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인문학 전공, 정말로 소중한 4년의 낭비일까요?
2016년 9월 7일  |  By:   |  세계, 칼럼  |  1 comment

*워싱턴포스트 기고가이자 조지메이슨대학 교수인 스티븐 펄스타인(Steven Pearlstein)의 칼럼입니다.

몇 해 전, 조지메이슨대학 학부 세미나에서 800페이지짜리 앤드루 카네기 전기 읽기를 과제로 내준 적이 있습니다. 과제를 내면서는 과연 학생들이 이 두꺼운 책을 다 읽을까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많은 학생이 책을 다 읽었을 뿐 아니라 좋은 역사서를 읽을 기회를 줘서 감사하다는 인사까지 남겼죠. 학생들의 전공이 궁금해진 저는 24명을 대상으로 전공을 물었습니다. 놀랍게도 역사 전공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영문학/철학/예술 전공도 한 명뿐이더군요. 학생들은 한목소리로 “부모님의 반대로 인문학 전공을 택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올봄 다른 세미나에서 조사했을 때도 결과는 비슷했습니다. 만약 관심사와 적성만 고려할 수 있었다면 인문학을 선택했겠냐는 질문에는 24명 중 10명이 손을 들었죠.

대학이 직업훈련 과정이 되어가는 현실, 학자금 대출의 부담, 불문학과와 인류학과에 대한 지원을 축소하겠다는 주지사들, 부모의 지하실에 얹혀사는 대졸자 바리스타에 관한 이야기는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버지니아 주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학생들이 부모와 언론, 정치인, 그리고 동료 학생들의 목소리에 휘둘려 영문학이나 사학을 전공했다가는 빈털터리 학교 교사밖에 될 수 없다고 믿게 된 현실은 충격적입니다.

이런 현상은 조지메이슨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버드대의 질 르포어 교수도 비슷한 경험을 토로한 바 있습니다. 미국대학협회의 데브라 험프리스 부회장은 “부모가 인문학 전공에 반대한다는 이야기가 여러 대학에서 들려온다”고 밝혔습니다. 이중전공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이유도, 학생들이 자신의 관심사와 부모의 요구를 모두 만족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요.

부모가 자녀 인생의 모든 부분에 너무 깊이 개입하는 이른바 “헬리콥터 양육”의 추세는 이제 대학의 전공 선택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많은 학생이 부모로부터 경영, 경제를 전공하거나 의대에 가라는 압박을 받는 것이죠. 조지메이슨대의 학부 입학처장은 학부 전공과 첫 직장 간의 관계, 그리고 전공과 관련 직종의 수입에 대한 부모들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고 말합니다.

부모들은 투자 대비 수익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올봄 참석했던 합격생과 부모 대상 오리엔테이션에서도 한 부모는 “사학과 졸업장에 8만 달러를 쓰기 전에 앞날이 보이나 생각해 봐야죠”라고 말하더군요. 역사 과목을 좋아한다던 한 학생도 “사학과 학위로는 취직이 힘들다고 들었다”며 “학교나 박물관 정도밖에는 선택지가 없는 게 아니냐”고 말했죠.

인문대에서는 학과를 홍보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조지메이슨대 영문학과 홈페이지에는 아예 “영문학 학위를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나요”라는 섹션이 큼지막하게 자리 잡고 있으며, 영문학을 전공한 배우, 뮤지션, 판사, 정치인, 기업가 명단을 띄워 놓았죠.

지난 30년간 미국의 대학은 엄청난 변화를 겪었습니다. 대학생 수는 두 배로 늘었고,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이 승승장구하는 가운데 인문학은 시장 점유율 면에서 약간의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경기 침체 속에 이른바 인문학의 핵심인 ‘문사철’ 전공자 수는 급감하기 시작했습니다. 1960년대 중반만 해도 수여되는 학위의 17%를 차지했던 문사철 학위는 이제 고작 전체의 6% 정도로 줄었습니다.

하지만 직업훈련소로써 대학의 역할을 강조하는 현 세태는 직업과 수입에 대한 데이터를 잘못 해석한 결과일 뿐 아니라, 노동시장이 돌아가는 방식, 고등 교육과 직업 간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 부족에서 비롯됐습니다.

우선 조지타운대학 연구소의 2011년, 2012년 자료를 살펴봅시다. 경기가 막 되살아나기 시작했다는 그 시점에 인문학 전공 졸업자의 실업률(8.4%)은 컴퓨터(8.3%), 수학(8.3%), 생물학(7.4%), 경영학(7%), 심지어는 공학(6.5%)과도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인문학 전공자가 학력에 걸맞은 직업을 찾지 못한다는 것도 과장된 소문입니다. 뉴욕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의 자료에 따르면, 저임금 직종에 종사하는 최근 졸업생은 1990년의 15%에서 2012년 20%로 증가했지만, 심각한 사회 문제라고 보기는 어려운 수준입니다. 또한, 대학 학위가 필요 없지만 임금 수준이 괜찮은 일자리를 얻은 대학생도 전체 졸업생의 3분의 1가량이었는데, 과학이나 경영학을 전공한 학생들도 예외는 아니었죠. 경기가 좋으나 나쁘나,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이가 전공에 걸맞은 일자리를 찾아가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기 마련입니다.

인문학 전공자들이 평생 저소득으로 고통받는다는 이야기도 어느 정도 과장된 면이 없지 않습니다. 이른바 STEM 전공자와 경영학 전공자의 중위 연봉이 6만~8만 달러로 가장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인문학 전공자의 평균 소득인 5만 달러 역시 미국 중산층의 범위에 여유 있게 들어가는 수준의 수입입니다. 역사, 문학 전공자 중 소득 상위 25%는 오히려 수학, 과학 전공자 평균보다 수입이 높으며, 경영학 전공자 중 소득 하위 25%의 수입은 오히려 행정, 정책학을 전공한 이들의 평균 소득에 미치지 못하죠.

또한, 수입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전공뿐이라고 단정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예일대 경제학과에서 나온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STEM 전공자들의 소득 프리미엄의 절반은 전공 때문이라기보다 이들의 높은 지능, 성실성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어떤 전공을 선택했어도 성공했을 사람들이라는 것이죠.

나아가 전공 선택이 전부도 아닐 겁니다. 무사히 졸업하고 학위를 취득하는 것이 우선 관건이죠. 조지타운대의 칼 뉴포트 교수는 학부 생활에 대한 수백 명과의 인터뷰를 통해 단순히 부모의 기대에 따라 전공을 정한 학생은 학교생활을 중도 포기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지 않은 학생은 어려움이 닥쳤을 때 이를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대학 신입생들이 대학 전공과 커리어 간의 복잡한 관계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지만, 부모들은 더 넓은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현실 세계에서는 물리학을 전공했다고 다 물리학자가 되지 않고, 영문학을 전공했다고 다 작가나 문학교사가 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헤지펀드에도 학부에서 철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수두룩하고, 기업 임원들의 학부 전공 역시 다양합니다. 전공과 직접 연관이 있는 직업을 갖게 되는 사람은 27%에 불과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죠.

매년 신학기, 회계학을 전공하기로 마음을 굳힌 신입생들을 만나는 일은 우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고작 18세인 젊은이들이 셰익스피어나 진화생물학, 경제사상사의 세계를 탐험할 기회를 포기한 채, 평생을 회계에 헌신하기로 마음 먹는 장면이라니요. 원래 미국 대학에서 전공을 정하는 이유는 커리어 선택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한 과목을 집중적으로 배우면서 연구, 분석, 소통 방법과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법, 시간 관리법과 끈기를 배우기 위한 것이었죠. 그리고 실제로 고위 기업인들이 대졸 사원에게 기대하는 자질은 이런 것들입니다. 물론 이런 큰 원칙이 언제나 인사과 말단에서 이력서를 거르는 프로그램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요.

오늘날 급변하는 세계 경제 속에, 성공한 기업들이 찾는 인재는 한 분야에 대해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재빠르고 호기심이 강하며 혁신적인 사람입니다. 초보 회계사와 컴퓨터 프로그래머, 엔지니어, 변호사, 금융 애널리스트들의 일은 이미 아웃소싱되고 있고 머지않아 컴퓨터로 대체될 것입니다. 좋은 일자리는 폭넓게 사고하고 관습에 도전하는 사람, 즉 인문학 교육의 목적에 충실한 사람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고등교육이 보편화되고 대학 등록금이 치솟는 시대에 인문학 교육이 추구하는 “지적 탐험”은 어울리지 않는 사치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대중이 지적 여가를 누릴 수 없고 엘리트 교육에 대한 호기심을 가질 수 없다는 생각이야말로 지독하게 엘리트주의적인 사고”라고 말한 역사학자 조한 님(Johann Neem)의 말에 동의합니다.

부족한 근거에도 불구하고 인문학 전공자들이 인생의 의미만을 생각하며 4년을 허송세월한다고 믿는 부모님들께 감히 말씀드립니다. 열정을 가진 젊은이라면 인생의 의미와 생애 소득 극대화를 혼동할 일은 없다고요. (워싱턴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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