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해도
2016년 4월 22일  |  By:   |  정치, 칼럼  |  No Comment

* 비영리 언론 후원기관인 언론자유재단(Freedom of the Press Foundation)을 운영하고 있는 트레버 팀(Trevor Timm)이 가디언에 쓴 칼럼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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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는 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입니다. 하지만 페이스북이 전에 없던 막강한 힘과 영향력을 교묘하게 발휘해 트럼프를 낙선시켜버리는 건 어떤 의미에선 더욱 무서운 일입니다. 그런데 페이스북 직원들이 공개적으로 창립자인 마크 주커버그에게 트럼프를 떨어트리기 위해 몇 가지 조처를 취해도 되겠냐고 물었던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기즈모도(Gizmodo)의 보도에 따르면 페이스북 직원들이 의견을 주고받는 사내 전산망을 통해 주커버그에게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걸 막기 위해 페이스북이 무언가를 해야 하지 않겠냐’고 물었다는 겁니다.

트럼프 같은 몰상식한 선동꾼이 대통령이 되는 걸 진심으로 두려워하는 미국인이 수백만 명일 테니, 그 가운데 페이스북 직원이 있다는 것이 놀랍지는 않습니다. 페이스북이 직원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트럼프를 낙선시키려고 조직적인 움직임을 벌이고 있다는 근거는 없지만, 어쨌든 소셜 네트워크가 코드 하나만 바꿔도 수많은 사람의 감정이나 견해를 손쉽게 뒤바꾸고 궁극적으로는 조종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페이스북이나 구글이 아주 미세한 부분만 수정해도 선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건 지난 몇 년간 자주 화제가 된 이야기입니다. 심지어 하우스오브카즈 이번 시즌에도 그런 소재가 극중에 소개됐죠. 하버드대학교 로스쿨의 조나단 지트레인 교수는 지난 2010년 페이스북이 어떻게 아무도 눈치 못 채게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설명했습니다. 당시 페이스북은 선거날 이용자의 타임라인에 이용자가 아는 사람의 투표 인증샷이 먼저 보이도록 하는 것만으로 미국 전역에서 34만 명을 더 투표소로 불러냈습니다.

2012년 선거에서는 범위를 더 확장해 실험을 진행했는데,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게 실험을 진행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페이스북이 가진 엄청난 영향력이 눈으로 확인되자 COO인 셰릴 샌드버그는 2014년 분명히 선을 그었습니다.

“페이스북은 누군가의 감정을 조종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도 안 되고 그럴 능력도 없다는 걸 명확히 해두겠습니다. 또한, 선거에서도 부적절한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지 않을 것입니다.”

이 발언은 페이스북이 몰래 이용자 70만 명의 감정에 영향을 끼치는 실험을 수행한 사실이 드러난 직후 나온 것입니다.

미국인의 78%가 소셜 네트워크 계정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페이스북은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고, 갈수록 뉴스를 접하는 채널 또한 페이스북으로 일원화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는 페이스북이 지금껏 존재했던 그 어떤 매체보다도 (마음만 먹으면) 선거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페이스북의 영향력은 더욱 막강해졌습니다.

올해 초 가디언은 페이스북이 확보한 수많은 이용자이자 유권자 데이터를 미국 대선에 나선 후보들이 얼마나 요긴하게 쓰고 있는지를 보도했습니다.

페이스북은 투자자들에게 ‘맞춤형(targeting)’ 서비스의 무한한 가능성을 언급했다. 맞춤형 광고를 한다고 해서 각 후보들에게 이용자 데이터를 그대로 넘기는 건 아니다. 대신 페이스북은 각 후보 진영으로부터 이메일 주소와 유권자들의 프로필을 넘겨받는다. 프로필에는 정치적 성향, 실명, 주소, 전화번호 등이 포함돼 있는데 페이스북은 이를 자사의 이용자 데이터와 맞춘 뒤 맞춤형 광고를 내보내는 식으로 활용한다. 결국 아무 광고가 아무에게나 가는 대신 이용자가 관심을 가질 만한 광고가 제때 노출된다.

<폴리티코>는 “구글이 2016년 선거를 어떻게 조작할 수 있을지”에 관한 기사를 썼습니다. 심리학자 로버트 엡스테인은 구글이 유권자 누구도 자신이 교묘하게 조종을 당했다는 사실을 눈치 못채게 하면서 부동층 유권자들의 표심을 20%에서 많게는 80%까지 바꿔놓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조종이라는 게 반드시 누군가 의도를 갖고 하는 건 아닙니다. 구글 검색 결과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수없이 많습니다. 당장 다른 검색 트렌드의 영향을 받고, 검색 알고리즘 자체도 쉴새없이 바뀌며, 누군가에게 특정한 정보가 노출된다고 해도 반드시 그게 어둠의 세력의 사주를 받은 프로그래머가 특정 정치적 주장을 퍼뜨릴 작정으로 코드를 짜놓았기 때문에 그럴 확률은 무척 낮습니다. 하지만 원론적으로는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는 건 사실이며, 페이스북에도 실제로 그럴 만한 힘이 있습니다.

많은 기업, 특히 방송사나 언론 매체들은 어떻게 해서든 선거에 자신들의 입김을 불어넣고 싶어 합니다. 돈이든, 광고든, 사설이든, 아니면 뉴스를 어떻게 편집하느냐만으로도 작지 않은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껏 그 어떤 언론사도 페이스북만큼 압도적인 영향력을 갖지 못했습니다. 뉴스 독자와 시청자의 40%가 페이스북을 통해 뉴스를 접합니다. 게다가 페이스북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알고리즘을 조종할 재량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누차 강조해도 그 힘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페이스북의 이런 힘을 규제하기에는 법적 근거가 없습니다. UCLA 로스쿨의 유진 볼로크 교수는 기즈모도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페이스북은 자신들이 원하면 어떤 뉴스든 띄울 수 있고, 반대로 어떤 뉴스든 묻어버릴 수 있습니다. 페이스북이 궁극적으로 적용받는 법이 있다면 헌법이겠죠? 뉴욕타임스나 페이스북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수정헌법 1조에 나와있듯이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죠. 트럼프를 페이스북상에서 완전히 삭제하기로 마음먹으면 그렇게 해도 이를 막을 방법이 없어요.”

트럼프의 몰상식한 행동, 상스러운 발언에 역겨움을 참지 못하는 이들 가운데는 페이스북이 대의를 위해 그 정도는 해줘도 되지 않느냐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선거 자체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이 한 집단, 한 조직에 주어지는 건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한번 고삐가 풀리면 어디로 튈지도 모를 뿐더러 누구도 막지 못할 테니까요. 트럼프를 막아서는 일이라면, 상식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찬성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단순히 이번 선거뿐만 아니라 앞으로 매번 선거 때마다 내 타임라인에 뜨는 정보가 주커버그나 페이스북 엔지니어들의 필터링을 거친 정보로 한정된다면? 이는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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