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 유럽 연합의 작동 방식과 유럽적 정체성에 대한 문제제기
* 옮긴이 : 브렉시트가 유럽에 미치게 될 영향과 관련하여 프랑스 잡지 필로소피(Philosophie)에 게재된 한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인터뷰이는 유럽 사상 전문가인 낭트 대학의 철학자 장-마크 페리(Jean-Marc Ferry)입니다.
영국 국민투표 결과를 접했을 때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페리 : 먼저 자연스럽게 이번 일이 영국에 미칠 영향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잉글랜드인들은 – 영국인이 아니라 – 유럽 연합에 대해 주권주의적인 입장을 견지하였지만, EU에 남기를 원했던 스코틀랜드인들은 영국에 대해 같은 입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는 역시 잔류를 원했던 북아일랜드에도 연쇄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즉 영국의 해체의 가능성도 있는 것입니다. 이는 파운드화의 가치 하락보다도 훨씬 심각한 일입니다.
한편 유럽 연합의 입장에서 이번 사건은 단순히 경제, 금융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이는 유럽의 정치적 단일성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인 것입니다. 만일 모든 후속 조치가 순조롭게 이루어진다면 영국과 EU 사이의 관계는 상호 협정에 의한 체계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 EU와 스위스, 노르웨이 사이의 관계와 유사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영국인들이 브렉시트를 통해 그다지 얻을 것이 없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연합의 구성원으로서 이미 그들이 보유하고 있던 사항을 재차 수용하거나 거부해야 하며, 이제는 그 내용의 변화나 발전 과정에 참여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국인들은 그들의 주권을 되찾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들은 주권을 상실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영국이 유럽에서 나가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영국의 정치적 경향은 자유로운 교역을 기반으로 한 무제한적인 확장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럽의 시작은 관세 협정이었고, 이 둘은 전혀 성격이 다른 것입니다. 영국인들은 가입 당시부터 유럽 연합에 대해 공리주의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습니다. 철저한 비용-편익 계산을 통하여 이 제도에서 얻을 수 있는 것과 상대에게 제공해야 할 부분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마가렛 대처의 담화 : “I want my money back” (내 돈을 돌려달라!)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잉글랜드는 정치적으로 EU에 투자한 것은 없었으며, 대부분 경제적인 것이었습니다.
거칠게 말하면 정치적 연합이 가능하기 위한 상호작용의 기반을 만들지 않은 상태에서 EU는 젖소처럼 다루어졌습니다. 이러한 공리주의적 관점은 유해하기만 할 뿐입니다.
이제 영국이 제도적으로 유럽의 균형을 위해 필요한 대규모 투자 자체를 봉쇄한 셈이 되었고, 유럽연합에 있어 브렉시트는 안타까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영국의 후퇴와 함께 EU는 정치적 자유주의와 의회 민주주의의 소중한 사례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영국의 모델은 유럽의 정신적인 균형을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유럽 연합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보시나요?
지난한 협상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러나 브렉시트가 EU가 겪고 있는 수많은 불균형으로 인해 필요성이 대두된 EU의 근본적인 구조적 개혁을 지연시키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브렉시트의 원인 이면에는 주권주의나 포퓰리즘이 아닌 더욱 근본적인 원인도 존재합니다. 공민적 자치의 요구는 매우 정당하며 필수적이기까지 합니다. 시민 스스로가 그들 자신에게 적용되는 규범을 만드는 주체가 되고자 하는 것은 본질적인 요구입니다. 영국인들은 그들이 참여하지도 않는 유럽의 정치가 그들의 머리 위에 되돌릴 수 없는 방식으로 부과되어 안정화되는 것을 거부한 것입니다.
그러나 영국인들이 그리스인들, 이탈리아인들, 스페인, 프랑스 사람들에 비해 의회 의사결정 속도의 향상, 국가 재정에 대한 제약, 재정정책에 대한 영향력 행사 등 EU의 정치적 지배의 부당성을 논할 처지가 아니라는 점은 모순적입니다. 사실 영국은 유로화를 사용하지도 않으며, 섕겐 조약의 구성원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민주주의를 넘어선” (post-democratic) 과정에 의한 희생자가 되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브렉시트의 이러한 모순에 대해서는 더욱 생각해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어째서 민주주의를 넘어선 과정에 대해서 말씀하시나요?
과도한 불균형은 EU의 기능을 수용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는 한 정부는 제도로 인한 문제를, 다른 정부는 국민들의 공감대 문제를 가지는 식의 불균형이나, 그 외에도 개인에 대한 사법적 보호와 국민들의 정치적 참여 사이의 불균형, 혹은 공공부문과 사적부문 사이의 불균형이 있습니다. 유럽적 과정은 아마도 정치 부문에서의 민영화된 기업과 같은 방식으로 읽힐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연합의 조직에는 공적 부문이 매우 적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 기저에는 위원회가 자리하고 있는 브뤼셀의 거리에서 이루어지는 이익집단들 사이의 거래가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관료주의적인 요소 (techno-bureaucratic)는 반(半)-사유화된 것입니다. 그리고 정부 간 협약은 보통 비밀스러운 외교적 협상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또 가입국 사이의 논란의 여지가 많은 규제의 경우 더욱 비밀스러운 과정을 거칩니다. 이제는 스타일을 바꾸어야 할 때입니다. 유럽연합의 문제를 공론장으로 이끌어내 해결하도록 해야 할 때입니다. 가입국의 지도자이기도 한 유럽 연합의 지도자들은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미 중요한 결정을 내린 이후 이 기준이 국내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국내 여론을 상대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는 민주적 절차의 기준을 충족하는 한도 내에서 빠른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방식에 거부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의회주권을 특징으로 하는 정치 문화를 가지고 있는 영국인들은 특히 더욱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작동방식을 개혁해야 하겠습니까?
우선 유럽연합이 작동하는 방식부터 개혁해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대표성을 가지거나, 참여하는 형태이거나, 대의적인 형태를 취하는 것이 보통이나, 유럽 연합의 경우에는 그저 선언적인 수준의 민주주의가 있을 뿐이며, 이마저도 잘 작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중은 유럽의 정치적 결정에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비밀스러운 의사결정을 통해 끌고 가는 방식이 아닌 공개적 토론에 기반을 둔 새로운 양식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기반을 마련한 후에야 중요한 제도적 개혁을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 사상가들의 말에 따르면 유럽적 정체성은 본질적으로 다른 정체성에 열려있다고 합니다. 앞으로 어떠한 부분을 조심해야 할까요?
미래 예측의 시나리오를 말하는 일은 어려운 일입니다. 위험성은 다양한 속도의 유럽을 구성하는 것에 있을 것입니다. 이는 매우 제한적인 핵심을 형성할 것이며, 유럽 형성의 최초 구성원들을 모으게 될 것입니다. 이 제한적인 핵심으로의 후퇴는 유럽의 기원을 카롤링거조에서 찾는 우려스러운 신념과도 관련되어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신념은 유럽의 정체성에 대한 매우 편협한 관점을 기반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상가들의 말을 따른다면 유럽의 정체성은 다른 정체성들에 열려 있는 점을 본질적인 특징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정체성의 문제는 그 기원이 아테네이건 예루살렘이건 이미 외부에서 유입된 것에 다름 아닌 문명의 유산을 지켜내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고 소통이 가능한 정체성을 형성해나가는 점에 있습니다.
프랑스 국민전선에는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국민전선에게는 정말 좋은 기회입니다. 그들은 : “저것봐요! 영국은 유로화를 사용하지도 않고, 섕겐 조약 구성원도 아닌데 유럽 연합에서 나가겠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 프랑스는 어떤가요?” 이러한 담론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러한 유럽에 대한 회의주의에서 거론되는 내용들이 좌파의 좌파에서 나온 이야기이건, 우파의 우파에서 나온 이야기이건, 혹은 파시스트, 주권주의적 관점의 이야기이건 관계없이 이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논점들 중에는 논쟁이 필요한 정치적 요소도 있으며, 지켜야 할 민주적 요소도 존재합니다. 공론장에서 형성된 유럽의 정체성의 다원주의적 문화 없이는 대중과의, 또 시민과의 대립이 지속된다는 점에서 모든 정치 과제 일반은 유죄입니다. (필로소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