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국은 지금 단어 전쟁 중
미국 사회의 분열 양상이 심상치 않습니다. 정치적인 견해는 물론이고, 최근 들어서는 팩트를 놓고도 서로 동의하지 못하는 모습이죠. 이제 단어의 뜻마저도 논쟁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수년간 메리엄-웹스터의 사전 편집진은 인터넷 인기 검색어를 선정해 우리 웹사이트에 올려왔습니다. 올 초, 백악관 대변인 숀 스파이서가 기자들에게 “’배신(betrayal)’의 정의를 내리지 않겠다”고 말하자 많은 이들이 “배신”의 뜻을 검색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언제나처럼 이 단어를 우리 웹사이트에 올렸습니다.
하지만 트럼프와 관련된 단어를 올리기 시작하면서부터 분노 어린 반응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 “스벵갈리(Svengali)”, “도청(wiretapping)” 모두 실제로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되니 올렸을 뿐인데도 우리는 사전 편찬자의 의무를 저버리고 특정 정치인을 깎아내리며 트롤링을 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전에 적힌 단어의 정의를 말 그대로 ‘복붙’해서 트위터에 올리기만 해도 정치적인 행위라는 손가락질을 당하게 된 것이죠.
사실 이런 뜨거운 반응이 놀라운 일이라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인류가 단어와 그 의미를 두고 논쟁을 벌여온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사전 편찬은 언제나 정치적인 작업이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메리엄-웹스터 사전의 창시자인 노아 웹스터의 공이 큽니다. 많은 이들이 사전 편찬인으로만 기억하지만, 사실 노아 웹스터는 건국의 아버지 가운데 한 사람이었죠. 그리고 그가 했던 모든 일에는 하나의 중요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미합중국을 강하고 통합된 나라로 만드는 것이었죠. 그는 관습과 언어, 정부 구성 등 모든 면에서 미국이 다른 나라와 차별화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가 펴낸 스펠링 책과 사전 역시 이 같은 미국 예외주의의 산물이었습니다. 그에게 사전은 그 뒤에 올 수 세대의 미국인에게 국가 정체성을 길러주기 위한 도구였죠. 1828년에 나온 웹스터의 대표작 미국 영어사전(American Dictionary of the English Language)에는 학자는 물론 의원들이 쓴 추천사가 따랐습니다. 물론 정치인들에게 이러한 역할을 맡기는 것에 모든 이들이 동의한 것은 아니었지만요. 웹스터의 수제자인 조세프 워세스터(Joseph Worcester)도 그의 비전에 의문을 표한 사람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웹스터는 워세스터가 “국가를 위해 값을 매길 수 없는 봉사를 한 사람”을 깎아내린다며 분노했죠.
이렇게 사전 편찬이란 애국의 실천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수십 년간 사전 편찬은 점차 성스러운 과업의 영역에서 학문의 영역으로 넘어오게 되었습니다. 원맨쇼가 아니라 여러 학자가 팀을 이루어 하는 작업이 되기 시작했고, 미국 사회의 분열도 반영하게 되었습니다. 1864년 웹스터 사전의 개정을 담당한 수석 편집자 노아 포터(Noah Porter)는 편집진에게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공식 발표를 통해 나왔던 말을 제외하고는 노예제 반대 측의 발언을 사전에 인용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습니다. 신학자이기도 했던 포터는 “혁명가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고, 개정판에서 논란이 될 만한 요소들을 삭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정판은 비난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남부와 노예제 폐지 반대론자들은 개정판의 “의회(congress)” 항목을 예로 들며, 사전이 정치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개정판은 “의회”를 “국가의 민중을 대표하는 상원과 하원의 모임”으로 정의하고 “법을 제정하고 국익의 문제를 다루는 것”을 의회의 역할이라고 적었는데, 이것이 각 주(state)의 이익보다 국가(nation)를 앞세운 북부의 프로파간다라고 비난한 것입니다.
남북전쟁이 끝나고 100년이 지난 후에도 이런 부류의 논쟁은 잦아들지 않았습니다. 1961년에 웹스터에서 펴낸 제3 신(新) 국제사전(Third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역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역사학자 자크 바준(Jacques Barzun)은 이 사전을 두고 “한 정당이 엮은 가장 긴 정치 팜플렛”이라고 혹평했고, 웹스터-메리엄 좌파 히피들에게 맞서기 위한 사전(American Heritage Dictionary)이 출간되기도 했죠.
역사가 이렇다 보니 지금 우리가 받고 있는 “비애국적이고 남자답지 못하다”는 비난은 낯설지 않습니다. 단어의 뜻이 그 어느 때보다도 논란거리가 되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사전은 언어 사용자들을 따라가야 하죠. 언론사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트럼프 정부를 어떻게 보도해야 할지를 두고 긴 토론을 벌였습니다. “거짓말”, “백인 민족주의자”와 같은 단어의 사용도 논쟁의 주제가 되었죠. 법원이 난민 관련 첫 대통령령의 효력을 정지한 근거 가운데 하나는 대통령 본인이 이 조치를 계속해서 “무슬림 금지”라고 불렀기 때문입니다.
사전 편찬이란 본질적으로 속도가 느린 작업입니다. 사전 편찬자들은 단어의 사용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야 하고, 다양한 출처와 언어 사용자들의 단어 사용을 검토해야 합니다. 하나의 시대나 출처를 편애해서는 안 되며, 넓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단어의 의미를 파악해야 합니다. 언어는 사전 편찬자들보다 훨씬 더 빨리 움직이지만, 사전 편찬자들의 세부 사항에 대한 근시안적 집착이야말로 사전을 조지 오웰 소설 속의 정부 기관과 차별화하는 원동력입니다.
영어라는 언어는 직접민주주의입니다. 영어를 사용하는 개개인에 의해 유지되며, 사전은 이를 지속적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우리는 사전을 거울삼아 우리가 과거에 어떤 존재였고, 지금 어떤 존재인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스벵갈리들이 뭐라 해도 이것만은 진실입니다. (뉴욕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