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존 헨리이즘: 노력으로 불리한 조건을 극복한 사람들이 치러야 하는 대가
2017년 2월 1일  |  By:   |  건강, 세계, 정치, 칼럼  |  No Comment

1997년, 피츠버그의 지역 신문에 감기 관련 임상시험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광고가 실렸습니다. 이 광고를 보고 찾아온 지원자들은 코를 통해 감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주입받고 며칠간 호텔 방에 갇혀 코를 풀며 시간을 보낸 후 800달러를 받았습니다. 이 실험의 목적은 “왜 어떤 사람들은 더 쉽게 감기에 걸리는 것일까?”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었죠.

조지아 대학의 진 브로디 박사는 최근 당시 실험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성격을 분석하고 “충격적인” 결과를 얻었습니다. 더 부지런하고 성공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타입이 훨씬 더 병에 쉽게 걸린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죠. 힘겨운 상황을 견뎌내 버릇하면 면역 체계가 손상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결과였습니다. 브로디 박사의 연구팀은 계속해서 이 가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연구들을 진행했습니다. 2015년에는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백혈구가 동년배에 비해 조기 노화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심장혈관과 대사 건강 부문에서는 불편한 상관관계가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고, 성공에 대한 의지가 강한 흑인 청소년들이 당뇨병에 걸릴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밝혀진 것입니다. 반면 백인들의 경우, 성공에 대한 의지나 근면한 성격이 면역 체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적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브로디 박사는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고 학업, 직업, 재정 면에서 성공을 거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역경에 굴하지 않는 자질을 “탄력성(resilience)”이라 부르며, 이는 대체로 긍정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브로디 박사가 연구 대상으로 삼은 이들 역시 “인내심이 강하고 목표를 설정해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며, 실수를 돌아보고 멀리 내다보며, 집중력을 떨어뜨릴 수 있는 유혹에 잘 넘어가지 않는” 이들입니다. 자기계발서에 나올 것 같은 모범적인 인간상이죠.

미국의 빈부 계층 간 건강 격차는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그러니 계층의 사다리를 올라간 사람이 좀 더 건강한 삶을 살 것이라는 기대는 자연스러운 것이죠. 하지만 이는 복권에 당첨되어 하루아침에 사회경제적 입지가 상승한 매우 예외적인 경우에나 해당하는 얘깁니다. 수십 년에 걸친 연구 결과는 오히려 정반대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기회의 평등을 보장받지 못한 사람이 개인의 노력으로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고 성공하면 오히려 건강이 나빠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존 헨리이즘(John Henryism)”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80년대, 젊은 연구자였던 셔먼 제임스는 존 헨리 마틴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존 헨리 마틴은 1907년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소작농으로 태어났습니다. 평생 자신을 둘러싼 시스템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력을 다했고, 40세가 되자 농지 75에이커를 소유하게 되죠. 하지만 40대부터 고혈압과 관절염, 위궤양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제임스는 그를 “구조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동시에 패배한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일이 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오히려 더 열심히 노력한다”, “인생은 내가 노력하기 나름이다” 등의 말에 얼마나 동의하는지를 기준으로 “존 헨리 척도”를 고안해냅니다. 그리고 이 척도를 적용한 결과, 빈곤 노동자 계층의 흑인들 사이에서 높은 점수를 얻은 사람들의 건강 상태가 더 나쁘다는 사실이 드러났죠. 브로디 연구팀과 마찬가지로, 제임스 박사 역시 노력하는 성향과 건강 간의 상관관계가 백인 노동자 계층에서는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렇다면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구체적으로 건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일까요? 우선 DNA에 영향을 줍니다. 브로디 박사의 연구팀은 DNA 메틸화 패턴이 사회경제적 지위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냈죠. 또한, 어릴 때부터 노력하는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에게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과 아드레날린 분비가 높다는 사실도 밝혀냈습니다. 평생 몸의 세포들이 스트레스 물질에 절여져 있다 보니 당뇨병과 같은 자가면역 질환에 취약해진다는 게 브로디 박사의 설명입니다. 하지만 아드레날린이나 DNA 메틸화가 피부색의 영향을 받지 않는데, 왜 백인들 사이에서는 이런 상관관계가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요?

이미 우리 사회에는 내가 사는 곳의 주소를 입력하면 예상 수명을 알려주는 웹사이트가 존재합니다. 의사로서 돈을 걸어야 한다면, 저는 한 사람의 수명을 가장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변수가 바로 주소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이에게 건강과 정의를”이라는 모토를 걸고 있는 이 웹사이트에 따르면 우리의 건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유전자가 아니라 우편번호입니다.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 안에서는 나란히 붙어있는 두 지역 간 평균 수명 차이가 무려 10년 가까이 나는 것이 현실입니다.

UC버클리의 공공보건 연구자 마하신 무자히드 박사는 이런 차이가 존재하는 원인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치안, 체육관의 분포 등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항상 그림이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닙니다.

지난달, 무자히드 박사는 핀란드인(즉 피부색이 창백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사회경제적 지위와 심장혈관 질환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으며, 이런 상관관계는 존 헨리 척도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이들, 즉 노력으로 불리한 환경을 극복하려는 사람들에게서 더 강하게 나타났다는 내용이었죠. 무자히드 박사는 이번 연구가 존 헨리이즘이 흑인들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님을 보이고, 보다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잣대임을 증명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합니다. 즉 흑인들 사이에서 존 헨리이즘이 뚜렷하게 나타났던 것은 1980년대 미국 동남부에서 흑인들이 압도적으로 명백한 구조적 차별의 대상이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즉, 불리한 조건과 노력하는 성격이 조합을 이룰 때 이것이 건강에 확실한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보면 피부색과 수명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없습니다. 이는 매우 미국적인 현상이죠. 의대에서 우리는 흑인 남성이 고혈압에 걸릴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배웁니다. 그리고 이를 마치 생물학적인 팩트인 것처럼 받아들이죠. 하지만 서아프리카와 카리브 지역 흑인들의 고혈압 발병 데이터를 보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80년대에는 흑인들이 압도적으로 차별과 수난을 겪었기 때문에 존 헨리이즘이 흑인들 사이에서 두드러졌지만, 이제는 거시경제의 강력한 힘이 모든 이들에게 경제적, 심리적 압박을 가하면서 다른 인종 집단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게 제임스 박사의 조심스러운 예측입니다. 기독교적인 근면과 각자도생의 가치에 매달린 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존 헨리이즘도 널리 나타난다는 것이죠. 기계화로 인해 농장에서 일하던 흑인들이 북부 공장 지대로 밀려났던 것처럼, 자동화와 기술 발전으로 인해 교육수준이 낮은 백인, 특히 남성들이 비슷한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는 게 그의 지적입니다.

무자히드 박사는 트럼프 집권이 공공보건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 우려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의료보험을 앗아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 사회 분열과 집단 간 갈등 및 불확실성 고조, 차별 강화 등은 많은 미국인의 면역체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브로디 박사 역시 “악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 성공의 결과물을 즐길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데, 지금 미국은 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지 않다”고 우려합니다. 물론 애초에 극복할 차별이 없는 사회라면 더 좋겠지만, 미국 경제의 양극화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무자히드 박사의 말처럼 미국은 현재 공공보건 부문의 거대한 실험을 앞두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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