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버리세요
2015년 12월 23일  |  By:   |  과학  |  1 comment

심리학 연구가 당신의 삶을 바꿀 수 있을까요? 아마 대부분의 심리학 연구는 그러지 못할 겁니다. 예를 들어 예일대학의 한 동료는 기억에 관한 뇌과학적 연구와 아기들이 어떻게 사회적 집단을 이해하는지, 그리고 사이코패쓰가 어떻게 결정을 내리는지에 대해 연구합니다. 이 연구들은 마음의 작동방식을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그 발견은 어쩌면 언젠가는 이 세상을 더 낫게 만들지 모릅니다. 적어도 연구비 제안서에는 그렇게 쓰고 있지요. 하지만 그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외도 있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사회심리학 분야의 결과들입니다. 이 분야에는 설득, 인종차별, 성격, 연애 등과 관련된 놀랍고도 유용한 결과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회심리학 연구중 내 삶을 가장 크게 바꾼 것은 바로 자의식에 대한 것입니다.

2000년 발표된 한 실험에서 심리학자 토바스 길로비치와 그의 동료들은 학부생들에게 그들이 원치않는 – 싱어송라이터인 배리 매닐로우가 그려진 – 티셔츠를 입도록 만들었습니다. 다른 학생들과 한 방에서 일정한 시간을 보낸 이들에게 연구진은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 티셔츠를 눈치챘을 지를 물었습니다. 학부생들은 이들이 실제 본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이들이 자신의 티셔츠를 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여러 실험에서 사람들은 실제보다 더 많은 이들이 자신을 바라본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글리오비치는 이를 “스포트라이트 효과”라고 불렀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생각과 모습, 행동을 신경쓰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이를 “당신이 가졌던 경험 중 당신이 가장 중심이 아니었던 경험은 없다”고 표현했습니다. 따라서 다른 이들도 나만큼 나 자신을 신경쓰리라는 생각을 피하기는 어렵습니다. 바보같은 티셔츠를 입고 있을때 나는 그 티셔츠에 신경을 쓰고 있으며, 따라서 다른 이들도 그러리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일상에서 겪게되는 기쁨과 슬픔을 생각해봅시다. 지난 주 파티에서 했던 부적절한 말 때문에 나는 여전히 기분이 나쁩니다. 어제는 멋진 발표를 한 날이지만 오늘은 일진이 나쁠 수 있습니다. 올해 나는 심리학개론을 열심히 강의했습니다. 지난 해에는 대충 때웠었죠. 이런 기분의 변화는 너무나 뚜렷하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이들도 이를 눈치챌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 연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만큼 타인의 감정을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것을 보였습니다.

속마음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에 관한 실험도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무언가를 숨기라고 요구했을때, 그들은 다른 이들이 자신들의 거짓말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기에서도 스포트라이트 효과가 오류를 만들어냅니다. 다이아몬드를 훔친 후 주머니에 넣고, 그 다이아몬드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거짓말을 할 때, 우리는 그 다이아몬드가 실은 자신의 주머니에 있다는 사실에 매우 신경을 쓰게 되며 이때문에 다른 이들도 이를 쉽게 눈치챌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거짓말은 생각보다 더 잘 먹힙니다.

이런 연구들로부터 우리는 우리가 자신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실질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잘 돌이켜볼 때 우리는 자신이 실패했던 이유 중의 하나가 다른 이들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음을 알게됩니다. 길로비치와 그의 동료들은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우리는 아브라함 링컨의 말처럼 “사람들은 (우리가 한 말이나 행동에) 별로 신경쓰지 않으며, 오래 기억하지도 않는다”는 말을 명심함으로써 보다 충실한 삶을 위해 조심스레 한 발짝을 내딛을 수 있습니다. 물론 링컨은 자신의 다른 연설들과, 특히 이 문장이 이렇게 오래 기억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틀렸습니다. 하지만 링컨 조차도 이런 가치있는 말들을 많이 남기지는 못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자의식을 낮추게 만드는 환경에 스스로를 둠으로써 이 스포트라이트 효과를 이길 수 있습니다. 사회심리학자 귀스타브 르 봉은 1895년 사람들이 집단에 속할 때 자의식이 부분적으로 사라진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군중 속의 개인은 바람에 의해 흩날리는 모래알 속의 모래알과 같다.” 때로 무리에 속함으로써 사람들은 어리석고 잔인한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혹은 파티장에서, 콘서트 장에서, 바 미츠바(유대교의 성년식) 에서 개인과 타인의 경계는 희미해지며 다른 이들과 함께 행동함으로써 우리는 커다란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자의식을 낮추기 위해 다른 이들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이런 “탈자의식(deindividuation)”을 얻을 수 있는 간단한 방법도 있습니다. 술과 흥분제는 자의식을 낮추며, 이는 사실 우리가 이들을 즐기는 이유중의 하나입니다. 어떤 활동에 완전히 빠진 상태를 말하는 “몰입(flow)” 상태일 때 우리는 자신을 잊을 수 있으며, 명상을 통해서도 여기에 이를 수 있습니다. 나는 비디오 게임 역시 자신을 잊게 만든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자의식을 높이고자 한다면, 다른 사람이 당신을 쳐다보는 상황을 만들면 됩니다. 이는 사실 상식에 속하는 것이죠. 하지만 그저 벽에 사람의 눈 모양을 그려놓는 것 만으로도 그런 효과가 발생한다고 말하면 당신도 놀라게 될 겁니다. 사람들은 눈 모양 그림이 있을 때 착한 일을 더 많이하며 나쁜 짓을 덜 합니다.

자의식을 상승시켜야할 경우가 있긴 할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스포트라이트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우리를 더 자유롭게 할 뿐 아니라 더 많은 긍정적인 효과들을 준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명상을 통해 자의식을 낮춤으로써 사람들은 편견을 버리게 되며 다른이에게 더 공감하게된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즉 우리는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버림으로써 모든 면에서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을것이라는 뜻입니다.

(아틀란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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