구의 크기가 심하게 들쭉날쭉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제정된 소위 “1인 1표 원칙”을 천명한 규정이 합헌이라고 판결했습니다. 당시 선거구 규모는 매우 들쭉날쭉했는데, 예를 들어 버몬트 주의회 의원 한 명을 뽑는 선거구 가운데는 유권자가 36명에 불과한 곳도 있는 데 반해 캘리포니아주 상원 선거구의 유권자 규모는 작은 곳은 1만4천 명에서 큰 곳은 600만 명까지 천차만별이었습니다. 1953~1969년 대법원장을 지내며 학교를 배정하는 데 있어서 인종차별 정책을 폐지하도록 하는 등 여러 가지 중요한 사안을 다뤘던 얼 워렌 전 대법원장은 1964년 1인 1표 원칙에 관한 대법원의 판결을 가리켜 “내 재임 기간 가장 중요한 판결”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수십 년간 지방 법원들은 주의회와 주 정부가 선거구별 유권자 수가 들쭉날쭉하지 않도록 구획을 정하는지 꾸준히 감시해 왔습니다. 법원은 인종에 따라 선거구를 나누지 않는지 여부도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감시했습니다. 1960년대 들어 대법원은 의회가 새로 참정권을 갖게 된 흑인 유권자들의 영향력을 일부러 줄이기 위해 선거구를 획정해선 안 된다고 판시했습니다. 이어 1980년대 미국 하원은 투표권법(Voting Rights Act)을 개정해 현행 선거구에 차별적 요소가 포함됐을 경우 주 정부가 이를 재편해야 한다고 법에 명시했습니다.

다음 달 대법원 재판에서 원고인 위스콘신주 민주당 측을 대변해 소송을 제기한 선거법 운동본부(Campaign Legal Center)는 지지 정당에 따라 선거구를 획정하는 제리맨더링은 인종에 따라 선거구를 손댔던 제리맨더링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대우를 받아야 할 유권자의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계획입니다. 이들은 또 수정헌법 1조를 거론하며 케네디 재판관의 판결을 그대로 인용해 주장을 펼 예정입니다. 케네디 재판관은 앞서 비스 대 주베리러 판결에서 제리맨더링은 “정치적 견해에 따라 특정 유권자들이나 특정 정당이 불리한 처우를 받게 되는 것”으로 미국 국민의 표현과 결사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습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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