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금기: ‘어머니 됨에 대한 후회’
2016년 7월 14일  |  By:   |  세계  |  1 comment

그들은 물론 자신들의 아이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머니가 된 것을 후회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사회학자 오르나 도나스(Orna Donath)가 분석한 내용입니다. “만일 당신이 당신의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당신은 다시 어머니가 되시겠습니까?” 그녀들은 대부분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조사 대상에 포함되었던 25~75세 여성 23명은 다시는 어머니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답했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그들의 자녀가 태어났을 때부터 이를 인지하였으며, 두 아이의 어머니이자 지금은 할머니가 된 56세의 트리스챠(Tirtza)는 아이를 가진다는 일이 나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건 제 인생의 악몽이었다고 생각해요. 또 그건 여러 어려움과 걱정 이외에는 제 인생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어요.” 세 아이를 기르고 있는 45세의 아탈랴(Atalya)는 둘째 아이가 생긴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사회학적 연구로서 “어머니 됨을 후회하는 이들에 대한 연구”는 지난 2015년 겨울에 출판되어 스위스에서 브라질까지 많은 이들에 의해 해석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각국의 문화적 상황 하에서 나름의 모성애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에 동일한 뉘앙스를 가지지 않습니다. 오르나 도나츠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카자흐스탄, 덴마크, 잉글랜드, 스위스, 인도 등 각국의 모성을 종합하여 연구하였습니다. 독일에서 도나츠의 작업은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논쟁의 와중에 여러 종류의 서적이 출판되었으며, 다양한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학회, 출판물 등에서 “어머니됨을 후회하는 현상”을 언급하였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상대적으로 이 작업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프랑스는 더욱 많은 수의 아이들, 더욱 높은 출산율을 원할 뿐, 사회적으로 어머니됨의 후회라는 개념을 확인하기 어려웠습니다. 40여 년 동안 노동 시장과 관련된 모성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던 사회학자 마리-테레즈 르타빌리에(Marie-Therese Letablier)는 자신의 의견을 대변한 듯한 연구 내용에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절대 제가 아는 한, 우리는 후회라는 개념에서 문제를 제기한 적이 없었습니다. 왜 우리는 이러한 각도에서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을까요?”

 

욕망의 몸짓

모성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스라엘에서 이 주제는 발표되기 전부터 이슈가 되었습니다. 젠더 사회학 전문가인 콜린느 카르디(Coline Cardi)는 모성애에 대한 명령이 대중적이라면 그럴수록 이에 대한 반발 – 즉 어머니됨에 대한 후회 역시도 더욱 쉽게 인지된다고 말합니다. 반대로 독일에서는 여성들이 그들의 자녀를 기르기 위해서 일하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이러한 논쟁은 두 지점에서 거시경제적 측면과 개인적인 측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마리-테리즈는 설명합니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상당히 높은 출산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반면 라인강 저편의 독일은 그렇지 않습니다(2014년 프랑스 출산율은 여성 1명 당 2.01명, 독일은 1.47명). 독일은 아이들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어머니 됨에 대한 후회”는 사회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오랫동안 독일의 가족 정책은 전통적인 가족 체계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자격이 없는 어머니로 보이지 않기 위해서 독일 여성들은 노동과 모성의 발현을 병행해야만 했습니다. 따라서 대학 학위를 가진 이들의 1/3 정도의 여성이 아이를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유럽연합 차원의 양성평등 원칙에 따라 독일은 2007년부터 가족 정책을 개혁하였습니다. 이는 주거비용이 자녀의 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정책의 방향이 출산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맞춰져 있는 프랑스와는 완전히 다른 상황입니다.

불평등을 밝히는 것을 넘어서 오르나 도나츠는 어머니들의 노동 역시 그들의 모성과 관련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인간적인 후회를 넘어선 신성화된 왕국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후회’가 범죄나 죄악을 저질렀을 때 발현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는 패배, 취약함의 증거로 감정적으로 부정적인 부분을 보여주는 방향으로 나타납니다. 괴로워하는 어머니가 언제나 나쁜 어머니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자녀를 위해 충분히 무엇인가를 하지 못한 것 같다는 데에서 오는 죄의식은 이를 잘 보여줍니다. 후회는 상실에 대한 주관적인 평가입니다. 오르나에 따르면 후회의 평가 절하는 모성의 과대평가와 직결됩니다. 그리고 이는 한 여성이 어머니가 되기로 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차단합니다. 왜냐하면 본질적으로 이 후회는 다른 선택지가 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하는 데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즉 아이를 가지지 않는다는 선택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 아이를 가지지 않는다는 일이 가능했을까요? 물론 오늘날에는 임신 중절 등 다양한 선택지가 주어지기는 합니다. 이로서 여성은 자신의 생식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보부아르(Beauvoir)와 바당테르(Badinter)도 이러한 과정을 거쳤습니다. 이로서 여성의 몸은 여성들 자신에 속합니다. 모성은 더 이상 필수적인 것이 아닙니다.

“근본주의적 페미니즘은 모성이 여성의 자유를 억압하는 장애물이라고 봅니다. 이 당시, 즉 60~70년대 모성에 대한 경험 자체에 대해 내린 결론입니다. 아이를 원하지 않는 경향에 대한 내용” 이라고 콜린느 카르디는 말합니다. 어머니 됨에 대한 후회는 아마 피임 이전에는 합의될 수 있는 사항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면 이러한 상황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부모라는 직업”

오늘날 이러한 ‘후회’는 출산을 조절할 수 있는 권한과 관련하여 표현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들은 피임 혹은 적어도 원치 않는 아이를 낙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아이를 원하지 않는 현상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사회학자 샤를로트 데베스트(Charlotte Debest)는 여성들이 이중으로 겪고 있는 문제를 강조합니다 : “여성들은 책임의식과 죄의식을 동시에 짊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저는 당시에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아이를 선택한 것이며, 아이를 맞이할 준비가 된 상태에서 아이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여성에게 그들의 생식능력을 통제할 권한을 주면서부터 시작된 일입니다. 그 전에는 아이를 가지려고 하는 일이 이렇게 합리적인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아이는 우연에 의해 주어질 뿐이었고 부모는 그 상황에 적응할 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부모라는 직업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이는 부모의 역할에 무엇인가 노하우가 있다는 말을 의미합니다. 즉 부모의 자격을 확인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결국 가족은 행복의 원천이어야만 합니다. 모성애는 결국 여성성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며, 여성들은 이를 인정해야만 하고, 이를 후회하거나 아쉬워하는 일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샤를로트 데베스트의 말입니다. 여기서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 진정한 여성은 행복한 어머니인 것입니다. “다만 이 여성들이 사람들이 그들에게 바라는 바에 순응할 때에만 가능한 일입니다. 이는 지금까지도 그다지 진보되지 못한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인 명령과 여성들의 대표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합니다.”

 

이미 너무도 작았던…

그러나 이러한 후회의 표현은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대부분 모성에 대한 사회적인 명령이 자기 자신에 대한 욕망은 물론, 모든 것을 뛰어넘고 있습니다. 36세의 오데일라(Odelya)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한 반도 진지하게 이를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털어놓습니다. 아탈랴(Atalya)의 경우, 그녀는 그저 어쩌다보니 어머니가 되었을 뿐이라고 합니다. 다른 이는 인공수정을 통해 어머니가 되기도 했습니다. 모성의 경험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들 여성들은 모성을 통해 사회로부터 인정받는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세상에 아이를 내보내었다는 자랑스러운 감정, 또 하나의 꿈을 실현시킨다는 감정. 그러나 이는 다른 이들의 꿈이었습니다. 아이를 바라는 욕망에는 근거가 있으며, “여성은 아이를 출산한다”는 그 근거는 전혀 문제시되지 않았다고 샤를로트 데베스트는 말합니다. ‘어머니 됨에 대한 후회’와 같이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욕구는 어떻게도 표현할 수 없는 일입니다. 사회적인 배제의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좋은 어머니의 규범을 벗어나는 일입니다. 그리고 대체로 부모들은 부모가 아닌 이들에 대해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요소들이 그들을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 과연 부모들은 그들의 개인적인 삶과 부부의 삶에 미칠 요소 하나하나를 충분히 고려한 상태에서 부모가 되었을까요? 샤를로트에 따르면 사람들은 부모가 됨을 그저 그들이 선택한 삶의 한 방식이라고 생각하곤 한다고 합니다.

 

양면성

그러나 ‘어머니 됨에 대한 후회’를 발현하는 것은 이미 이 사실에 의해 스스로를 폐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새로운 현재에 의해 스스로를 재평가하는 것, 즉 자신의 후회를 후회할 수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정신분석학자 쥬네비에브 들래지(Genevieve Delaisi)는 양면성의 개념을 말합니다 : “후회는 정신분석학에는 존재하지 않는 사회학적 개념입니다.” 이스라엘 사회학자의 조사는 이러한 개념을 곤란한 상황으로 몰고 갑니다 : “무의식은 완전히 무시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모든 어머니들은 양면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간혹 그들은 그들의 아이들을 거부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습니다.” 쥬느비에브는 대단히 희귀한 편집증적 정신착란을 보인 파비엔느 카부(Fabienne Kabou)의 극단적인 사례를 제시합니다. 그녀는 그녀의 아이를 끝까지 몰고 갔습니다. 아이에게 모유수유를 하며 그녀의 아이를 익사시키는 방식으로 그녀의 광기를 발산하였습니다. 만일 파비엔느가 당시 이 행위를 하지 않았다면 나중에 언젠가는 했겠지요. 일반적인 여성들은 역시 양면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간혹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우울증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이를 가진다는 것이 매우 대단한 일이라는 관념이 내재화된 이상 어머니들은 이를 자각할 수 없습니다. 사회적인 초자아는 이러한 후회를 표현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나쁜 어머니상은 여성들을 가두고 있습니다. 콜린 카르디는 말합니다. “이 조사는 사회의 불편한 부분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것이며 그러므로 우리는 논점을 바꿔야만 합니다. 대상을 경험에서부터 분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성에서 아이를 분리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리베라시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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