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 교육이 정치의 영향을 받아도 괜찮을까?
매년 미국 텍사스 주에서 산부인과 레지던트 과정을 마치고 의료계로 진출하는 의사는 100명이 넘습니다. 이론대로라면 이들은 훈련 과정에서 산부인과의 수술 가운데 하나인 낙태 시술을 익혔어야 합니다. 문제는 텍사스에서 레지던트들이 낙태 시술을 배울 수 있는 병원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낙태 시술 병원에 대한 정치권의 압박이 강해지고 있는 텍사스에서는 이 문제를 취재하는 것 자체가 꽤나 어렵습니다. 산부인과 레지던트 과정을 갖추고 있는 18개 대학 가운데 낙태 시술 교육을 공개하고 나선 학교는 한 곳 뿐이었습니다. 취재 요청에 이야기 중 전화를 끊어버리거나,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낸 기관들도 있었죠. 취재에 응한 한 의사도 “제인”이라는 미들네임만을 사용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의사가 되려는 사람이라도 도덕적인 이유로 낙태 시술 교육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인은 의사가 환자에게 주어질 수 있는 모든 옵션을 제공할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레지던트 3년차에 한 낙태 클리닉에서 한 달 간 연수를 받았습니다. 여기서 낙태 시술 자체 외에도 초음파 읽는 법을 집중적으로 익혔고, 낙태, 피임법, 성병과 관련한 환자 상담법 등 산부인과 의사가 되는데 필요한 여러가지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훈련은 아주 조용히, 거의 비밀리에 이루어집니다. 텍사스 주에서 낙태 시술을 하는 의사들의 입장은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레지던트 교육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싶어도, 주정부 예산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될까봐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텍사스처럼 낙태 반대 여론이 같한 곳에서 낙태 시술을 하는 의사로 살아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자신과 병원 직원들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도 있고, 주 정부의 철저한 감사 대상이 되며, 낙태 반대 시위대와도 종종 마주치게 됩니다. 낙태 시술을 하는 의사는 일자리를 구하기가 더 어렵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지난 몇 년 간 텍사스 주에서 낙태 시술을 하는 의사의 수가 48명에서 28명으로 줄어든 데는 이런 배경이 있습니다. 낙태 클리닉을 운영하다가 은퇴를 앞두고 있는 74세의 한 의사는 병원을 인수하겠다는 의사를 찾을 수가 없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는 자신도 낙태 반대론자들에게 평생을 시달려왔기 때문에, 낙태 시술을 하겠다는 의사가 줄어들고 있는 것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의료 교육 기관들이 차세대 의사들에게 어떤 교육을 제공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미국에서는 1996년부터 법에 따라 모든 레지던트 과정이 낙태 시술을 교육할 방법을 갖추어야 합니다. 기관 내부의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외부 위탁 교육이라도 제공해야 하며, 이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인가를 취소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따로 낙태 시술을 배우기 위해 먼 도시의 기관까지 찾아가는 레지던트들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일정상 불편하기도 하지만, 의대생으로서 낙태 시술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면 굳이 텍사스 주에 있는 의대를 선택하지 않았을거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렇게 낙태 시술 병원이 줄어들고, 이에 따라 낙태 시술을 배우지 않는 의사들이 늘어나면서 텍사스 주에서는 멕시코로 넘어가 불법 낙태약을 구해오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멕시코에서는 이런 약품을 구하기가 어렵지 않지만 제대로 된 복약 지도가 될리 없고 부작용 역시 고스란히 약을 복용하는 사람의 몫입니다. 선별 낙태 시술을 허용하지 않는 텍사스 대학 의대의 토니 웬 교수가 학생들에게 낙태약 과다복용 진단과 대처법을 가르치기 시작한 이유입니다. (NP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