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지진보다 무서운 수인성 전염병
지난 4월 수도 카트만두를 비롯한 중부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든 강진 이후 네팔 전역에 장마가 지나간 뒤 수인성 전염병이 돌지 않을까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네팔 인구의 2/3가 화장실 없이 생활합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인 네팔은 상하수도를 비롯한 기본적인 위생시설이 크게 부족하고, 대도시에 있는 수도관조차 수십 년 이상 된 낡은 것들이라 물이 새고 비가 많이 오면 오염물질이 스며들기 일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온 지진은 엎친 데 덮친 격이었습니다.
여전히 수많은 네팔 어린이들이 설사병이나 콜레라를 비롯한 수인성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그나마 2000년대 들어 화장실 이용을 장려하고 볼일을 본 뒤에 꼭 손을 씻는 습관을 들이도록 적극적으로 캠페인을 진행한 것이 주효해 유아 사망률이 많이 낮아진 건 다행입니다. 설사병으로 인한 심각한 탈수 증세를 완화하는 데 효과가 있는 약들을 구비해놓고 질병과 맞서 싸운 지역 보건소들도 여기에 한몫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하수도 시설이 사실상 전무하기 때문에 비라도 많이 내리면 윗마을에서 흘러온 더러운 물이 아랫마을의 식수를 오염시키는 일이 빈번합니다. 깨끗한 물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인 걸 알게 된 구호 단체들이 우물을 파는 일에 발 벗고 나서기도 했습니다.
네팔 강진 이후 장마철이 지나고 나면, 특히 화장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난민 캠프를 시작으로 콜레라가 돌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왔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네팔의 상황은 2010년 강진이 일어난 지 열 달 뒤 콜레라가 창궐해 70만 명이 병에 걸리고 무려 9천 명이 숨진 아이티의 사례와 흡사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콜레라가 돌지 않고 있습니다.
네팔과 아이티 사이에는 사실 결정적인 차이점이 하나 있습니다. 가난하고 위생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강진으로 그나마 남아있던 모든 것마저 지진으로 파괴된 건 똑같지만, 당시 아이티는 수십 년 동안 콜레라가 돈 적이 없어서 누구도 콜레라에 면역이 없었습니다. 반면 네팔은 콜레라를 달고 사는 나라입니다. 성인의 대부분은 어렸을 때 콜레라를 앓았다가 회복해 면역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아이티에 콜레라균을 옮긴 것도 UN 평화유지군으로 주둔한 네팔 군인들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네팔 출신 군인들이 주둔하던 아르보니떼 강 유역의 생활 하수가 땅에 스며든 것으로 추정되는데, 문제의 콜레라 바이러스는 네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이러스와 같은 종류인 것으로 나중에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네팔 사람들의 면역 체계만 믿고 위생 시설을 보수하고 위생적인 생활 습관을 장려하는 일을 게을리할 수는 없습니다. 어쨌든 지금까지 큰 전염병 없이 장마철을 지나온 건 UN과 주요 구호 단체, 의료진의 피땀 흘린 노력 덕분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하지만 깨끗한 물을 구하기가 여전히 너무 어렵기 때문에 끝까지 방심할 수 없습니다. (뉴욕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