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자를 ‘지워버리는’ 체첸 공화국
이달 초, 러시아 체첸 공화국 지역에서 상당수의 동성애자 남성이 난데없이 당국에 붙잡혀 끌려가 보름 가까이 구타와 고문을 당했습니다. 자신을 막심(Maksim)이라고 부르는 한 남자의 어느 날 저녁도 그저 잠깐 친구를 만나려던 길이 끔찍한 2주일 동안의 고문으로 돌변했습니다.
막심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동성애자인 오랜 친구 한 명을 만나러 약속 장소인 아파트로 갔습니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던 건 친구가 아니라 정부 기관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다짜고짜 막심을 때리더니 막심을 의자에 묶고 손에 전기선을 둘러 집게로 고정하고는 심문을 시작했습니다.
“제게 계속 소리를 쳐댔어요. 또 아는 놈 누군지 다 대라면서요. 그러면서 계속 전기를 흘려보내 고문하는데, 정말 너무너무 고통스러웠어요.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정신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죠. 그리고 끝내 제 친구 누구의 이름도 입 밖에 내지 않았어요.”
원래 동성애자들이 살기 좋은 곳으로 꼽기 어려운 체첸 공화국의 오랜 인권 유린의 역사에 비춰 보더라도 지난달부터 친러시아 성향의 체첸 대통령 람잔 카디로프가 시작한 이른바 “동성애자 사냥과 축출”은 새로운 형태의 인권 탄압입니다.
이 문제를 가장 먼저 보도한 건 정부에 비판적인 성향의 언론 노바야 가제타였습니다. 적어도 100명이 넘는 게이 남성들이 아무런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체포돼 끌려가 구타와 고문을 당했고, 그 과정에서 세 명이 숨졌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인권 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가 이어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고 확인했습니다.
즉각 서구 정부들과 UN, 그리고 각종 인권 단체들의 거센 비난이 이어졌습니다. 러시아 인권 단체와 인권 운동가들은 체첸 공화국에 사는 동성애자들을 빼내 안전한 곳에 머물도록 하고 있습니다. 체첸의 동성애자들은 낯선 이들뿐 아니라 가족, 친지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하므로 이들을 돕는 활동과 이들이 머무는 곳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고, 이들은 항상 가명을 사용합니다.
이 기사는 20대 게이 남성인 막심과 또 다른 게이 남성 두 명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작성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체첸 보안 요원에 붙잡혀 구금됐다 풀려난 적이 있습니다.
체첸 공화국을 비롯해 카프카스 산맥 주변의 남부 러시아 무슬림 공동체 어디를 가나 동성애를 금기시하는 곳이 대부분입니다. 국제위기단체(International Crisis Group)의 러시아 분야를 맡고 있으며 특히 체첸 공화국 문제를 담당하는 에카테리나 소키랸스카야는 말합니다.
“여기는 동성애 혐오가 팽배해 있어요. 동성애는 그 자체로 비난의 대상이고 사람들은 이슬람교 교리가 동성애를 무거운 죄로 여긴다고 믿습니다.”
막심은 그래도 체첸 당국이 갑자기 동성애자를 잡아가기 전에는 자신의 동성애 여부를 최대한 숨기기만 하면 어렵지만 사회생활을 할 수는 있었다고 말합니다. 게이들은 주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상의 폐쇄형 채팅방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만날 장소를 정했는데, 신분을 숨기면서 성적 지향을 은밀히 드러내는 암호 같은 채팅방 이름은 ‘마을’이나 ‘저 산이 품고 있는 비밀’ 같은 식이었습니다. 실제 오프라인에서 만날 때는 카페나 하룻밤 빌린 아파트에서 만났습니다.
“게이 두 명이 만나면 이들은 절대 자신의 본명을 서로 말하는 법이 없죠. 저랑 가장 친한 친구들조차도 제 성적 지향에 대해 단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어요. 저는 겉으로는 남들과 같은 이성애자로 살았어요.”
사람들은 체첸 당국이 동성애자를 전격적으로 잡아들이기 시작한 건 모스크바에 본부를 둔 인권 단체 게이러시아가 카프카스 지역에서 동성애자 인권 개선 행진을 열고 싶다고 신청한 뒤라고 말합니다. 게이러시아의 집회 신청에 곧바로 동성애를 반대하는 종교 단체들의 맞불 집회 신청이 줄을 이었습니다. 체첸 공화국에서는 특히 상황이 아주 험악해졌는데, 체첸 경찰과 보안 요원들은 동성애자들을 색출해낼 때마다 “예방 차원의 대대적인 동성애 청소” 중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휴먼라이츠워치의 보고서와 나중에 이 지역을 탈출한 동성애자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구금 기간은 하루부터 몇 주일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이었습니다. 휴먼라이츠워치의 타냐 록시나는 “어떤 이들은 마구잡이 구타로 만신창이가 돼 간신히 숨만 붙은 채로 가족 품에 돌아왔다.”고 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숨진 것으로 알려진 동성애자는 총 세 명인데, 이 중 한 명은 고문을 받다가 숨졌고, 나머지 두 명은 구금됐다가 풀려나 가족의 품에 돌아갔으나 ‘명예 살인’이라는 이름으로 친척의 손에 살해됐습니다.
“휴먼라이츠워치에 람잔 카디로프 정부 보안 기관원들이 동성애자를 공격했다는 신고나 보고서가 그야말로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정말 충격이에요. 체첸 정부는 두려움을 조장하며 동성애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계기로 삼고 있어요.”
체첸 당국은 야만적인 인권 탄압에 대한 전 세계적인 비난을 통째로 부정하며 오리발을 내밀었습니다. 카디로프 대통령의 대변인 알비 카리모프는 전화 인터뷰에서 체첸 정부가 동성애자를 탄압했다는 기사는 순 거짓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체첸 공화국에는 동성애자가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에 동성애자를 탄압할 일도 없다는 겁니다. 카리모프 대변인은 인터뷰에서 역으로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취재한) 그로즈니에서 성적 지향이 잘못된 것으로 보이거나 그런 사람처럼 행동하는 사람을 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습니까?”
그는 동성애자로 의심되는 사람을 체포해도 좋다는 공식적인 정책이 있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정책이라는 게 어떤 문제가 먼저 생겨야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이렇게 공식 입장을 말씀드리죠. 그런 문제가 없기 때문에 그런 정책도 당연히 없습니다. 그런 문제가 있었다면 그런 정책이 있었겠지만요.”
카디로프 대통령은 지난 19일 푸틴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체첸 당국 보안 요원이 동성애자 남성을 색출해 탄압한다는 뉴스를 한마디로 ‘중상모략’으로 규정했습니다. 이튿날 러시아 정부의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변인은 기자들에게 러시아 정부는 체첸 경찰이 게이 남성을 체포했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막심을 비롯한 체첸 지역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권력의 대처 방식입니다. 러시아와 친푸틴 성향의 카디로프 정부가 지난 10여 년간 체첸 공화국 내 이슬람 분리주의 세력을 억압할 때 쓰던 방식을 그대로 답습했기 때문입니다.
체첸 경찰이나 기관원은 ‘마을’ 같은 이름의 채팅방에서 대화 상대 혹은 만나보려는 상대방을 찾는 이들을 예의주시하거나 끄나풀을 심어 채팅방에서 다른 게이 남성이나 게이인 친구와 만날 약속을 잡게 한 뒤 약속 장소에서 상대방을 체포합니다. 인터뷰에 응한 이들이 체포된 경위도 대개 이런 식입니다.
당장 체첸 동성애자들 사이에서 두려움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일리아라는 가명을 쓰던 20살 학생 한 명은 체첸 밖에 있는 안전한 장소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친구 누가 잡혔으니, 이제 내 차례구나 하는 두려움이죠.”
일리아는 집을 버리고 달아났습니다. 나중에 일리아는 자신이 집을 비운 지 며칠 뒤 경찰이 집에 들이닥쳤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고 합니다. 노흐초라는 가명을 쓰는 또 다른 젊은이도 당국에 잠깐 붙잡혔다 풀려났습니다. 친구가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존재를 실토하는 바람에 당국의 레이더망에 포착됐지만, 노흐초는 친구를 원망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무슨 영웅도 아니고, 우리는 그저 동성애자인 평범한 사람일 뿐이에요. 그 사람들이 우리를 굶기고 전기 충격까지 가하는데, 버티지 않고 배길 재간이 있을까요?”
꽤 오랫동안 다른 동성애자 친구와 연락을 주고받은 막심에게도 일리아, 노흐초와 비슷한 일이 일어났던 것 같습니다. 막심은 자신이 겪은 일을 말했습니다.
“하루는 그 친구가 술 한잔 하자고 하더군요. 꽤 오래 알고 지낸 친구였기에 그가 제게 이런 식으로 덫을 놓을 거라고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죠.”
막심은 친구를 만나기로 한 아파트에 들어서자마자 경찰들에게 두들겨 맞았습니다. 방에는 이미 똑같은 식으로 친구를 만나러 왔다가 다짜고짜 체포된 이들이 다섯 명이나 더 있었습니다. 휴먼라이츠워치가 조사 결과 정리한 보고서에 나온 수법도, 이 기사를 위해 따로 인터뷰한 다른 게이 피해자들이 당한 수법도 똑같습니다.
막심을 포함해 총 여섯 명의 동성애자는 한 폐건물 안에 빈방으로 옮겨져 차례차례 전기 고문을 당했습니다.
막심은 열하루가 지난 뒤에야 풀려났습니다. 경찰은 막심의 신병을 남자 친척에게 넘기며 막심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렸고, 집안의 명예를 생각한다면 당연히 막심을 가족의 손으로 죽여야 마땅하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일리아의 경우도 비슷했습니다. 경찰은 명예살인을 종용했습니다.
막심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막심의 아버지는 막심을 두드려 패려고 달려들었습니다. 하지만 막심이 이미 경찰에 고문당해 생긴 멍과 상처를 보여주자 차마 아들을 때리지는 못하고 말했습니다.
“그냥 너를 죽이는 수밖에 없겠다.”
막심은 정말 목숨이 위험하다고 느끼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본부를 둔 동성애자 인권 단체인 러시아 성소수자 네트워크에 도움을 청했습니다. 이 단체에는 생명의 위협을 받는 동성애자가 공동체를 탈출할 때 필요한 도움을 주는 자원봉사자들이 항시 대기하고 있습니다.
겁에 질린 동성애자들이 안심하고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활동가들은 마치 적들의 배후에서 교란 작전을 펴는 요원처럼 매사에 신중하게 일을 처리해 왔습니다. 요원 같다고 해서 그들이 정말 러시아 실정법을 어기는 행동을 하는 건 물론 아닙니다.
체첸 공화국에서 핍박받는 게이들을 탈출시키는 데 일조한 자원봉사 단체 연대에 속한 모스크바 커뮤니티 센터의 올가 바라노바 센터장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체첸을 떠나 동성애자를 향한 당국의 탄압과 일반인들의 혐오 테러 공격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은신처에 이른 젊은이들은 자원봉사자들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기고도 사실 이들을 다 믿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단지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살길을 찾아 일종의 도박을 했다는 겁니다. 바라노바 센터장은 말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정말 아무도 믿지 않아요. 여기까지 온 사람들도 우리 같은 단체가 있다는 걸 끝까지 믿지 않았다고, 결국 마지막 몇 안 남은 자기까지 색출해 내 죽이려는 당국의 마지막 덫에 걸렸다는 생각에 자포자기했다는 사람도 있었어요.”
인권 단체들은 체첸 공화국의 동성애자들이 탈출할 수 있는 비행기 표를 끊어주고 안전한 곳에 이들을 숨긴 뒤 믿을 수 있는 의사를 보내 고문을 받으며 다친 상처를 치료했습니다. 러시아 성소수자 네트워크의 이고르 코쳇코프 사무총장은 전화 인터뷰에서 상황이 심각하다고 말했습니다.
“체첸 공화국이나 카프카스 산맥 북쪽 지역의 게이들은 특히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습니다. 연인이나 남편이 구금된 사람들은 당연히 자기도 체포될 거라는 사실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곤 해요. 고문 앞에 사람은 너무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름을 대지 않기 어려우니까요.” (뉴욕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