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인도주의 단체 내의 인종주의
2015년 8월 25일  |  By:   |  세계, 칼럼  |  No Comment

저는 대학을 다니던 중 휴학을 하고 수단의 한 구호 단체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곧, 일에 대한 의지나 능력이 딱히 특출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현지인 동료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승진을 하게 되었습니다. 1년 만에 훨씬 경력이 오래 된 동료들을 제치고 100만 파운드의 예산을 집행하는 수송 부문의 책임자가 된 것이죠. 승진의 이유는 내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부정부패에 연루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현지인 중에서 최악의 인물을 전제로 한 편견 덕분이었던 것입니다. 애초에 진로를 이 분야로 정했을 때 나는 “인류는 평등하고 세계는 하나”라고 굳게 믿었지만, 현실은 백인 책임자가 현지인을 거느리고 일하는 제국주의적 그림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현실에 물들어 갔습니다. 부모뻘의 동료들에게 짜증을 내거나 청소부가 게으르다며 불평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지금껏 내가 말해온 이상적인 세계와 내가 실제로 만들어가고 있는 세계가 점차 멀어지고 있다는 것은 인식하지 못한 채, 전형적인 “백인 책임자”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진보적인 NGO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이런 현실은 거의 논의되지 않습니다. 구호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저들을 돕는” 숭고한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나라에 손님이자 방문객으로 와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곤 하죠. 나는 세상의 불평등을 없애는 데 기여하고 싶었지만, 회의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불평등한 세상에서 이득을 보는 사람이 그러한 사실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요? 개인이 그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제가 만났던 사람 중 그나마 “베푸는 자”의 역할에 빠지지 않고 진정으로 지역사회에 동화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성직자나 선교사들이었습니다. 가톨릭교와 식민주의가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불편한 역사가 있기는 하지만,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은 성직자들이었죠.

물론 이 분야에도 최근 들어 변화가 있었습니다. 현지 출신 직원이 구호 단체나 인도주의 기구에서 중요한 자리로 승진하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대부분의 구호 단체가 유럽이나 미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만큼 고위 간부가 대부분 선진국 출신이기는 하지만, 인도주의적 사업의 역사 자체가 백 년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 앞으로 또 상황이 더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방글라데시의 NGO인 방글라데시 농촌발전위원회(BRAC)처럼 현지에서 시작된 구호 단체 가운데 좋은 사례도 생겨나고 있고요.

제가 구호 단체에서 일하면서 배운 점이 있다면, 그것은 불평등한 상황이 개인을 무의식적으로 타락시킨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불평등이 인종과 연관되어 있을 때 타락의 종류는 더 나쁜 것이 됩니다. 개인이 자기 주변의 권력 관계에서 영향을 받지 않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인도주의 사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점을 반드시 마음에 새기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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