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신경외과 의사의 죽음
2016년 2월 16일  |  By:   |  건강  |  No Comment

길고 힘든 신경외과 수련의 과정을 마치기까지 2년이 채 남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폴 칼라니티(Paul Kalanithi)가 자신의 몸 곳곳에 퍼져 있는 종양을 발견한 것은. 당시 그는 폐암 4기였습니다.

그에게 남은 시간은 2년 남짓, 폴은 신경외과 의사가 되려는 꿈을 계속 좇아 환자를 돌보는 일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내와 서둘러 아이를 낳아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문학을 사랑했던 폴은 글솜씨를 발휘해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이자 동시에 의사로 보낸 삶의 마지막 페이지를 담담히, 하지만 강렬하게 써내려갔습니다.

2015년 3월 9일, 폴은 37살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폴의 글은 <When Breath Becomes Air>라는 제목의 책이 되어 세상에 나왔습니다. 책을 알리는 일은 아내인 루시 칼라니티(Lucy Kalanithi)가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NPR에 출연한 루시는 말했습니다.

“달콤씁쓸한 감정이랄까요. 정말 그래요. 정말 슬프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래도 정말 기쁜 생각이 공존하고 교차하고 그러더라고요. 폴이 죽은 지 이제 11달이 지났어요. 하지만 여기저기서 폴을 추억할 수 있고 제가 지금 어떤 느낌인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야기하고 털어놓을 수 있다는 건 제게 정말 큰 위안이 되는 일이거든요. 물론 폴이 떠난 건 한없이 슬픈 일이지만, 그래도 지금 이런 기회가 주어진 건 또한 정말 감사할 일인 셈이죠.”

7분 가량 진행된 NPR 인터뷰에서 루시는 책 <When Breath Becomes Air>과 남편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인터뷰 가운데 몇 가지 이야기를 추렸습니다.

* 암이 폴의 뇌로 전이돼 신경에도 손상이 올 것으로 예상됐을 때

언어 능력을 잃는 대신 다섯 달을 더 살 수 있다면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치료 중단 여부를 결정하는 데 기준이 될 만한 신경계의 손상이 있다면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요? 이런 질문은 신경외과 의사에게는 결코 이론적이거나 철학적인 질문이 아닙니다. 매일같이 씨름해야 하는 질문이죠. 물론 쉽지 않은 질문입니다.

폴은 자기 자신의 병마와 어떻게 싸우는 것이 가장 좋을지를 매일 고민했습니다. 이 책의 뒷부분 절반에는 그 과정을 하나하나 담았습니다. 폴은 연수막 병(leptomeningeal disease)이라 불리는 병을 진단받았습니다. 종양이 뇌로 전이된 건데, 쉽게 말해 종양이 뇌와 척추로 침입한 것이죠. 발작이 오거나 언어 능력, 사고 능력이 저해될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폴에게는 (생의 마지막 남은 시간 동안) 책을 쓰고 갓 태어난 딸과 저를 포함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가장 의미있는 일이었는데, 그 의미있는 일을 더는 못 하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죠.

* 딸 엘리자베스 칼라니티(Elizabeth Acadia Kalanithi)

폴은 특히 아빠가 될 기대에 내내 부풀어 있었어요. 엘리자베스는 존재 만으로 우리 가정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생기와 행복을 가져다 주었죠. 폴은 자신이 아프면서도 꼭 아빠가 되고 싶어 했어요. 제가 폴에게 먼저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어요. 그렇게 사랑하는 아이가 나왔을 때 어떻게 보면 얼마 함께 있지 못하고 작별 인사를 해야 할 텐데 그 순간이 너무 고통스럽지 않겠느냐고. 그랬더니 폴이 하는 말이 “그럴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거예요. 헤어지기 싫은, 떠나는 것이 너무 아쉬울 만큼 소중한 사람이 생기는 것은 큰 축복이고 기쁨일 거라는 말이었죠.

* 폴이 스스로 큰 병에 걸리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지켜본 덕분에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게 되었나?

그럼요, 이 이야기를 하려니 또 눈물이 나네요… 폴은 이런 식의 농담을 한 적이 있어요. “불치병에 걸려서 젊은 나이에 죽는다는 것이 죽음을 논리적으로, 지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젊은이에게는 꽤 어울리는 기회 아닐까?” 그냥 이론적인 상황을 가정하고 한 말이 아니라 폴은 진짜로 지금껏 살아왔던 치열한 삶을 계속 살아가기 위해 온 힘을 다했어요. 좋아하던 문학 작품을 파고 들었고, 신경외과 의사 수련 과정도 힘이 닿는 데까지 계속했습니다. 자신에게 온 환자를 덮친 병마와 안그래도 사투를 벌였을 폴에게 자신의 몸에 자리잡은 병마까지 싸워야 할 대상이 하나 더 늘어났던 것이죠. (NPR)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