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등장과 미국 대통령의 종교 문제
2016년 6월 29일  |  By:   |  세계, 정치  |  2 Comments

1865년 3월, 링컨 대통령의 두번째 취임식을 지켜본 신문기자는 지면에서 대통령 당선자가 오른손을 성경책 위에 올린 채 미국 헌법을 수호하겠노라 서약하는 장면을 묘사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인파”를 앞에 두고 “신이여 도와주소서(So help me God)”이라는 말로 선서를 마친 대통령은 몸을 숙여 성경책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취임식에서 신의 도움을 구한 것이 기록으로 남아있는 것은 이때가 처음입니다. 미국 헌법에는 “신”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고 대통령이 특정 종교를 가져야한다는 법도 없지만 이 문구는 취임 선서를 마무리하는 말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은 형식적으로라도 교회를 다니고, 기도를 하며, 목사를 만나 조언을 구하며, 신 앞에서 겸손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죠.

“미국에서 종교를 갖고 있다는 것은 도덕적인 기준을 갖고 있다는 의미와 비슷합니다. 사람들은 대통령이 어떤 종류든 도덕적인 기준이나 나침반을 가진 사람이기를 원하는 것이지, 반드시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트머스대학의 역사학자 랜들 발머(Randall Balmer)의 말입니다.

하지만 결혼만 세 번 한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은 대통령의 종교에 대한 논의에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트럼프는 자기 인생에 용서란 필요없으며, 예수는 “용감하다는 점에서” 존경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반면 힐러리 클린턴은 독실한 감리교회 신자였던 부모님에 대해서 자주 언급하고, 진보적인 교회들과의 유대 관계도 강조하는 입장입니다.

트럼프의 “비종교성”은 공화당 당원들에게 꽤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역대 공화당 출신 대통령들은 교회와 긴밀한 관계를 자랑했으니까요. 최근 트럼프가 뉴욕에서 보수파 교회 관계자를 만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트럼프조차도 기독교인 표를 마냥 무시할 수는 없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비공개로 이루어진 이 회동에서도 트럼프는 신앙심과는 거리가 있는 어색한 모습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자신이 “엄청난 신자”라고 자처하면서도 정확히 무엇을 믿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고, “교회에 빚진게 많다”는 애매한 표현을 쓰는가하면,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모든 정치인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하지 마시고, 모두가 한 특정 인물에게 투표할 수 있게 기도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트럼프에 대한 종교인들의 인상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침례교 목사이자 패트릭헨리칼리지의 총장인 마이클 페리스(Michael Farris)는 트럼프가 사업상에서도 약속을 지키지 않고, 사람들을 조롱하며, 이웃을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을 전혀 지키지 않는다며, 성경이 설파하는 정직함, 품위, 고결함을 전혀 갖추지 못한 인물이라고 평합니다. 그는 일부 기독교인들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것이 “우리 스스로 우리가 이야기하는 가치를 전혀 중시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꼴”이라며 뉴욕 회동을 “기독교 우파의 종말”이라고 명명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미국인들이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모습이 전혀 달라진 것일지도 모릅니다.” 랜들 발머의 지적입니다. 미국 시민들이 신을 두려워하는 대통령을 원하지 않는 시대가 온 것일지도 모릅니다. (NPR)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