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콜럼비아 우주왕복선 참사
2003년 2월 1일, 우주왕복선 콜럼비아호는 16일간의 임무를 끝내고 지구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남자 승무원 다섯 명과 여자 승무원 두 명은 지구 궤도에서 각자의 실험을 수행한 터였습니다.
그들은 우주복을 입었고 지구로의 귀환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구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사실 그들의 운명은 16일 전, 우주왕복선이 케이프 카나베랄을 출발할 때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우주선의 연료탱크 부위에 서류가방 크기의 절연물질이 떨어져 나가면서 왕복선 왼쪽 날개 위 방열 타일에 균열을 냈던 것입니다. 승무원들은 자신들의 귀환이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로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파편의 비
미국 동부 시간으로 오전 9시가 되기 전, 우주왕복선이 미국 60km 상공에서 지구 대기로 재진입했을 때, NASA와 이들간의 연락은 끊어졌습니다. 사건이 파악되기까지 20분 동안 컨트롤 센터에는 차가운 침묵만이 흘렀습니다. 텍사스 60km 상공에서 우주왕복선은 파괴되었고, 승무원 일곱명은 모두 사망했습니다.
NASA는 우주왕복선의 잔해를 찾기 위해 최대규모의 수색작전을 펼쳤습니다. 파편들은 텍사스와 루이지애나, 아칸소까지 흩어졌습니다. 전체 부품의 40%만이 발견되었고 나머지는 지금까지도 회수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발견된 부품들만으로도 우주왕복선의 마지막 순간을 충분히 재현할 수 있었습니다. 우주선이 지구로 진입했을 때 속도는 시속 수천 킬로미터에 달했고, 가열된 대기는 금이간 방열타일 안으로 파고들었습니다. 이 타일들은 재진입시의 표면온도인 1,650도를 버틸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초고온의 기체가 날개에 난 구멍을 통해 왕복선 내부로 들어오면서, 콜럼비아호는 균형을 잃고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조사 결과, 절연 물질이 왼쪽 날개와 부딪혔었다는 사실을 NASA는 이미 알고 있었으나 이것이 문제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콜럼비아호 참사 당시의 항해 책임자였던 웨인 헤일은 자신의 개인 블로그에 그 충돌이 콜럼비아호의 열보호 시스템(TPS, Thermal Protection System)에 피해를 입혔을 수 있다는 주장이 내부에서 제기되었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이 임무의 총책임자였던 존 하폴드는 콜럼비아호의 승무원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며, 따라서 이 사실을 승무원들에게 알릴 필요가 없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는 우주왕복선 재진입 전문가였습니다. 누구보다도 우주선의 재진입시에 필요한 항법, 제어, 외부 열기 문제 등을 잘 알았습니다. 그 충돌이 일으켰을 균열이 회의 중에 언급되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도 알겠지만, TPS에 생긴 문제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문제가 생겼다 해도 모르는 게 나아요. 승무원들도 그럴 겁니다. 그들에게도 성공적인 임무 수행 후 예기치 못한 사고로 사망하는 것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안 채 궤도 상에서 공기가 다 떨어질 때까지 머무르는 것보다 더 낫지 않겠어요?’ ”
2008년, 이 사고에 대한 종합 보고서는 승무원들이 사고 발생 후 최대 41초간 생존했을 것으로 추측했습니다. 이 400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는 비록 이 사건에서 그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지만, 이와 같은 감압과 극단적인 상황을 겪게 하는 것은 옳지 못하며, 따라서 미래의 우주선은 그런 사고에 대해 “승무원의 생존 가능성을 높일 수 있도록, 보다 통제가능한 우주선 포기 시스템을 만들 것”을 권했습니다.
또한 이 보고서는 NASA 내부에 존재하는 절연물질이 가진 문제를 다른 안전 이슈보다 덜 중요하게 여겼던 분위기를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콜럼비아 이후 3년간 우주왕복선은 출항하지 못했습니다. 2006년 7월 4일, 남아있는 세 척의 우주왕복선 중 하나인 엔데버호는 케이프 카나베랄을 출발해 13일간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귀환했습니다. 2011년 은퇴할 때까지 이 우주선은 자신의 임무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B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