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은 위기에 처했는가?
2015년 9월 3일  |  By:   |  과학  |  6 Comments

“재현 프로젝트”라고 불리는 버지니아 대학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100개의 심리학 실험 중 60% 이상이 재현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연구 결과는 심리학이 과학적인 학문인지에 대한 의구심을 가중시켰습니다. 하지만, 재현이 되지 않는 것은 본래 과학의 특성입니다. 가령, 같은 현상에 대해 잘 설계된 두 개의 실험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똑같아 보이는 두 개의 실험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A 연구는 예상된 결과를 보였지만, B 연구는 그와 다른 결과를 보였습니다. 이 경우, 이 실험은 재현에 실패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두 실험이 애초에 잘못 설계됐다는 뜻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두 연구가 모두 잘 설계됐고 오류 없이 진행되었다고 해도 A 연구에서 발견된 현상이 언제 어디서나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상황에서만 나타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제 과학자의 의무는 그러한 현상을 유발하는 ‘특정 상황’을 발견해내어, 새롭고 더욱 발전된 가설들을 정립하고 이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수년 전, 과학자들은 초파리의 동그랗게 말린 날개를 결정하는 유전자를 밝혀내는 실험을 수행하였습니다. 실험실 내에서 이루어진 연구 결과는 빈틈이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온도와 습도가 제각각인 실제 자연에서는 동그랗게 말린 날개를 결정하는 유전자가 그 효과를 뚜렷하게 나타내지 못했습니다. 단순히 접근하면 이 실험도 “재현에 실패한 실험”입니다. 하지만 보다 거시적으로 접근하면, 진화 생물학자인 리처드 르원틴(Richard Lewontin)의 말처럼 이러한 “실패”는 생물학자들에게 환경과 상황에 따라, 같은 유전자라도 다른 특성이나 행동을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사건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원자입자들(subatomic particles)이 뉴턴의 운동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냈을 때 물리학자들은 뉴턴의 법칙이 “재현에 실패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들은 뉴턴의 법칙이 모든 상황이 아니라 특정한 조건 하에서만 성립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 깨달음은 결국 양자역학이라는 학문 분야의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심리학에서 우리는 조건을 바꾸면 재현되지 않는 많은 현상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실험은 바로 불안장애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설명하는 “공포 학습”에 관한 실험입니다. 과학자들은 전기 단자가 연결된 작은 상자 안에 쥐를 가두었습니다. 그들은 쥐에게 큰 소리를 들려준 후에 전기 충격을 주었습니다. 전기 충격을 받은 쥐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으며, 심장 박동수와 혈압이 높아졌습니다. 이 과정을 반복한 결과, 쥐들은 전기 충격이 없이 큰 소리만을 들어도 전기 충격을 가했을 때와 같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처음 이 실험이 진행되었을 때 이와 같은 “공포 학습”은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것으로 알려졌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과학자들은 상황에 조금씩 변화를 주었고, 쥐들은 그 자리에 얼어붙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큰 소리가 들릴 때 쥐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묶어두면, (사실, 전기 충격을 주면 쥐가 제 자리에 얼어붙기 때문에 결과에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 예상할 수 있지만) 심장 박동수는 올라가지 않고 오히려 감소했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도망갈 공간이 있는 상자에 가두었을 때는 쥐들은 제자리에 얼어붙기보다 도망가는 쪽을 택했습니다. 이처럼 재현에 실패했다고 기존 실험이 가치 없는 실험이 되지는 않으며, 오히려 새로운 발견의 토대가 되기도 합니다.

여전히 과학의 많은 부분은 여러 현상을 보편적인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특수한 환경이나 상황의 영향을 간과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실제 현실과 다릅니다. 심리학자들은 상황의 중요성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인지하고 있습니다. 실험을 할 때, 심리학자들은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방해물을 가능한 피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비판자들은 실험의 재현성에 있어 상황과 환경의 강력한 힘을 간과하는 듯합니다. 그들은 재현에 실패하는 것이 또 다른 과학적 발견을 도울 수 있는 과학적 단서인가에 대해 고려하기보다 단순히 “실험 결과가 똑같이 나오나”에 관심이 쏠려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과학 분야와 마찬가지로 심리학에도 엉성하게 설계된 실험이나 데이터를 조작한 질이 나쁜 연구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버지니아 대학의 실험 재현 프로젝트에서 암시하는 것과 달리, 심리학에 “재현 위기”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재현 실패의 결과를 “위기”라고 명명하는 것은 오히려 과학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꼴입니다.

과학은 보편적 진리에 이르는 직선 항로를 비춰주는 일렬로 질서정연하게 지어진 등대와 같은 집합체가 아닙니다. 네이처(Nature)의 편집장인 헨리 지(Henry Gee)의 말을 빌리자면 과학은 가설에 대한 의문을 수량화하고, 특정 현상이 나타나는 환경을 발견하는 방법입니다. 재현에 실패하는 것은 과학의 오류가 아닌 과학의 특징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과학적 발견의 항로-밝혀지지 않은, 매우 아름답게도 험난한-를 항해할 때 우리를 비춰주는 등불과도 같습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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