밈(Meme) 개념의 변화 (2/2)
그러나 정말 밈이라는 개념이 복잡한 디지탈 세상과 문화의 진화에 대해 새로운 통찰을 제시해 준다면 왜 학계는 이 개념을 무시하는 것일까요? 그 답을 찾기 위해 나는, 미메틱스를 마지막까지 지키려했던 수잔 블랙모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녀는 2008년 TED에서 짧은 회색 곱슬머리 중 일부를 파랗게 물들이고 나타나 인상적인 발표를 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그녀가 도킨스, 데닛과 함께”밈 모임(meme lab)”을 종종 가지는 영국의 데본에서 만났습니다. “이 모임은 그렇게 진지한 건 아니에요. 그저 재미로 만난다고 할 수 있죠.” 그들은 때로 실험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중국 돛단배를 종이접기로 만드는 것이죠. 이것도 일종의 밈입니다. 그녀는 인터넷 밈이라는 단어가 유행하던 때의 모임을 기억합니다. “리처드는 자신이 만든 그 단어가 그저 바이럴을 의미하는 인터넷 밈으로 쓰인다는 사실에 화를 냈어요. 밈은 인간의 현재 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매우 강력한 개념인데 말이죠.”
옥스포드에서 심리학을 공부한 블랙모어에게 미메틱스는 과학입니다. 그녀는 19살에 체외이탈 경험을 한 후 텔레파시에 대해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그후 그녀는 이런 초자연적 현상을 지지하는 증거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어쨌든 그녀가 과학의 외연을 넓힌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다는 것이죠. 그녀가 미메틱스에 관심을 보인 것은 어쪄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도킨스는 물론 자신이 밈을 통해 “인간의 문화를 설명하는 거대한 이론을” 만들려 한 것은 아니라고 썼습니다. 그러나 블랙모어는 1999년 자신의 책 “밈 기계(The Meme Machine)”에서 그 일을 시도했습니다. 그녀는 언어의 발달과 인간의 큰 두뇌가 “밈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고 주장합니다. 그녀의 가장 급진적 주장은 바로 “밈이 인간으로 하여금 행동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데닛은 이 생각에 대해 자신의 책 “의식의 수수께끼를 풀다(Consciousness Explained)”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을 몰라요. 하지만, 내 뇌가 다른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구더기처럼 자라나는 똥덩어리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끌리지 않는다는 건 분명하군요… 이런 관점에서는 누가 내 행동의 책임을 지게 되나요? 나인가요? 아니면 밈인가요?” 하지만 데닛 역시 밈 이론을 지지하는 사람 중의 한 명입니다. 그는 전화로 내게 밈을 이용해 우리가 어떻게 문화를 즐기는지를 설명했습니다. 또 대학이라는 제도, 곧 밈이 인간이 그저 유전적 적합도(genetic fitness)만을 따라 이성을 택하지 않게 만들어 준다고 지적했습니다. 블랙모어와 데닛의 책을 읽으면 밈이 바로 정신의 기생충이라는 생각이 어느 정도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우리가 밈에 의해 만들어지고 행동한다면, 우리는 곧 우리가 가진 밈일 것입니다. 데닛이 스스로 말한 것처럼 말이지요.
그러나 밈의 이런 폭넓은 정의가 다시 이를 과학적 관점에서 진지하게 다루기를 어렵게 만듭니다. 유전자와 비교할 때 이 차이는 더욱 뚜렷합니다. 도킨스 역시 밈이 유전자보다 더 모호한 대상이라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유전자의 경우 대립유전자들은 염색체의 정해진 위치를 두고 경쟁하게 됩니다. 그러나 유전자와 달리 밈은 직접 관찰할 수 없으며, 변이는 더 쉽게 일어납니다. 사실 밈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누구도 확신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블랙모어는 미메틱스가 과학이 되지 못하는 “강력한 이유 한 가지”를 이렇게 말합니다. “밈 이론이 아니고서는 발견 불가능했던 어떤 과학적 발견도 사실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블랙모어는 여전히 사람들이 밈을 연구하고 있으며, 단지 그 대상을 밈이라고 부르지 않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밈 이론 중에는 네트웍 이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이론은 컴퓨터 과학, 통계학, 물리학, 생태학, 그리고 마케팅 분야에 걸쳐 사용됩니다. “만약 당신이 미메틱스를 모든 대상, 예를 들어 종교가 어떻게 퍼져나가는지와 같은 문제에 적용해보고자 한다면, 결국 문제는 데이터입니다” 하버드 케네디 스쿨의 미쉘 코스키아의 말입니다. 그녀는 최근 “믿을 수 없을만큼 사진을 잘 받은 남자”같은 밈이 어떻게 성공하는지를 통계적 “의사결정트리”를 사용해 설명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녀에게 인터넷 밈은 그 뚜렷한 변이 및 조회수에 바탕해 마치 실험실에서 유전자를 다루듯이 현실의 문제에 접근하게 해주는 도구입니다.
어쩌면 밈의 개념 역시 스스로 살아남기위해 진화하고 있는 것일지 모릅니다. “인터넷 밈”이라는 용어는 점점 더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콜럼비아 대학의 디지털 인문학 사서인 밥 스콧은 정보 애그리게이터 서비스인 렉시스넥시스(LexisNexis)를 검색해 이같은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인터넷 밈”이 21세기에 들어와 사용되기 시작했고, 2004년 사용량이 증가하기 시작해 매년 2배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고 말합니다.
인터넷 밈의 전염성은 그 자체로 커다란 산업입니다. 버즈피드는 매달 8500만명이 방문하며 이는 뉴욕타임즈의 세 배에 가까운 숫자입니다. 버즈피드의 직원들은 인터넷에서 인기있는 자료들을 찾아 이들과 함께 뉴스, 유머, 광고, “네이티브 광고”등과 잘 엮어 올리고 있습니다. 버즈피드에서 나는 “인터넷 만남 사이트가 내게 추천해주지 않았으면 하는 20가지 사람들”(사실 이 기사는 버진 모바일의 광고입니다), 독극물에 중독된 인도의 아이들에 관한 뉴스, 제이Z 의 새 앨범을 그대로 트위터에 올린 공화당 의원 기사들을 봅니다. “월마트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재미있는 23가지 사실들”은 의외로 광고가 아니었지만, 나는 여기에서 페레티의 나이키 이메일이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과 비슷한 종류의 쿨한 유머가 미국에서 가장 쿨하지 않은 대기업을 광고하는 데 쓰일 수 있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칩니다.
지루한 직장인들을 즐겁게 만들어 주는 일에 어떤 문제가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수조원의 기업가치를 가진 기업이 우리의 마음을 실험실 배양액처럼 사용해 자신들의 생각을 퍼뜨린다는 점은 어딘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나는 도킨스의 생각이 맞을지 모른다고 느끼기 시작합니다. 곧, 밈이라는 개념은 그저 진화한 것이 아니라, 강탈당한 것이라구요. “정보: 역사, 이론, 범람(The information: A History, A Theory, A Flood)”의 저자 제임스 글레익은 밈이라는 개념이 “정보의 관점에서도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그저 운반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우리를 겸손하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물론 블랙모어의 말처럼, 우리의 마음이 단지 밈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다른 인간과 영악한 알고리듬에 의해서도 조종된다는 사실은 우리를 더욱 겸손하게 만들어줍니다. 종교나 문화의 산물이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를 웃게 만드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밈이라는 개념이 비록 실험적으로 접근하기에는 너무 모호한 개념이지만, 적어도 이 개념은 우리가 다른 이들과 어떻게 생각을 주고 받는지에 대한 강력한 은유는 될 수 있습니다. 아마 우리가 밈 이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도움은 결국 이런 것일 듯 합니다. 곧, 재미있는 고양이 동영상을 끄고 다시 해야할 일로 돌아가게 해준다는 것이죠.
(노틸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