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생적 테러, 학교 교육으로 막아내야 합니다
지난주 발생한 샌버나디노 총기 난사 사건은 미국을 큰 충격에 빠트렸습니다. 범인 두 명 가운데 타시핀 말릭은 얼마 전 파키스탄에서 들어온 이민자였지만, 사이드 파룩은 미국에서 태어나 공립 학교를 거쳐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을 다닌 토박이라는 점에서 파장이 더욱 컸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IS에 대한 추가 공습을 촉구했고 국내에서는 총기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는 예상대로 공화당의 반발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미국에서 16년간 정규 교육을 이수한 미국 시민이 어떻게 조국에 총을 들이대게 되었는가를 소리높여 묻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번 사건은 어쩌면 미국의 대외 정책이나 법 집행 뿐 아니라 교육 시스템이 실패하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미국에서 학교란 우리를 “미국인”으로 만들어내는 주요 메커니즘이었습니다. 19세기 초반 미국이라는 거대한 신생국이 탄생하자, 미국인들이 공유할 수 있는 정체성을 심어줄 체계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학교는 오랫동안 아이들에게 미국이라는 국가의 규범과 전통, 신념을 심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시민 교육은 20세기 내내 미국 교육 시스템의 핵심이었습니다. 학교는 정규 과정을 설치해 학생들에게 미국인의 권리와 책임을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베트남전쟁과 워터게이트 사건을 계기로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이런 식의 학교 교육이 미국이라는 나라의 악행을 덮기 위한 애국주의적 선동이라는 비판이 일기 시작한 것이죠. 또한, 졸업 후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직업 관련 지식을 배우기도 바쁜 마당에, 시민 교육은 사치라는 지적도 나왔죠.
2002년 아동 낙오 방지(No Child Left Behind) 정책의 등장과 함께, 미국 교육은 읽기와 수학이라는 주요 과목을 강조하게 됩니다. 시민 교육이 포함된 사회 과목들의 입지는 좁아졌습니다. 파룩이 학교에 다닌 시기는 이미 학교에서 사회 과목이 축소된 시기였죠.
이른바 “자생적 테러리스트”는 또 있었습니다. 올 초, IS에 가입하기 위해 시리아로 향하다 체포된 커플도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 시민으로, 미시시피 주립대의 학부생과 예비 대학원생이었죠.
이런 상황에서 시민 교육의 중요성이 다시 대두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샤를리 엡도 총기 난사 사건 직후, 프랑스에서는 학교마다 묵념의 시간을 가졌는데 일부 무슬림 학생들이 범인들을 칭송하며 묵념을 방해한 일이 200여 건이나 보고되었습니다. 물론 이슬람교에 낙인을 찍기 위해 연출된 일이라는 반론도 있었죠. 당시 모로코 이민자 출신의 프랑스 교육부 장관은 “프랑스의 학교 시스템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고 인정하면서, 프랑스 역사를 더 가르치고 국가를 부르도록 하며 프랑스어 교육을 강화하는 등 ‘공화주의적 가치’를 널리 퍼뜨리기 위해 정부가 더 노력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자 일부 교사들은 국가를 부르게 하는 것이 소외감을 느끼는 가난한 무슬림 청소년들에게 무슨 교육적 효과가 있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미국에서도 이제 와서 성조기를 휘날리며 미국이 얼마나 위대한 국가인지를 가르치는 것은 무의미한 조치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미국의 역사와 정부, 그리고 그 복잡성에 대해 더 잘 가르치는 것입니다. 시민이 누려야 할 자유가 전쟁이나 국가적 위기 상황에 어떤 식으로 침해되었는지를 가르쳐야 하고, 동시에 사회 구성원이 서로에 대해 갖는 의무와 민주주의의 규범들, 의견 차이를 폭력 없이 대화로 풀어나가는 방법을 잘 교육해야 합니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전 세계 무슬림에게 자신들의 사상을 전파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한, 이슬람 극단주의는 가장 위험한 종류의 테러 요인일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 발생한 가족계획연맹(Planned Parenthood)에 대한 테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 삶의 터전과 시민적 가치를 위협하는 자생적 테러리스트가 반드시 이슬람 극단주의자인 것은 아닙니다. 현 상황에서 해결책은 교육입니다. 군이 중동에서 적의 기지를 공격할 수 있고 사법당국이 미국 내 테러 음모를 적발할 수 있겠지만, 자생적 테러리스트의 등장을 막아내는 일은 바로 학교에 주어진 역할입니다. (폴리티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