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 “미국 대통령으로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한다.”
2016년 9월 26일  |  By:   |  칼럼  |  1 comment

옮긴이: 미국 언론은 주요 선거를 앞두고 대개 지지 후보를 밝힙니다. 뉴욕타임스가 민주당 경선에 이어 대통령선거 본선에서도 민주당 후보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한다고 사설을 통해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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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가 있는 여느 해였다면 우리는 사안별로 두 후보의 정책을 띄워놓고 비교, 분석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여느 선거와 같다고 볼 수 없다. (우리가 오늘 이 사설을 통해 공개적으로 지지를 밝히는) 힐러리 클린턴은 그동안 공공의 이익에 복무한 기록과 이력에 더해 미국이 당면한 여러 문제에 대해 고민해볼 법한 실용적인 대책과 해법을 들고 나왔다. 반면 또 다른 후보 도널드 트럼프는 자기 자신에 관해 솔직하게 밝혀야 할 것조차 밝히지 않으며, 정책이나 계획은 거의 하늘의 별을 따다 주겠다는 수준의 터무니없는 약속에 가깝다. 이런 상황에서 두 후보의 정책을 똑같이 진지하게 취급하며 비교하는 건 한마디로 헛수고에 불과하리라고 판단했다. (후속 사설, 칼럼, 팩트체크를 통해 왜 도널드 트럼프가 근대 미국의 역사에서 주요 정당이 지명한 후보 가운데 단연코 최악의 후보인지 상술할 계획이다.)

하지만 오늘 우리의 지지 선언이 원래부터 클린턴을 지지해 온 유권자에게 확신을 심어주는 데 그친다면 그 또한 부족할 것이다. 대신 우리의 목표는 민주당이 싫어서든, 이미 남편이 8년이나 대통령을 했는데 또다시 클린턴에게 대통령 자리를 맡기는 게 내키지 않든, 아니면 표면상 문제투성이인 지금의 정치권을 개혁할 적임자는커녕 그 기득권을 철저히 대변하는 인물로 보이는 힐러리 클린턴이 싫어서든 클린턴에게 표를 줄 생각이 없는 당신에게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라고 권유하는 데 있다.

상대방 후보가 얼마나 자격 미달인지를 낱낱이 파헤치는 건 별로 도움이 안 된다. “클린턴이 트럼프보다 더 나아서”라는 명제는 클린턴을 뽑아야 하는 첫 번째 이유가 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미국의 차기 대통령은 나라 안팎으로 분열과 갈등, 배타주의가 횡행하는 세상에서 대통령직을 수행해야 한다. 중동, 아시아, 러시아와 동유럽, 영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전쟁과 테러, 세계화로 인한 부작용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위협하고 있다. 다른 나라와의 동맹 관계도 약화되고, 관용과 선의의 협력 같은 가치도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2016년 대선 과정에서 무엇보다 뚜렷이 드러난 건 미국 서민, 중산층의 분노와 절망이다. 이들은 경기침체와 기술의 혁신, 다른 나라와의 경쟁, 전쟁 등 불안정한 국제정세로 인해 미국의 보통 가정들이 떠안게 된 경제적, 사회적 부담을 정부가 나눠 안거나 완화해주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과 분노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 40여 년간의 공직 생활을 통해 클린턴은 이런 문제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대책을 내놓았으며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해 왔다. 우리는 클린턴이 대개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데 뛰어든 첫 번째, 혹은 유일한 여성이라는 수식어를 달고도 절대로 굴하지 않았다는 점에 존경을 표한다. 그녀의 지적 능력, 경험, 강인함, 용기가 없었다면 그런 도전은 계속되지 않았을 것이다.

클린턴의 업적을 살펴보면 주로 혁신적인 변화보다 점진적인 성과를 낸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선 후보로서 클린턴은 작은 정책 아이디어보다 큰 그림이나 방향을 제시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그 점이 바로 클린턴 후보의 약점으로 지적되기도 하는데 이는 꽤 당혹스러운 일이다. 사실 지도자로서 힐러리 클린턴이 지향하는 바는 상당히 명확하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불확실성이 높아진 격변기에 미국인들에게 기회를 가져다주고, 요동치는 국제 질서 속에서 강대국 미국의 힘을 좋은 데 쓰도록 관리하고 이끌어가는 것이다.

클린턴이 가끔 실수하거나 옳지 못한 선택을 내릴 때마다 그녀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공격이 잇따른다. 클린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그때마다 상당히 왜곡됐다. 자신의 세대에서 클린턴은 가장 완강한 정치인 가운데 한 명이다. 끝없이 공부하고 때에 따라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며 용기 있게 정책을 바꾸는 정치인은 절대로 자기 뜻을 굽히지 않는 당파주의 시대에 무척 보기 힘든 유형이다. 영부인으로서 힐러리 클린턴은 자신이 주도권을 갖고 추진했던 정책에서 역풍을 맞았고, 사생활에 있어 개인적인 아픔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오뚝이처럼 난관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섰다. 상원의원으로 일한 8년, 국무장관으로 일한 4년 동안 그녀는 끈기 있게 초당적인 협력을 끌어냈다. 정책을 지휘하는 추진력과 난관을 헤쳐나가는 협상력, 유권자는 물론 동료 정치인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접점을 찾아 공통의 해법을 끌어내는 클린턴의 능력은 지금 워싱턴 정가에서도 독보적인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클린턴은 평생을 어린이와 여성, 가족의 권리를 위해 싸워 왔다. 영부인으로서 가장 용감했던 장면으로 꼽을 수 있는 건 1995년 베이징에서 “여성의 권리가 곧 인권”이라는 말을 했던 순간이다. 국민 의료보험 개혁을 추진하다 한 차례 좌절한 뒤에도 클린턴은 포기하지 않고 어린이 의료보험 제도(Children’s Health Insurance Program)를 확충하는 데 힘을 기울였고, 그 결과 현재 미국 저소득층 어린이 800만여 명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게 됐다. 올해 클린턴은 총기 사고로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을 규합해 총기 구매자에 대한 더욱 엄격한 신원 조회, 그리고 전반적인 총기 규제 강화를 줄기차게 요구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2008년 대권에 도전했을 당시 클린턴은 불법 이민자에게 운전면허증을 발급해주는 데 반대했다. 그러던 그가 지금은 대통령이 되면 미국에서 법을 어기지 않고 살아가는 불법 이민자들을 강제 추방하거나 혹독하게 가두는 것을 대통령령으로 막고, 이민법을 개혁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를 두고 클린턴이 또 말을 바꿨다, 기회주의자의 면모가 보인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우리는 오히려 클린턴이 뒤늦게나마 올바른 판단을 내린 점을 높이 평가한다.

클린턴 후보 측은 범죄와 치안, 경찰력 사용에서 빚어지는 인종 갈등을 비롯한 형사제도와 사법 정의 문제, 대학 등록금, 중소기업 지원 대책, 기후 변화 문제와 공공재로서의 초고속 인터넷 보급 등 사안별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포함한 정책을 내놓았다. 정책을 실행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지도 그저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겠다는 설명보다 훨씬 상세하게 방안을 제시했다. 물론 예산은 의회의 승인을 받지 않으면 한 푼도 주어지지 않는다.

이는 클린턴이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자신의 정책을 실행에 옮기려면 반드시 공화당과 접점을 찾아 협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현재 위태로운 상태에 있는 공화당이지만 어떻게든 힐러리 클린턴을 깎아내리고 클린턴에게는 무조건 반대하고 본다는 점에서는 단합이 잘 되는 공화당이다. 정치적으로 흠집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클린턴은 초당적인 협력을 끌어낼 수 있는 능력을 증명해 왔다.

2001년 클린턴이 뉴욕주를 대표하는 연방 상원의원 임기를 시작했을 때 당시 공화당 지도부는 클린턴에게 득이 될 만한 일은 무조건 가로막는 데 힘을 모으기로 했다. 하지만 상원 국방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한 클린턴은 상임위원으로서 당면한 문제를 유능하게 처리했고, 마침내 존 매케인을 비롯한 공화당 의원들에게 인정받는 동료 의원이 됐다.

상원의원으로서 클린턴이 이룩한 주요 업적으로 9.11 테러 때 사선을 넘나들며 시민을 구한 구조대원들의 건강을 장기적으로 추적, 의료 혜택을 지원하는 데 필요한 예산을 확보한 것과 군 복무에 대한 혜택을 예비군이나 주 방위군(National Guard)에게도 확대한 것, 어린이가 복용하는 의약품에 대한 안전 규제를 강화한 것 등을 꼽을 수 있다.

물밑에서 그녀는 항상 농부, 병원, 중소기업, 환경 보호 정책을 지원하는 데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싸워 왔다. 이라크 전쟁에 찬성표를 던진 건 분명한 오점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클린턴은 애써 책임을 회피하거나 사안을 덮으려 하지 않고, 솔직하게 당시 찬성표를 던진 이유를 설명하고 자신의 정치적 판단에 문제가 있었음을 시인했다.

오바마 집권 1기 4년 동안 국무장관을 역임한 힐러리 클린턴의 지상 과제는 전임 부시 정권이 8년 동안 외교 무대에서 일방통행을 고수하며 바닥에 떨어진 미국이란 나라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었다.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정책 실패로부터 클린턴은 당연히 자유로울 수 없다. 리비아가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동시에 클린턴이 국무장관으로서 이룩한 것들도 대단히 많다. 이란에 대한 제재 강화에 앞장서 결국 이란을 협상 테이블에 앉히고 핵 협상을 타결한 데에는 클린턴의 공이 컸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를 분주히 오가며 휴전 협정을 끌어낸 장본인도 클린턴이다.

미얀마 군부에 정치 개혁을 설득해 결과적으로 미국과 미얀마의 외교 관계 회복을 끌어낸 데도 클린턴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오바마 행정부의 대아시아 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TPP)을 의제로 올려 타결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선을 앞두고 클린턴은 자신이 앞장서 추진했던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에 반대한다고 입장을 선회했다. 적잖은 유권자들이 이에 갸우뚱하고 있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클린턴이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며 무역을 촉진해야 한다는 데 대한 신조는 변함이 없다. 클린턴 국무장관 시절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사실 매끄럽지 못했다. 하지만 미국에 필적할 만한 핵보유국이자 군사대국인 러시아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클린턴이 기울인 노력은 신중하면서도 올바른 방향이었다.

클린턴은 강대국 미국이 세계 질서에서 담당해야 하는 역할을 정확히 인식하고 현실적으로 접근했다. 아메리카 대륙이나 미국 안에서의 고립을 택하는 대신, 클린턴이 이끄는 미국은 미국의 이익과 가치를 지키는 일에는 필요하면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전 세계의 빈곤과 억압을 퇴치하는 데 기여하는 쪽으로 힘을 기울일 것이다.

클린턴 후보의 남편 빌 클린턴의 임기 8년은 지금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낙관적이었고 다 잘 돌아가던 시대였던 것처럼 보인다. 냉전이 끝나고 기술 혁신이 일어났으며 전 지구적인 무역은 문제를 일으키기보다 가능성을 열어줄 듯했다. 수많은 언론과 미국인들, 심지어 클린턴 행정부에서 일하던 사람들조차 빌 클린턴의 스캔들과 탄핵 소추에 관심을 빼앗겼었다. 바로 그때 테러리스트들은 음지에서 성장하고 있었다. 이제 테러리스트들은 양지로 나와 세상을 뒤흔들어 놓고 있다. 우리는 그 당시 우리 시대가 키웠던 문제에 직면해 있다.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시대의 빛과 그림자에 늘 같이 있었다. 지난 대통령 세 명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보고 함께 일하며 클린턴은 소중한 정치적 자산을 쌓고 교훈을 얻었다. 스스로 초래한 실수의 대가도 아직 치르고 있다. 그녀는 업무를 비밀스레 처리하고자 하는 어리석은 생각 때문에 국무장관 시절 개인 이메일 서버를 통해 업무를 보고받았던 자신의 결정을 뉘우친다고 분명히 밝혔다. 잘못을 뉘우친 것과 별개로 그 결정은 공직자로서 잘못한 일이므로 그에 해당하는 철저한 조사를 받았다. 사건의 경위가 낱낱이 알려지고 클린턴에게 비난의 화살이 집중됐다. 차기 대통령의 역량을 검증하는 데 있어 이 문제는 필요 이상으로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반면 트럼프의 문제는 마치 가십거리에 불과한 것처럼 훨씬 가볍게 다뤄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9.11테러 이후 미국인들은 전쟁과 심각한 경기 침체를 겪었다. 신속히 성장하고 상처를 치유해야 하는 미국인에게는 그럴 만한 지도력을 갖춘 대통령이 있어야 한다. 힐러리 클린턴은 평생을 실제 정치와 공적 영역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바쳐 온 사람이다. 미국은 그런 클린턴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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