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를 인터뷰한 워싱턴포스트의 소감
우리 신문은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도전에 시종일관 비판적인 의견을 내왔습니다. 그래서 지난주 초 그가 워싱턴포스트 본사를 방문해 1시간 이상 단독 인터뷰를 해준 것 자체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트럼프가 대통령 자리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했습니다. 그는 자리를 뜨면서 “나는 극단적인 사람이 아닙니다”라는 말을 남겼지만, 그의 답변 내용을 바탕으로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에 극단적인 리스크가 될 것이라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선 두드러진 것은 그가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팩트와 증거를 무시한다는 점입니다. 법 집행 과정에서 인종 차별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렇다는 글도 읽었고, 그렇지 않다는 글도 본 적이 있다. 내 말은 두 가지 주장이 다 있다는 것이고, 나는 그 문제에 의견이 없다.”라고 답했습니다. 지구 온난화에 관해서 물었을 때는 자신이 “인간이 기후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을 별로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답했습니다.
물론 이런 태도는 공화당 소속 다른 의원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목표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 간의 간극이 트럼프만큼 큰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는 대통령이 되면 명예훼손 관련법을 손보겠다고 했지만, “수정 헌법 1조가 있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에는 “제 변호사들에게 물어보셔야겠네요.”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무슬림의 입국을 실질적으로 어떻게 금지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예외가 많다”, “절차를 거치게 할 것”이라는 알맹이 없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인종 간 불평등과 도시 빈곤에 대한 해결책으로는 “일자리 창출”을 꼽았지만, 일자리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는 질문에는 “희망을 주고, 사기를 북돋워 주어야 한다”는 답뿐이었습니다.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세를 불려가는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예측할 수 없어져야 한다, 현재 미국은 너무나 예측 가능하고, 예측 가능성은 나쁜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이처럼 텅 빈 정책 바구니는 민주주의의 성패가 달린 “내용 있는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모호함 역시 외교 분야에서 어느 정도까지는 유용할 수도 있지만, 명확하지 못한 것은 상대방의 공격성을 유발하고 동맹의 이탈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위험합니다.
트럼프는 미국의 동맹 관계 유지라는 사안에 전혀 걱정이 없어 보입니다. NATO는 처음 생길 때 좋았지만, 지금은 별로인 데다 돈이 너무 많이 들며, 미군 기지 비용을 이미 상당 부분 부담하고 있는 일본과 한국은 미군 주둔 비용을 100%를 부담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죠. 동맹 관계에서 미국이 얻는 것은 없냐는 반문에는 “개인적으로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미국이 엄청나게 힘이 세고 돈이 많은 나라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죠. 하지만 지금 미국은 가난한 나라 아닙니까.”
워싱턴포스트가 자신을 공정하게 대하지 않는다는 게 트럼프 본인의 주장인 만큼, 우리는 대화 전체의 오디오 파일과 녹취록을 웹사이트에 올려두었습니다. 선거 유세장에서 벌어진 폭력 사태, 해외 민주주의 전파 등 다양한 사안에 대한 그의 의견이 드러나 있습니다. 모욕적인 언사나 비평가들을 위협하는 행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효과가 있으니(내가 선전하고 있으니) 그게 곧 대통령다운 거라고 생각한다”고 답했죠. “대통령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우리의 의견이 트럼프와는 다르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워싱턴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