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의 복잡한 조세 회피 전략, 상모솔새 프로젝트
아마존의 본사가 위치한 미국 시애틀 법원에서 아마존의 대규모 조세 회피 여부를 두고 미국 국세청과 아마존 사이에 법정 공방이 한창입니다. 이 과정에서 아마존이 유럽 전역의 사업을 총괄하는 룩셈부르크에 있는 자회사를 통해 진행한 복잡한 사내 거래 계획의 전말이 드러났습니다. 미국과 유럽의 세무 당국은 룩셈부르크를 상징하는 새인 (참새목의) 상모솔새(goldcrest)를 본따 상모솔새 프로젝트라고 이름붙인 아마존의 사내 거래 계획을 치밀한 탈세 전략이라고 보고 있는 반면, 아마존은 그렇지 않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2년 동안 28단계의 복잡한 절차를 거쳐 시행된 상모솔새 프로젝트는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가동됐으며, 미국과 유럽 사법당국은 그동안 아마존이 거래 내역을 조작하거나 이윤을 축소 보고해 내지 않은 세금의 총액이 15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미국 국세청은 상모솔새 프로젝트에 쓰인 방법이 법적으로 근거가 없는 불법, 혹은 편법이라고 주장했고, 아마존은 이에 맞서 구체적인 내역을 밝히며, “아마존은 우리가 사업을 하는 모든 나라, 모든 지역에서 내야 하는 세금을 성실히 냈다”는 입장을 덧붙였습니다.
아마존이 유럽 진출의 교두보로 룩셈부르크를 선택하고 계약을 맺은 것은 2003년의 일인데, 당시 룩셈부르크 정부로부터 세제 감면 혜택 등을 포함해 파격적인 제의를 받기 직전 아마존의 세무팀장이 당시 장끌로드 융커(Jean-Claude Juncker) 내각의 기획재정부와 직접 연락을 주고 받은 기록이 공개됐습니다. 2003년 룩셈부르크 총리였던 융커는 현재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융커는 2014년 룩셈부르크 정부가 조세피난처 역할을 하며 다국적 기업의 탈세를 도왔다는 스캔들이 터졌을 때 2003년 자신이 이끌던 정부가 아마존에게 지나친 혜택을 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자, 당시 정부는 법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며 선을 그었습니다.
감사법인 PWC 출신으로 2014년 관련 문서를 공개하는 데 일조한 앙트완 델투어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상모솔새 프로젝트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아마존이 미국에서 벌어들인 소득을 세무 당국에 보고하는 방식이 법적으로 정당했는지를 둘러싼 의혹이 충분히 제기될 만하다고 말했습니다.
“아마존 같은 다국적기업들이 국제적으로 조세 체계에 있어 공조가 잘 일어나지 않는 데서 비롯된 허점을 파고든 것도 문제지만, 일부 나라들이 다국적 기업의 이러한 조세 회피 전략을 돕거나 이를 조직적으로 방조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미국 국세청은 상모솔새 프로젝트의 목적이 “미국에서 법인세를 내지 않기 위함” 단 하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국세청은 핵심 소프트웨어, 특허권과 트레이드마크, 브랜드를 포함한 마케팅 자산 등 무형 자산(intangible assets)을 자회사와의 사내 거래를 통해 룩셈부르크에 세운 법인으로 이전한 것부터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룩셈부르크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무형 자산이 비과세 대상입니다.
국세청은 상모솔새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가동된 2006년부터 아마존이 내지 않은 세금이 15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15억 달러를 10년 가까이 내지 않으면서 발생한 이자까지 받아내기 위해 국세청은 아마존이 고의로 누락한 수익 내역을 밝혀내려 하고 있습니다.
아마존은 의혹을 완강히 부인하며 반대 논리를 펼치고 있습니다. 핵심 쟁점은 사내 거래를 하면서 소위 이전 가격을 조작했느냐 여부입니다. 다시 말해 상품이나 서비스, 자산을 자회사끼리 거래할 때 시장에서 평가받을 만한 적정 가격을 매겼느냐, 아니면 다른 목적을 위해 가격 혹은 사용료를 터무니없이 높거나 낮게 책정했느냐가 쟁점이 되는 겁니다.
국세청은 아마존이 미국 법인에서 룩셈부르크 법인으로 자산을 이전할 때 합법적이지 않은 가정을 동원해 자산 가격을 터무니없이 낮게 매겼다고 주장했습니다. 뒤이은 아마존의 해명도 논리적으로 전혀 맞지 않다고 꼬집었습니다. 국세청 측에서 참고인으로 신청한 워싱턴에서 일하는 세무 전문가 다니엘 프리스치는 “아마존이 룩셈부르크에 유럽 본사를 세우기 전에 받은 세무 관련 컨설팅에서 아마존 세무팀의 방침이 널리 통용되는 방식과 다르고 납세 계획에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고 증언했습니다. 아마존은 여기에 반박했습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도 미국 국세청과 별도로 아마존의 조세 회피 여부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복잡한 상모솔새 프로젝트에서 의혹이 되는 부분을 최대한 간추려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거래 주체는 A. 아마존 미국 자회사들, B. 아마존 유럽 지주회사(Amazon Europe Holding Technologies), C. 주식회사 아마존 유럽(Amazon EU Sarl) 이렇게 세 곳입니다.
- B는 미국 밖에서 아마존의 지적 재산권을 행사할 권리를 갖는다.
- B가 유럽에서 아마존 사업을 총괄하는 C에게 지적 재산권을 행사할 권한을 부여한다.
- C는 2에 대한 대가로 B에 매년 수백만 유로를 로열티로 지불한다. (이 로열티는 비과세 대상) C가 올리는 수익, 이윤의 많은 부분이 로열티로 빠져나간다. 과세 대상에 해당하는 C의 이윤이 비과세 대상인 로열티 명목으로 B로 들어가는 것인데, 유럽연합 당국은 이 로열티가 지나치게 부풀려 책정되는 것 아닌지를 조사하고 있다.
- B는 지적 재산권을 행사한 데 대하여 A에 일종의 사용료를 지불한다. 미국 당국은 이 사용료가 지나치게 낮게 책정되는 것 아닌지를 조사하고 있다.
아마존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법인세는 수익이나 매출이 아니라 이윤에 부과하는 것인데, (유럽에 진출하면서 지출한) 높은 초기 투자비용, 경쟁이 치열하고 원래 마진이 크지 않은 소매업의 특성을 고려하면 아마존의 이윤은 늘 높지 않았다. 아마존은 2010년부터 지금까지 유럽에만 150억 유로를 투자했고, 지난해에만 1만 개가 넘는 일자리를 창출해 현재 유럽에서 4만 명 이상을 고용하고 있다.
상모솔새 프로젝트는 다른 다국적기업들이 채택한 절세 혹은 감세 전략, 정부와 시민단체로부터는 조세 회피 혹은 탈세라고 비난받는 전략과 공통점이 있습니다. 대단히 고부가가치에 해당하는, 하지만 정확한 값을 매기는 건 쉽지 않은 지적 재산권 같은 무형 자산을 룩셈부르크를 비롯한 조세피난처에 세운 자회사 소유로 이전하는 식으로 세금 납부액을 줄이는 방식이 그렇습니다.
지난달 영국 정부는 구글과의 치열한 줄다리기 끝에 버뮤다에 있는 자회사에 값비싼 로열티를 지불해 온 구글(정확히는 모회사 알파벳)이 지금껏 내지 않은 세금에 대해 추징금을 부과했습니다. 이에 대해 추징금 액수가 너무 적다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지난 20년간 아마존은 미국 정부에 내야 할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왔는데, 일부에서는 아마존이 가격 경쟁에서 경쟁 업체들보다 우위에 설 수 있던 이유가 공격적인 조세 회피 전략이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벨기에 녹색당 출신의 유럽연합 의원인 필립 람베르츠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아마존은 세금을 덜 낼 수 있는 방법을 최대한 활용해 중소 업체들을 몰아낸 셈”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사회적인 관점에서 공공재를 생산하거나 기여한 게 거의 없다고 봐야죠. 그저 제도의 맹점을 아주 효과적으로 파고 들었을 뿐이니까요.”
최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유럽에 있는 다국적 기업들의 납세 전략을 유럽 각국 정부와 시민에게 공개하도록 강제할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람베르츠 의원은 유럽연합의 처방은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내용을 살펴보면) 빠져나갈 구멍이 너무나 많은 규제예요. (유럽연합 집해위원회가) 정말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아마존은 이 정도 규제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해오던 대로 세금을 줄여서 낼 수 있을 겁니다.” (가디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