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에서 벌어진 비밀 전쟁의 여파, 불발탄으로 남아있습니다
여덟살 난 타오 케이와 친구들은 메콩강 근처 마을에서 30분 가량 떨어진 대나무숲에서 저녁거리를 찾아 헤매다가 조그만 금속구를 발견했습니다. 친구들은 이 금속구가 페탕크(프랑스 전통 구슬치기의 일종-역주)용 공이라고 생각하고 집으로 가져왔죠. 그러나 이것은 40년 전 라오스 공습 당시에 미군 전투기에서 떨어졌던 집속탄이었습니다. 숲에서 주운 공을 가지고 놀던 타오 케이는 그 자리에서 숨졌고, 파편에 맞은 두 사람도 며칠 뒤에 숨졌습니다. 마을 사람 모두를 공포와 슬픔으로 몰아넣은 이 사고는 라오스에서 너무나도 흔한 일입니다. 1964년부터 1973년 사이, 미군은 라오스 상공에서 58만 여 차례의 공습을 실시했습니다. 미군의 타겟이었던 호치민 트레일이 라오스를 관통하기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집중적인 공습이었지만, 미국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이 없기 때문에 “비밀 전쟁(Secret War)”이라 불리는 작전이었죠. 전쟁 후, 불발탄에 목숨을 잃은 라오스인은 8천 여 명, 부상자는 만2천 여 명에 달합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이 라오스의 불발탄 제거에 들인 예산은 연간 250만 달러에 불과했습니다. 올해 예산은 1200만 달러에 달하죠. 이런 변화를 이끌어낸 것은 차나파 캄봉사(Channapha Khamvongsa)라는 라오스계 미국인 활동가입니다. 지난 10년 간 거의 홀몸으로 대정부 로비와 대중 상대 캠페인을 펼쳐온 그녀는 “이 세상에는 일평생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많지만, 불발탄 제거는 해결이 가능한 문제”라고 말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라오스에서는 불발탄 제거팀이 정글과 논밭을 가리지 않고 누비며 활약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만 5만6천 여 개의 불발탄이 제거되었죠. 아프간, 캄보디아, 모잠비크, 앙골라 등 세계 곳곳에서 불발탄 제거를 해온 전문가도 수거되지 않은 불발탄 수를 놓고 보면 라오스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라며 혀를 내두릅니다. 미군은 살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하나의 폭탄이 여러 개의 작은 폭탄을 품고 있는 집속탄을 라오스에 집중 투하했습니다. 이 작은 폭탄들이 진흙탕 같은 라오스의 토질 등 여러 이유로 터지지 않고 남아 여전히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것입니다.
차나파의 가족은 그녀가 6살이었던 1979년 미국으로 이민을 왔습니다. 그러나 미군의 공습이라는 역사는 그녀의 가족 내에서도, 버지니아의 라오스계 커뮤니티에서도 터부시되는 주제였습니다. 그녀가 어른이 되어 마침내 그 사실을 접하게 되고 이를 널리 알리는 활동에 나섰을 때도 미국 내 라오스계 사람들의 반발이 심했습니다. 이민자들은 대부분 미군 철수 후 고향을 등져야했던 고위 관료나 군 장성들이었기 때문에, 공산화된 조국을 돕지 않으려 했고, 과거는 그냥 묻어두길 바랬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캠페인의 초점을 미국의 어두운 역사를 파헤치는 것에서 희망과 치유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으로 바꾸었습니다. 이 문제가 정치적인 문제가 아닌 인도주의적 사안임을 계속해서 강조했죠. 그 결과, 라오스계 미국인들의 태도도 서서히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관계자들은 아직도 많은 미국인들이 라오스 전쟁에 대해 아예 모르고 있고, 얼마나 많은 폭탄이 떨어졌는지, 그 폭탄들이 여전히 남아 얼마나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는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불발탄 제거와 함께 홍보 활동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뉴욕타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