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의 위협 때문에 진보주의자들은 생각을 바꾸고 있습니다.
2017년 3월 30일  |  By:   |  경제, 정치, 칼럼  |  5 Comments

역자 주: 본 기사는 진보주의자들이 2016년 일련의 패배를 기점으로 원래 보수주의자들이 지지하던 정치적 주장을 갑자기 옹호하기 시작한 점을 지적하면서, 진보주의자들이 일관성을 잃고 결국 정치적 소신 대신 집단에 소속되는 선택을 했다고 비판합니다. 저는 이 글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오랜만에 정치적 집단의 의미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기회를 주는 기사라고 판단해서 오늘은 이 기사를 선택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정부가 투자은행에 직원들을 영국 밖으로 내보내라고 위협하면 아마 진보주의자들은 그들 모두를 차로 공항까지 안전하게 모셔다드릴 것입니다. (역자 주: 그만큼 진보주의자들이 투자은행을 싫어했었다는 의미) 요즘 진보주의자들은 브렉시트(Brexit)에 반대하면서 그런 위협을 브렉시트를 하면 안 되는 이유로 들곤 합니다. 진보주의자들에게는 거의 악의 상징처럼 인식되는 골드만삭스조차도 직원을 해외로 내보내는 문제에 대해서 만큼은 노동당을 믿어도 됩니다.

요즘 진보주의자들은 단일 유럽시장, 자유무역, 나토(NATO), 패권 국가로서의 미국, (트럼프가 그들의 업무를 의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각국의 정보국 등을 매우 소중히 여깁니다. 하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위에 언급한 사항들은 중도 좌파들이 일반적으로 별 노력 없이도 얻을 수 있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거나 아니면 중도 좌파들에게 의심의 대상이곤 했습니다. 이들은 토니 블레어가 덜 호전적이고, 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펼쳤으면 좋았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지만 또 제러미 코빈(Jeremy Corbyn)의 반전주의적 사회주의는 반대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현재 그들의 정치적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그들의 정치적 주장을 바꿨는지에 대해서는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2016년 진보주의 진영은 중요한 선거에서 잇따라 참패했고, 진보주의 질서에 엄습해오는 우파의 위협이 근거 없는 위협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으며 트럼프에 반대하는 모든 주장과 반 유럽연합 적인 주장에 반대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작년 한 해는 진보주의자들에게는 지적 감사 기간(intellectual audit)과 같았습니다. 진보주의자들은 무엇이 중요한지 다시 생각했습니다. 투자은행을 싫어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투자은행이 세계주의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고, 에드워드 스노든을 지지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국가 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세계화에 비관적이던 사람들이 이제는 스티브 배넌(Stephen Bannon)의 국수주의가 자신의 주장과 궤를 같이 한다는 점을 불편하게 생각합니다. 미국이 세계경찰 행세를 하는 것에 불만이 많던 사람들이 이제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가 저물어 가는 것을 슬퍼합니다.

특히 진보주의자들은 미국이 세계 평화를 위해 패권을 쥐어야만 한다는 것을 진작 인정했었어야 합니다. 한동안 진보주의자들은 미국이 다른 나라에 지나치게 간섭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백악관 국수주의자들이 나토로 인해 미국이 부당하게 부담한 비용을 독일에 청구하겠다고 나서자 미국이 이제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합니다.

이 현상은 적어도 많은 사람이 신중히 정치적 의견을 확립하고 그에 맞는 정치적 집단에 소속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정치적 집단에 소속되고 그다음에 그들의 의견을 그 집단의 의견과 맞춰 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정치적이기 전에 사회적입니다. 우리는 팀을 먼저 고릅니다.

작년에 좌파 진영은 포퓰리스트와 맞붙었습니다. 하지만 포퓰리스트들의 의견은 그들의 의견과 엄청 떨어져 있지는 않았습니다. 시장주의와 글로벌리즘에 대한 회의감, 세계 질서에서 미국의 역할 등. 부족과 정치적 견해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 그들은 부족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정치적 의견을 만들어 냈습니다. 현재 그들은 2016년까지 그들이 반대하던 주장을 열심히 옹호합니다. 아마도 어떤 사람이 올바른 자리를 찾아갔다면, 어떻게 그 자리까지 왔는지 물어보는 것은 실례일 것 같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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