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과잉보호와 완벽주의가 부른 미국 대학생들의 자살 (1/3)
2015년 7월 28일  |  By:   |  세계  |  No Comment

옮긴이: 명문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이미 인생의 목표로 정해진 채 부모가 정해놓은 길을 따라 걸어오기만 한 아이들은 대학에 입학한 뒤 별것 아닌 변화에도 큰 좌절과 시련을 맛봅니다. 부모가 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줬던 아이들에게 홀로서기란 너무나 힘겨운 과제입니다. 늘 완벽하기만을 요구받아온 아이들이 작은 실패에도 크게 낙심해 존재론적 회의마저 느끼며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때, 그 책임은 학생 자신에게보다도 부모의 과잉보호와 대학 시스템, 끊임없이 완벽하기만을 요구하는 문화에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이 글을 읽는 부모님들은 여러분의 아이가 스스로 판단을 내려야 할 시기가 왔을 때 주체적인 판단을 내리고 홀로 설 수 있도록, 모든 문제를 나서서 해결해주는 대신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헤쳐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응원하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이 글을 읽는 청소년, 청년들은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휘둘려 스스로 자존감을 떨어뜨린 채 괴로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뉴욕타임스가 미국 대학 캠퍼스에서도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학생들의 자살 문제를 다루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뉴스페퍼민트는 오늘부터 세 편에 나눠 이 글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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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드윗(Kathryn DeWitt)은 고등학교 때까지 어디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우수한 학생이었습니다. 운동을 곧잘 해 육상 선수로 활약했고, 학교를 대표해 주 교육청에서 주관한 리더십 프로그램에 줄곧 참가한 것은 물론, 공부도 잘해서 대학 심화 과정 과목(Advanced Placement test: 고등학생들이 대학교 입학 전에 대학 학점을 인정받을 수 있는 수업을 미리 듣는 것)을 여덟 개나 이수했습니다. 쉽게 말해 학교에서 모르는 이가 없는 ‘전교 1등’, ‘사기 캐릭’, ‘슈퍼스타’ 쯤 됐다고 봐도 됩니다.

캐서린을 향한 부모님의 기대는 상당히 높았습니다. 심화 과정 과목 수업의 중간시험 성적과 순위가 매일 업데이트되는 오후 5시가 되면, 캐서린보다 먼저 성적을 확인하는 건 엄마의 몫이었습니다.

“육상 연습을 마치고 집에 오면 엄마가 가끔 “성적이 떨어졌더라, 어떻게 된 거니?” 하고 묻곤 하셨어요. 제가 그럴 리가 없다, 어딘가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고 하면 “그렇지? 엄마도 그런 것 같았어.”라고 말씀하시곤 했죠.”

실제로 성적이 떨어진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몇 번 대학교 측이 점수를 잘못 입력해 성적이 잘못 표기됐던 적은 있었지만. 캐서린은 여덟 과목에서 모두 A 학점을 받고 심화 과정을 이수합니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명문 대학 중 한 곳인 펜실베이니아대학(University of Pennsylvania)에 입학합니다. 추가 합격으로 입학했지만, 캐서린은 뛸 듯이 기뻤습니다.

입학 후 첫 2주 동안 캐서린은 누구보다도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여학생 사교 클럽에 가입하고, 초등학생들에게 방과 후 학습을 지도하는 활동에 참여하기로 했으며, 부모님이 모교인 스탠퍼드대학에서 활동했던 기독교 동아리에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대학교에 와서 보니, 그토록 오고 싶던 명문 대학이라 그런지, 정말 완벽한 친구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실력도, 열정도 자기보다 월등한 것 같은 친구들을 보며 캐서린은 처음으로 자기가 평범한, 혹은 평균 이하인 학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친구 한 명은 국가대표급 피겨 스케이팅 선수였어요. 과학 경시대회에 나갔다 하면 우승을 차지했던 친구도 있었고, 그냥 전부 다 엄청난 친구들이었어요. 저도 친구들에게 뒤지지 않고 싶다, 친구들만큼 뛰어난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매일 아침 학교 소식을 알려오는 이메일에는 교수, 학생들이 상을 받거나 장학금을 탔다는 소식이 가득했습니다. 캐서린의 얼굴에는 아직 여드름이 채 사라지지 않았는데, 어떤 친구는 매일 풀메이크업에 예쁜 옷을 입고 수업에 들으러 왔습니다. 벌써 방학 때 인턴십을 어디서 할지 이야기하는 앞서나가는 친구들을 보면, 이번 주 수업 과제도 다 못 끝내고 있는 자신이 초라해졌습니다. 소셜미디어에 친구들이 올린 사진만 보면, 친구들은 멋진 파티에 다니며 진짜 대학 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상하게 그 친구들은 나보다 공부도 잘 하는데, 언제 시간이 나서 저렇게 노는지 캐서린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인스타그램에 올린 친구의 음식도 지금 내가 먹는 저녁보다 맛있어 보였습니다.

캐서린은 점점 자존감을 잃어갔습니다. 특히 수업시간에 옆자리에 앉은 남학생이 다른 친구에게, “지금 내 옆에 앉은 여자애 너무 못생겼다. 쟤한테 말을 거느니 비행기에서 뛰어내리겠어.”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걸 우연히 보고 말았을 때의 충격은 너무 컸습니다.

그러던 2014년 1월 17일, 펜실베이니아대학의 같은 1학년 학생 중 매디슨 홀러란(Madison Holleran)이라는 학생이 주차타워 꼭대기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매디슨은 신입생 중에서도 이것저것 재능이 뛰어나고 사교성도 좋아 인기가 많던 학생이었습니다. 매디슨을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그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던 캐서린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날 캐서린의 블로그에 써놓은 일기를 보면 캐서린의 심정이 어느 정도 짐작이 갑니다.

“이럴 수가! (매디슨) 너는 살아야 할 이유가 수십 가지는 더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가버린 거야? 내가 너보다 먼저 갔어야 하는 건데!”

친구들 사이에선 늘 밝은 얼굴을 하며 수업도 열심히 듣고 과제도 그럭저럭 해내던 캐서린이지만, 그때 캐서린은 이미 면도칼도 샀고, 가족, 친구들에게 보낼 유서를 갈음할 편지도 대부분 써놓은 상태였습니다.

매디슨의 죽음은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13개월 동안 일어난 여섯 건의 자살 가운데 세 번째 사건이었습니다. 학생들이 연이어 목숨을 끊는 끔찍한 일을 겪은 건 펜실베이니아대학뿐만이 아닙니다. 올해 툴레인대학교 학생 네 명이, 애팔래치안대학에서 최소 세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2009-10학년도에 코넬대학에서는 여섯 명이 잇따라 목숨을 끊었고, 2003-04학년도에 뉴욕대학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대학 밖으로 눈을 돌려 15~24세 인구 전체의 자살률을 살펴봐도 2007년 10만 명당 9.6명에서 2013년 11.1명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절반 이상이 심각한 심리적, 정신적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2년 만에 13%나 증가한 수치입니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Penn State University)의 대학 정신건강 센터의 자료를 보면 불안 증세와 우울증이 대학생들에게 나타나는 가장 흔한 정신 질환입니다.

매디슨 홀러란의 죽음 이후 펜실베이니아대학은 즉각 대책위원회를 꾸려 학생들의 정신 건강 문제를 근본적인 부분에서부터 살폈습니다. 올해 초 위원회가 제출한 최종 보고서에는 학교가 학생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 상담 센터 운영 시간을 늘리고, 고민거리가 있는 학생들이 전화 한 통으로 쉽게 상담사와 연결될 수 있도록 번호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등의 개선책이 담겨 있습니다. 보고서는 “펜실베이니아 학우의 표정(Penn Face)”도 잠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펜실베이니아 학우의 표정(Penn Face)”이란 아무리 지치고 힘들고 슬퍼도, 찡그리지 않고 긍정적인 마음가짐과 밝은 표정을 잃지 않는다는 일종의 생활 지침입니다. 모두가 다 웃고 좋은 일만 말하는데, 나만 찡그린 얼굴로 힘들다고 털어놓기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뭔가 나만 뒤처진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사실 힘이 들 때는 때론 누군가에게 힘들다는 사실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한결 후련하고 위로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펜실베이니아 학우의 표정(Penn Face)”과 같은 학내 문화는 학생들이 힘든 일을 주변에 털어놓기를 주저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름은 조금씩 달라도 펜실베이니아대학 말고도 여러 명문대학이 비슷한 문제를 겪었습니다. 지난 2003년 듀크대학은 특히 여학생들이 모든 면에서 완벽하기를 요구받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하다는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학교 성적, 외모는 물론 재능과 성격까지 완벽해야 한다는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학생들을 더욱 옥죄는 건 이를 악물고 달려들어도 이룰까말까 한 이 목표를 위해 열심히 무언가를 하는 티가 나기라도 하면, 소위 쿨하지 않은 것처럼 비칠지 모른다는 걱정입니다. 스탠퍼드대학에서는 이런 상황을 오리 신드롬(Duck Syndrome)이라고 부릅니다. 수면 위에 유유히 떠 있는 오리가 물속에서 쉴 새 없이 물갈퀴 질을 하는 데 빗대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끝없이 노력해야 하는 학생들, 잠깐이라도 노력을 게을리하면 뒤처질지 몰라 불안해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표현한 겁니다.

펜실베이니아대학 대책위원회의 최종 보고서는 학생들이 받는 어마어마한 중압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성적, 과외 활동, 사교 활동 등 모든 면에서 완벽해야 한다는 인식은 학생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정신 이상을 부르며, 불안 장애나 우울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펜실베이니아대학 학생들의 상담을 총괄하고 있는 윌리엄 알렉산더(William Alexander)는 요즘 학생들이 예전과 확실히 다르다고 말합니다.

“아주 작은, 분명 대단치 않은 실패나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잖아요. (예전 학생들이라면) 아이고, 이번에는 미끄러졌네, 다음번에 더 잘해야지, 하고 말 일들 말이죠. 요즘의 몇몇 학생들은 그런 흔한 실수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여요. 마치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말이죠.”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16년간 학생들을 상담해온 미타 쿠마르(Meeta Kumar)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B 학점을 받는 걸 예로 들어보죠. 아마 저라면, 그리고 제가 아는 많은 사람은 B 학점 받았을 때 아쉬움이야 있겠지만 다음에 더 잘해야지 하고 말았을 겁니다. 그런데 어떤 학생들은 자기 성적표에 B가 찍히는 걸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해요. 인생이 끝장이라도 난 것처럼 크게 낙심하죠.”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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