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투표연령, 13세까지 낮추자는 주장에 대하여
민주당 전당대회 중 뉴요커의 한 기자는 “정치적 수사에는 어린이들이 우리의 욕망과 결정을 이끄는 유일한 요소라는 진부한 전제가 깔려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의 정치인들이 투표권도 없는 집단을 자주 들먹이는 것은 흥미로운 현상입니다. 물론 이는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부모들에게 어필하기 위한 언어죠. 실제로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들의 정치나 정책은 성인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낼 방법이 없죠. “어린이 참정권 운동”은 낯설지만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13세 아이에게 투표권을 주는 아이디어에 성인 대부분은 코웃음을 칠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 역사는 여성의 투표권에 대해서도 같은 태도를 취했었죠. 실제로 미국에서 최초로 여성 투표권을 인정한 와이오밍 주에서는 장난처럼 상정한 법안이 통과된 것이었습니다. 1960년대 민권운동 시기에 이르러서도 이런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어린이 참정권에 반대할 근거는 차고 넘칩니다. 18~21세 투표율도 엄청나게 낮은데, 투표에 관심도 없을 아이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이 무슨 의미겠습니까? 아이들은 복잡한 사회 문제를 이해할 지적 능력도, 인생 경험도 부족하기 때문에 결국은 부모가 시키는 대로 투표를 할 것이고, 이는 아이를 가진 부모의 표만 두 배, 세 배 또는 그 이상으로 불려주는 것이나 다름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 역시 새롭지는 않습니다. 1910년 여성 참정권에 반대하는 단체에서 낸 홍보물을 보면, “90%의 여성이 투표권을 원치도 않고, 신경도 안 쓴다”, “투표권을 얻을 여성의 80%는 기혼자이기 때문에 남편의 표를 두 표로 만들어주거나 남편의 표를 무효로 만드는 결과만을 가져올 것”이라고 쓰여있죠. 백인 아닌 유색인종이 투표권을 얻기 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백인들은 “생물학”을 근거로 “뇌 크기가 작은 흑인들은 사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쳤죠. 실제로 루이지애나 주에서는 투표를 하고자 하는 흑인들에게 엄청나게 까다로운 “문맹 테스트”를 받도록 하기도 했고, 이는 미국사의 가장 수치스런 기억 중 하나입니다.
따져보면 어린이의 참정권을 부정하는 논리는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습니다. 복잡한 사안을 파악할 역량이 없는 성인이 많고, 대통령 선거 투표율이 50% 정도에 그치는 것이 현실인데, 그렇다고 관심이나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에게서 투표권을 빼앗자고 하면 민주주의에 반한다는 반발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달 음모론을 외치는 사람에게도 투표권을 준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근간에 자리한 합의니까요.
어린이들이 부모의 말만 듣고 투표를 하게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성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의 정치성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 가운데 하나가 바로 부모의 지지정당이니까요. 어린이들이 투표를 하게 되면 정치인들에게도 장기적인 정책에 관심을 기울일 인센티브가 생깁니다. 기후 변화나 대학 등록금과 같은 사안으로 논의의 초점을 옮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관련 정책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을 미래 세대에게 투표권과 목소리를 주는 것입니다.
물론 아이와 어른을 항상 똑같이 대할 수는 없습니다. 청소년 법정이 따로 존재하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법에 따라 어린이를 달리 대우할 때, 이는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투표권을 주지 않는 것은 무엇으로부터 어린이들을 보호하기 위함인가요? 최악의 경우, 누군가가 어린이들을 유혹하거나 위협해서 특정한 방향으로 투표를 종용하는 일이 있을 수 있겠지만, 대규모로 시행하기에는 비효율적인 계획이죠. 그리고 위협은 성인의 표를 얻기 위해서도 종종 사용되는 전략입니다. 올해는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가 써먹고 있죠.
어린이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은 정당한 일일 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입니다. 혹자는 올해 대선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오히려 정치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고 걱정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미래 세대를 정치로부터 격리하는 것이 답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민주주의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투표권을 주는 것만큼 효과적인 시민 교육은 없습니다. 3년 전 타코마 파크가 미국 도시 최초로 16세 이상 청소년에게 투표권을 준 이후, 16~17세는 그 동네에서 가장 투표를 열심히 하는 집단이 되었습니다. 최초로 투표하는 나이가 낮을수록, 평생 투표를 하는 습관이 들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투표 연령을 몇 살까지 낮추는 것이 적절할까요? 이상적으로는 어린이들이 스스로 투표할 준비가 되었을 때부터 투표를 하도록 하면 좋겠지만, 그런 제도는 불가능하겠죠. 저는 개인적으로 13세를 밀고 있지만, 극단적인 조치라고 느끼는 사람도 많을 겁니다. 하지만 타코마 파크의 실험에서 우리는 투표 연령을 서서히 낮춰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볼 수 있습니다. 부모나 보호자가 자녀를 대신해 표를 행사하는 “데미니 투표”도 고려할만 합니다. 독일, 헝가리, 일본이 이 안을 진지하게 고려 중입니다. 2004년 캘리포니아 주에서 제안되었던 것처럼, 8세 때 10분의 1표에서 시작해 18세에 온전한 1표를 갖게 되는 제도도 하나의 대안입니다. 투표라는 제도에 대해 서서히 배워가고 습관을 들이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이죠. 구체적인 방안이야 어떻든, 아동 참정권의 확장은 어린이 뿐 아니라, 성인, 그리고 민주주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자”는 뻔한 정치적 수사를 이제는 실천으로 옮길 때입니다. (워싱턴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