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양 보전의 중요성이 외면받고 있습니다
2015년 3월 26일  |  By:   |  칼럼  |  1 comment

더 이상 기후변화로 인한 위협이 없고, 맑은 물이 잘 보존되며, 비만이 없고, 테러와 전쟁이 없는 아름다운 세상을 상상해봅니다. 이런 세상에선 인간이 살아가는 데 큰 위험은 없다고 여겨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의 문제들이 모두 마법처럼 해결된다고 해도, 마치 신문을 몇 개월 동안 볼 수 없는 것같은 덜 중요해 보이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우리는 더 이상 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대중 매체에 별로 등장하지 않는 걸 보면, 기자들은 이 문제가 별로 고려해볼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하지만 모든 인류 생명이 이것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오래 전부터 알았지만, 왠지 잊고 지냈습니다. 그것은 토양, 즉 흙입니다.

기원전 1500년경 쓰여진 산스크리트 문헌을 보면, “이 한줌의 흙에 우리의 생존이 달려있다. 흙을 절약하여 쓰면, 이것은 식량으로 자랄 것이며, 연료와 주거지를 제공할 것이며,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둘러 쌀 것이다. 하지만 흙을 남용하면, 땅은 무너져 내리고 죽어가며, 인류도 이와 함께 할 것이다”라고 쓰여있습니다.

흙은 변하지 않았지만, 우리 인류는 변했습니다. 많은 땅 소유주들이 현재 심각한 토양 파괴를 일삼고 있어서, 유엔식량기구에 따르면 세계는 앞으로 60년 후에 농작물을 기를 수 있는 토양을 잃게 됩니다. 비가 자주 내려 땅의 노출된 흙이 잘 쓸려나가는 영국에서 농부들은 “이제 수확할 수 있는 날은 100년정도 남았다”고 말합니다.

매년 식품 수요는 늘어가고 있기 때문에, 연간 약 600만 헥타르의 새로운 농경지가 필요하다고 유엔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토양이 오염됨에 따라 연간 약 1200만 헥타르의 농지가 줄고 있습니다. 우리는 토양을 망치고, 숲이나 우리가 여행하는 많은 곳들에 쓰레기를 버립니다. 토양은 거의 마법적인 물질이며, 그 자체가 살아있는 조직이어서 토양 위에 놓여진 물질을 변경해 식물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듭니다. 몇몇 베다 스승들은 그들의 제자들이 지금까지 지구상에 살아온 누구보다도 그들 안에 미생물을 많이 갖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현대인은 흙을 단지 먼지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먹여 살릴 것이라고 생각되어온 기술들이 우리를 굶주림으로 몰아갑니다. ‘안트로포신’이라는 잡지에 발행된 한 기사는 11세기에 프랑스의 호수에 퇴적된 침전물에 대해 분석했습니다. 이 기사는 지난 몇 세기 동안 농업의 증대가 토양의 부식을 60배 빠르게 앞당겼다고 말합니다. 영국에서 발행된 다른 신문에 의하면, 마을이나 도시의 작은 부분에서 직접 손으로 재배하는 소규모 농장의 토질은 다른 농장들보다 유기 탄소 1/3과 질소 1/4을 더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이런 소규모 농장주들이 다른 농부들보다 동일 면적당 4~11배 더 많은 식품을 생산합니다.

제가 이 이슈에 대해 말할 때면 사람들은 저에게 묻습니다. “하지만 농부 스스로 자기 토양을 돌보지 않을까요?” 사실 많은 농부들이 그들 토지의 토양을 보존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하지만 또한 많은 농부들이 빠르게 수익을 얻고 싶은 마음에, 농장과 계약한 업체 인력이 토양을 망치도록 방조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토양을 보존하는 데 힘쓰는 많은 농부들도 경제적 또는 정치적 구조가 그들을 지지해 주지 않기 때문에, 많은 시련에 부딪힙니다.

올해는 ‘세계 토양의 해”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지난 1월, 웨스트민스터 지방정부는 토양 기준의 새로운 규정을 내놓았지만, 지금까지 있었던 규정과 별반 차이가 없으며 이런 광범위한 문제점들을 직시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토양에 대한 규정을 어기는 것은 우리의 생존에 관련되는 문제 일 수 있지만, 규정을 어길 경우 약간의 국가 보조를 못받는 처벌이 내려질 뿐입니다. 하지만 이런 처벌조차도 ‘영국농민연대’에게는 참을 수 없는 일이어서, 정부에 불만을 재기합니다. 제가 볼 때 영국농민연대는 가능한 발전적 변화를 지양하고, 오히려 오염된 토양을 만드는 일에 앞장 서고 있는 듯 보입니다.

영국농민연대는 토양오염의 위기를 저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던 ‘유럽토질기본지침’이 지난 해 철폐되었을 때 이를 축하했습니다. 영국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영국농민연대는 이 기본지침을 파기시키기 위해 지난 8년간 싸워왔으며, 결국 이들이 승리하였을 때 어린 수탉들을 모아놓은 것처럼 시끄럽게 기뻐했습니다. 이런 사건을 되돌아볼 때, 이는 우리시대의 우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영국의 사업부 장관인 매튜 핸콕은 “사업부는 개편을 주도할 것”이며, “무역협회는 이 조항의 강화를 재점검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개편을 주도하도록 권한을 준 두 단체 중 하나가 바로 영국농민협회입니다. 사업부장관 핸콕은 “이런 결정은 영국 국민의 재정적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친사업적 정책의 일환”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결정이 우리의 재정적 또는 다른 분야에서의 안전을 높이기보다 오히려 안전을 저해해고 있습니다.

정부의 탈규제 정책이 현재 의회에서 거의 결의가 되었으며, 이제 공표되는 것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이런 탈규제는 토질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정부에 의하면 이 정책은 경제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단기성장은 장기적인 인류의 생존이라는 문제를 볼모로 하고 있습니다. 이 ’분명한 친사업적 정책’은 우리를 죽어가도록 방조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토양 문제를 연구하는 것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 못하나 봅니다. 영국에선 단지 에버딘 대학교만 토양과학에 대한 학위를 수여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대학에선 토양관련 학과를 폐지했습니다.

이런 사회 기류는 문명을 거꾸로 가는 것입니다. 전쟁과 역병이 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갔다고 해도, 인류는 계속되었습니다. 하지만 토양을 잃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입니다.

현재, 세계화는 재난이 모든 곳에서 재생산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세계화 초기에는 한 지역에서 생산되는 식품에만 의지해야 하는 가난함에서 벗어나는 긍정적 회복력의 증가를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세계화가 진행됨에 따라, 동일한 파괴적 행위들 또한 지구상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갔고, 세계화는 모든 곳에서 제도를 악화시키는 중대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많은 문제들은 표면에 들어나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큰 문제는 조금씩 천천히 다가와 우리의 중요한 삶의 요소를 앗아갈 수 있습니다.

토양과 같은 중대한 문제를 피해가려고 하는 태도는 가장 큰 사회적 문제 중 하나입니다. 자연의 원리로부터 분리된 삶은 우리의 삶이 자연의 일부가 아닌 것처럼 망각하게 만들었으며, 마치 음식을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닌 컴퓨터 데이터로부터 삶을 얻는 존재인양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삶의 태도는 한번도 힘든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서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만들며, 우리 존재의 위험상황을 인지 못하도록 부추깁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해결 방법이 있습니다. 토지를 쟁기로 갈아엎는 방법 말고도 많은 다양한 농업 방법이 존재합니다. 독립적으로, 세계 많은 곳에서 농부들은 보수적 농법이라는 ‘무경간 농법’을 실험 중이며, 놀라운 결과들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토양을 뒤엎으며 농업을 하지 않아도 되는 열 가지가 넘는 토양 보존 농법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부유한 나라라고 자부하는 영국에서는 ‘실천적 농업법’이라는 농업잡지에서 추천한 이런 방법들을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반면, 영국 정부는 4억5천만 파운드의 자금을 농업 연구와 개발에 사용하고 있으며, 그 대부분은 토양을 오염시킬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사용됩니다. 이런 개발에 쓰이는 자금을 지원하는 가장 큰 단체는 아이러니하게 “자연 환경 조사국”입니다.

이런 과시욕에 젖어 단기적 성과에 초점을 맞춘 정책들은 이에 반대하는 많은 증거들과 논리를 무시합니다. 마치 우리가 토양에 발을 딛고 살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토양을 계속해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원문출처: 가디언