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도움이 되는 조언도 듣기 싫은 잔소리로 들리는 이유
사람들을 관찰하다 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경쟁합니다. 더 빨리 달리고, 더 창의적으로 살고, 상을 더 많이 받고, 병을 더 많이 치료하며, 돈을 더 많이 벌고자 노력합니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무언가를 이루려 노력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다면, 미리 각오하시는 게 좋습니다. 따뜻한 격려의 말과 지혜를 전하든, 건설적인 비판이나 상당히 포괄적인 조언을 건네든, 듣는 사람은 그 말을 귀담아듣지 않을 겁니다.
일단 우리의 자존감이 문제입니다. 즉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정한 기대치에 부응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데, 누군가에게 비판받거나 조금이라도 쓴소리를 듣게 될 것 같은 상황 자체를 자아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엄청난 위협으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심리학 이론과 연구를 통해 밝혀졌듯, 사람들은 자신을 향한 비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종의 자기기만 전략을 개발해 왔습니다.
어떤 조언을 들었을 때 일단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고 기분이 썩 좋지 않은 건 당연합니다. 듣는 순간부터 조언을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본능적인 반응은 일단 우리의 마음이 다치는 걸 막아줍니다. 하지만 동시에 역설적으로 이런 반응 탓에 내 안의 불안정성, 성격상의 결함, 삐딱한 태도 등이 부각되기도 합니다.
모르는 게 약이다
남들의 충고를 흘려 듣거나 무시하려면 선택과 집중, 그리고 자기 자신을 속이는 데 능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조심스레 자기를 향한 칭찬만 골라 듣거나 자기가 잘하는 일에 관한 평가만 들으려 하고, 나도 모르게 항상 나를 좋게 봐주는 사람들에게서 받는 평가만 챙기곤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칭찬과 따끔한 비판을 골라내기도 쉽지 않다 보니, 그저 모든 충고나 평가 자체에 귀를 닫아버리는 것이 가장 간단한 방법이긴 합니다. “아예 귀를 닫아버리는” 전략은 교육을 받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가끔 학생들은 과제물에 대한 선생님의 평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치기도 합니다. 또한, 체중을 조절하라거나 담배를 끊으라거나, 건강에 관해 의사가 하는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병원에 가지 않으려고 갖은 방법을 동원해 최대한 버티고 또 버티는 사람들도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많습니다.
이처럼 바람직하지 못한 “고의적인 무지”는 오랫동안 심리학의 연구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한 실험에서 학생들은 “TAA 결핍증세”라는 심각한 질병에 관한 교육용 영상을 시청했습니다. 사실 TAA 결핍증세란 있지도 않은 허구의 질환으로 이 영상도 실험용으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이 사실을 몰랐습니다. 영상을 시청한 뒤 연구진은 학생들에게 TAA 결핍 여부를 검사받고 싶으면 구강 내부를 채취해 검사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절반의 학생들에게는 TAA 결핍증 진단을 받으면 2주 동안 약을 먹어 치료하게 될 거라고 알려주고, 나머지 절반은 TAA 결핍은 평생 약을 복용하는 수밖에 치료법이 없다고 알려주었습니다. 2주간 약을 먹으면 된다고 들은 학생들 가운데는 52%가 구강 채취에 동의한 반면,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고 들은 학생 중에는 구강 채취에 동의한 학생이 21%에 불과했습니다.
건강에 관한 비슷한 실험을 할 때마다 항상 비슷한 결과가 나타납니다. 즉, 사람들은 무언가 어렵거나 성가신 일을 하라는 조언에 특히 거부감을 나타냅니다.
내 잘못이 아니야. 당신 때문이야.
모르는 게 약이라고 해도, 항상 원하는 대로 듣기 싫은 잔소리는 다 걸러내고 듣고 싶은 말만 들으며 살 수는 없는 법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자존심이 상하고 마음이 다치는 걸 막기 위해 다른 방법을 씁니다. 이러한 자기기만 전략 가운데 가장 간단한 방법 하나는 바로 ‘책임 전가’입니다. 잘못은 내게 있는데, 다른 엉뚱한 곳을 탓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보죠. 우리는 다른 사람보다 좋지 않은 성적표를 받았을 때 대개 나보다 좋은 성적을 올린 그 사람의 다른 흠결을 먼저 들춰냅니다. 내가 어디가 부족했는지 생각하는 건 나중의 일입니다. 이런 식입니다. “걔가 나보다 성적은 잘 나왔지만, 내가 걔보다 성격이 더 좋고 그래서 친구도 많지.” 누구나 자신의 장점이나 남의 흠결을 부풀려 말하곤 합니다. 다만 연구 결과를 보면 우리는 경쟁자에 뒤처졌을 때 상대방을 훨씬 더 격렬하게 깎아내립니다. 우리의 성품이 못돼서 그런 게 아닙니다. 사실 이는 우리가 무언가에 실패했을 때 무너지거나 주저앉지 않고 자존감을 지키는 데 대단히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가혹한 평가나 비판을 받았을 때 탓하기 가장 좋은 대상은 바로 그 평가나 비판을 한 사람입니다. 하버드 대학교의 더글라스스톤과 셰일라 힌은 “조언 감사드립니다(Thanks for the Feedback)”라는 책에 이렇게 썼습니다.
누군가에게 조언을 할 때는 듣는 사람이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반대로 누군가로부터 조언을 받을 때는 말하는 사람이 말을 도무지 알아듣기 어렵게 하는 것만 같다.
저희도 심리학자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고백해야 할 것 같습니다. 최근에 저희 연구 논문을 검토한 학술지 심사위원이 논문의 어느 부분이 부족해 아쉽다며 “이 부분을 조금 더 신경 썼다면 나았을 것 같다”고 썼습니다. 그런데 영어 원문은 “better with more effert”라고 썼는데, ‘effort’라고 썼어야 할 단어를 잘못 썼습니다. 그 부분을 읽는 순간 심사위원의 명백한 오·탈자만 눈에 들어오며 논문을 심사하기 전에 오·탈자부터 바로잡으라고 망신을 줄까 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논문을 다 읽어보지도 않고 쓰다 만 평가를 우리에게 보낸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죠. 맞춤법 하나 못 지키는 사람의 평가에 우리가 귀를 기울여야 하나 의구심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내 계속 이렇게만 생각하다가는 우리 논문을 계속 더 나은 방향으로 다듬어가는 일은 요원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도 내가 부족한 부분에 스스로 관대하고 남을 탓하는 자세는 분명 쓰라린 마음의 상처를 보듬는 데는 효과가 뛰어났습니다.
조언을 건넨 사람의 흠결을 부각해 내 잘못을 무마하는 것으로 부족하다면, 그다음 단계로 내가 저지른 어떤 잘못이 바로 지금 내게 저 조언을 건네는, 잔소리하는 사람 때문이라고 더욱 몰아세우는 방법이 있습니다. 실제로 가끔 우리가 조언을 주는 사람을 역으로 평가하고 때로 비난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 안에 잠재한 편견의 가장 볼썽사나운 측면이 고스란히 드러나기도 합니다. 캐나다의 워털루대학 연구진은 학생들에게 자신이 들었던 여러 수업에서 받은 학점과 함께 그 학점을 준 교수가 어땠는지 평가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학생들의 평가를 종합해봤더니, 좋은 학점을 받지 못한 학생일수록 해당 교수에 대한 평가도 박했습니다. 나쁜 학점이라는 결과의 책임을 나누어지려 한 것이죠. 결정적으로 학점이 낮은 학생들은 특히 여자 교수에게 비판적인 평가를 했습니다. 이는 좋은 학점을 받은 학생들에게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은 경향입니다. 자기가 공부를 못했거나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서 학점이 낮았던 게 아니라 교수가 잘 못 가르쳐서 학점이 낮았다고 강변하고 싶은 학생들에게 교수의 성별에 따라 차별하는 잣대를 들이대는 태도는 대단히 효과적인 방책이었던 겁니다.
튼튼한 멘탈
심지어 내게 큰 도움이 되는 유용한 평가나 조언마저 본능적인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조언을 방어적으로 내치는 반응은 순전히 본능적인 걸까요? 아니면 이를 피하거나 억제할 수 있는 방법은 혹시 없을까요?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우리는 쓸모 있는 조언을 받아들이고 우리의 문제점을 보완해 더 빨리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를 개발하고 단련하는 데 주변의 조언과 충고만큼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없는데, 문제는 우리가 여기에 귀를 기울이고 받아들여야만 그 효과가 나타난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제시하는 방법이 꼭 해보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점도 문제라면 문제입니다. 원하는 목표를 이루지 못하는 건 실망스러운 일이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비판을 들어가며 내 잘못을 인정하는 것도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일입니다. 그렇더라도 자존감을 다치게 하기가 너무나 두렵다면, 어쩌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왜 이렇게 긍정적으로 보려고 하는지 한 번 돌아보는 것도 이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연구 결과를 보면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관해 가장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점을 먼저 생각해보고, 과거에 그런 특징 덕분에 일이 잘됐던 기억을 떠올렸을 때 앞서 TAA 결핍증세 실험에서와 같은 의학적 진단 결과를 더 많이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이 연구 결과는 높은 자존감을 경험해 본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다른 사람의 조언을 열린 자세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리라는 전망을 뒷받침합니다.
그러므로 원치 않는 소식이나 잔소리에 더 열린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사전에 감정적 방패를 미리 착용해 ‘멘탈을 튼튼히’ 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감정적 방패는 나에 대한 평가가 좋든 나쁘든 나의 긍정적인 자아를 그대로 지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사실 우리가 모든 조언과 평가 자체를 애초에 원치 않는 것이나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것 자체가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유명한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스스로 마음먹기에 따라 아무리 원치 않는 일이라도 즐겁게 하겠노라고 마음먹고 자기 자신을 설득하면 실제로 그 일을 즐겁게 할 수 있습니다. 듣기 싫은 잔소리에도 같은 방법을 적용할 수 있을까요? 껄끄러운 조언, 상처가 되는 평가, 듣기 싫은 잔소리도 우리가 간곡히 원해서 듣게 되는 소중한 자양분이라고 우리 자신에게 주문을 외울 수는 없을까요?
미국 연구진은 이와 관련해 한 가지 실험을 했습니다.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다양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정확한 연도를 맞춰보라는 과제를 내줬습니다. 정답에 가까울수록 더 많은 상금을 받는 식이었습니다. 연구진은 정답을 공개하지 않은 채 실험 참가자들에게 같은 문제를 다시 냈습니다. 대신 이번에는 다른 참가자들은 이 문제에 어떻게 답했는지 원하면 확인할 수 있었는데, 어떤 건 남들의 답을 공짜로 볼 수 있었고, 어떤 문제는 상금 일부를 내야 남들이 쓴 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사람들은 공짜로 볼 수 있는 다른 참가자의 답을 더 많이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공짜로 쓴 답을 확인한 뒤 자신이 원래 냈던 답을 바꾸는 사람은 거의 없던 반면, 돈을 내고 확인한 남들의 답에 따라 자신의 답을 고쳐 쓰는 사람은 훨씬 많았습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무언가 자원을 투자하거나 품을 들여 얻은 조언은 어떻게든 반영하고 자신을 개선하는 데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정직한 평가와 조언을 받고자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설사 평가가 가혹해 마음이 다치더라도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우리의 긍정적인 자존감을 미리 열심히 고양한다면, 우리를 단련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줄 훌륭한 조언을 들을 준비가 어느 정도 될 겁니다. 또한, 매번 조언을 들을 때마다 내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남을 탓하는 우리의 본능적인 반응을 억제하고 다시 생각하는 훈련을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아무리 멘탈을 튼튼하게 단련하더라도 냉정한 평가에서 필요한 교훈을 얻어내고 나를 교정하는 일은 항상 어렵습니다. 과학적으로 어떻게 하면 이를 더 잘할 수 있을지 살펴보는 연구는 많겠지만, 결국 조언을 구하고 이를 받아들이느냐 마느냐는 우리의 선택에 달린 일이기도 합니다. (B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